[석태문 박사의 VINA프리즘] (8) 청춘남녀의 사랑, 베트남의 결혼 엿보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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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태문 박사의 VINA프리즘] (8) 청춘남녀의 사랑, 베트남의 결혼 엿보기(상)
  •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농업경제학박사)
  • 승인 2019.07.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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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견례•약혼식•결혼식 절차 꼭 치러…약혼식, 결혼식 못잖게 중요
- 신부측에 주는 지참금 오랜 전통…보통 560만원(5,000달러) 정도
- '음력 7월은 불행의 달', 결혼안해…여성 21•23•26•28세도 결혼 꺼려
베트남의 결혼식은 현대적으로 바뀐게 많지만 상견례, 약혼식, 결혼식 등 세절차는 반드시 치른다. 약혼식은 결혼식 못지않게 중요하며 신부집에서 치르고,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집에서 한번씩 두번 열린다. (사진=석태문)
베트남의 결혼식은 현대적으로 바뀐게 많지만 상견례, 약혼식, 결혼식 등 세절차는 반드시 치른다. 약혼식은 결혼식 못지않게 중요하며 신부집에서 치르고,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집에서 한번씩 두번 열린다. (사진=석태문)

[인사이드비나=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농업경제학박사)] 청춘남녀 사랑의 결실인 결혼은 인생 최고의 이벤트, 최대의 사건이다.

격식을 중시한 동양사회는 관혼상례(冠婚喪禮)의 으뜸을 혼례라 했다. 결혼은 두 집안이 만나고, 이질적 문화의 교류라 생각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유교를 공통분모로 한다.

두 나라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문화적 공감대가 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결혼문화는 주나라의 육례(六禮)와 송나라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이 크다.

혼례의 마지막 절차는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는 친영(親迎)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조선 초까지는 신랑이 신부 집에 장가들었다. 장가제도는 굳건한 관습이었다.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이념이다. 적장자 상속이 기본인 종법제도(宗法制度)를 사회질서로 추구했다. 지배층 입장에서 볼 때 장가제도는 조선의 건국이념에 배치되는 혼례였다. 자녀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주는 균분상속은 조선의 경제질서를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조선조의 장가제도와 시집제도…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서로 다른 시집살이

세종대왕은 1430년 12월, 김종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시집가는 제도를 만들 수 있소.” 김종서는 “왕실에서 선례를 보이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임금이 왕실에서 먼저 선례를 남기면 사대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따라 할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세종은 이복동생 숙신옹주를 시집보냈다. 숙신옹주는 우리 역사에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시집간 여성이 되었다. 하지만 시집제도가 법제화되려면 85년을 더 기다려야했다.

중종(1515년)은 “혼인은 만사의 시작인데,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장가들러 가는 것은 천도(天道)가 역행하는 것이니 어찌 옳겠는가? 친영(親迎)의 습속으로 행하기를 전교(傳敎)하였다.” 임금이 명령을 내려 시집제도가 법제화되었다.

한국에서 시집가는 문화는 여성에게 큰 부담을 강요했다. 시집 문화가 여성의 삶을 바꾸기도 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짊어진 결혼문화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율곡의 어머니였던 사임당, 허균의 누나였던 난설헌은 고향이 강릉으로 같았다. 쟁쟁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타고난 천재성으로 주목받았다. 결혼이후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임당은 결혼후 친정에서 머물렀다. 자녀도 거기서 키웠다. 친정어머니와 남편, 시모로부터 사랑도 듬뿍 받았다.

난설헌은 안동김씨 문중으로 시집갔다. 남편과 시집 식구로부터 모진 미움을 받았다. 두 자녀도 잃었다. 친정이 옥사(獄事)를 겪는 불행이 겹치며 27세에 요절하였다.

두 여성은 왜 이런 차이를 경험했을까? 사임당은 1504년생이고, 난설헌은 59년이 늦은 1563년생이다. 중종의 시집가는 문화가 법제화된 것은 1515년이었다.

사임당은 신제도 도입 초기에 느슨한 시집살이를 경험했다. 난설헌은 제도 정착 이후,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었다. 난설헌이 59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혹은 두 사람의 생년이 바뀌었다면, 우리는 두 사람 삶의 달라진 궤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혼식의 백미인 선물을 들고있는 신랑친구들. 이들이 들고간 선물은 신부친구들이 받아 신부가족들에게 전달한다. 이때의 신랑친구와 신부친구는 모두 미혼이어야한다.
혼식의 백미인 선물을 들고있는 신랑친구들. 이들이 들고간 선물은 신부친구들이 받아 신부가족들에게 전달한다. 이때의 신랑친구와 신부친구는 모두 미혼이어야한다.

◆ 약혼식은 신부집에서, 결혼식은 신부⁕신랑집서 각 한번씩 두번

베트남은 2,000년 넘게 이어져온 시집가는 혼례 문화가 있다. 유구한 역사만큼 쌓여진 풍습도 많다. 베트남 여성은 21세, 23세, 26세, 28세에 결혼하지 못한다는 풍습이 있다. 우리가 아홉수라고 29세에 결혼을 꺼리는 풍습과 같다.

