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4) 초창기 경제인들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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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4) 초창기 경제인들의 고뇌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 승인 2019.10.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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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질서, 냉소와 의심, 열악한 환경…미래가 안보이던 시기
- 종합공업지대, 수출산업단지 제안…우리경제 먹여살리는 토대 마련
- 정치자금, 최대 골칫거리…기업인•정치인 교도소 수시로 들락날락

[인사이드비나=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경련을 창립(1961년 8월16일) 하면서 한국의 기업인들은 경제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일을 하고(경세, 經世),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제민, 濟民) 다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무질서했고 미래란 것이 머나먼 남의 일인양 여겨질 때 경제인들은 움직였다.

1962년 1월 경제인협회는 ‘종합 공업지대 창설에 관한 제의서’를 작성, 최고회의에 제출했다. 설립안에는 종합제철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종합기계공장, 전기기기, 섬유 등 10개의 공장 건설 계획이 포함됐다. 오늘날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는 기간산업들이다.

◆ 세상에 눈을 맞추자 국민의 숨겨진 저력 결집돼

앞서 1961년 11월 이병철 삼성 회장이 단장이 되어 미국과 유럽 지역에 파견됐던 경제인들의 교섭단이 외자유치에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며 얻은 자신감이 그 배경이었다. 울산공업단지는 ‘선건설 후시공’이라는 한국 특유의 관민합작 추진력으로 거론된지 한 달이 채 안된 2월3일 기공식을 가졌다.

당시 기공식에 초대받았던 동아일보의 이동욱 이사는 현장에서 키가 큰 한 기업인을 만났다. 그는 이 기업인에게 울산공업센터가 잘 되겠느냐고 기자 특유의 비판의식을 담아 물었다. 그러자 현대건설 정주영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 기업인은 “일단 된다고 했으니 믿어봐야죠.”하고 대답했다. 그 시절엔 된다고 하는 이조차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믿은 정주영은 이곳 울산에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을 지어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울산공업단지 기공식. 경제계는 정부에 종합공업지구와 수출산업단지 조성을 제안해 오늘날 우리경제를 먹여살리는 토대를 마련했다. <사진=대한뉴스}

울산에 이어 경제인협회는 서울 근교에 수출산업단지를 구상했다. 이를 위해 ‘수출상품 샘플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품은 훈제오징어, 비닐장갑, 낚싯대, 자물쇠, 안경테, 밍크, 크리스마스 장식품 등이었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각료들을 대동하고 찾아와 거의 2시간동안 전시품을 둘러봤다.
 
당시 경제인협회의 수출촉진위원회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다가 귀국한 삼경물산(후일의 코오롱) 이원만 사장이 맡고 있었다. 그의 건의를 받은 정부가 수출산업공단의 제1단지 후보로 서울 구로동을 꼽았고 이는 나중의 구로공업단지로 이어져 세계6대 무역대국의 효시가 됐다.

1960년 당시 한국의 수출은 총액이 3,290만달러, 수출 품목중 100만 달러가 넘는 것은 중석, 해태(김), 철광석, 면직물 등 네 가지뿐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좀 더 지난 2018년의