음력 7월은 불행의 달이라고 믿는다. 1년 중 가장 음기(陰氣)가 센 달이다. 결혼을 꺼리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다. 7월은 귀신 활동이 왕성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집안일도 하지 않는다.

매월 보름(음력 15일)과 초하루(음력 1일)는 음기가 센 날이다. 이 날은 음식도 채식을 하고, 가정과 상가에서는 제사까지 지낸다. 모두 귀신의 발호를 막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결혼은 날씨가 좀 시원해지는 9월부터 3월까지가 성수기이다. 많은 혼례 절차들이 현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상견례, 약혼식, 결혼식의 세 절차는 베트남 혼례에서 반드시 치르는 필수 예법이다.

상견례와 약혼식은 신부 집에서 한다.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 집에서 각각 한번씩, 두 번 한다. 약혼식과 결혼식의 간격이 한 달이 되기도, 6개월이 될 수도 있다.

신랑․신부 집이 먼 경우에는 약혼식과 결혼식을 같은 날 할 수도 있다. 경제력과 두 집의 거리에 따라 예식을 올리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두 집안이 혼인을 합의하면 신부측은 신랑측에 예물의 품목과 수량을 제시한다. 여기에 현금인 지참금(lan nhai: 신랑 측이 신부 측에 주는 돈이다)이 포함된다. 좀 많다 싶으면 신랑 측에서 깎아 달라고 요구한다. 신부 측도 전례에 비추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

혼례의 첫 단계인 상견례는 우리와 거의 같다.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와 만나는 날이다. 다만 우리와 달리, 베트남의 상견례는 신부 집에서 한다. 몇 가지 먹을거리는 신부 집에서 준비한다.

약혼식은 혼인을 약속하는 절차이다. 우리는 생략을 많이 하는 추세이지만 베트남에서 약혼식은 결혼식 못잖은 중요 혼례이다.

◆ 약혼식의 백미, 선물…신랑친구가 들고가면 신부친구가 받아 가족에 전달
 
약혼식에는 베트남 전통혼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랑․신부는 붉은 색(혹은 핑크 색) 전통의상(아오자이)을 입는다. 신부만 아오자이를 입고, 신랑은 양복을 입기도 한다. 혼례에서 붉은 색은 부와 번영을 상징한다.

약혼식의 백미는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주는 선물이다. 약혼 선물은 각종 음식과 지참금이다. 음식에는 빈랑나무 열매(까우; Cau), 구장나무 잎(쩌우; trau), 그리고 차, 찹쌀떡, 케이크, 구운 돼지고기 등이 있다. 구장나무는 빈랑나무에 붙어사는 덩굴식물이다. 신랑․신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한다.

신랑과 신부는 반지를 서로 교환한다. 신랑은 신부에게 금귀걸이, 금목걸이, 금팔찌 등 각종 귀금속을 선물로 준다. 신부 가족과 친지에게도 선물을 준다. 신랑 측은 현금으로 준비한 지참금도 신부 측에 준다.

준비한 선물은 5개, 7개, 9개 등 홀수로 마련한 쟁반에 담는다. 붉은 보자기로 선물을 덮은 쟁반을 신랑 친구들이 들고 간다. 선물은 같은 수의 들러리인 신부 친구들이 받는다. 선물은 신부 가족에게 전달한다.

선물을 주고받는 신랑․신부 친구는 미혼이어야 한다. 친구들을 모두 시집․장가보내고 가장 늦게 결혼하는 친구는 들러리 친구들을 어떻게 동원할까 궁금하다.

◆ 신부측 지참금 요구…신랑측 많다싶으면 깍아달라 요청, 협의안돼 혼인 깨지기도

약혼식에서 신랑측이 신부측에 주는 지참금 문화는 오래된 풍습이다. 지참금 협의가 원만하지 않아 혼인이 무산되기도 한다.

무리한 요구에 신랑측이 할 수 없이 응했다면, 신부는 독한 시집살이를 겪을지도 모른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합의하는 지참금이 우리 돈으로 570만원(5,000달러) 정도라고 한다. 베트남 물가로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지참금 문화는 고대사회 노동력 매매가 기원이다. 고대로 갈수록 노동력 매매와 결혼을 통한 노동력 교환은 가까워진다. 장가를 가든, 시집을 가든 결혼은 한 집의 노동력이 다른 집으로 이전되는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지참금 문화는 과거보다 강도는 많이 약해졌으나 요즘도 성행하고 있다. 가족과 젊은이들의 부담이 큰 부분이다.

석태문 박사의 칼럼은 본지와 '뉴스퀘스트'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석태문 박사는

경북대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경상북도 능금산업 발달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경북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대구경북 지역 사회 및 경제발전 관련 연구활동을 활발히 하고있으며 지난 3월부터 베트남 다낭사회경제연구원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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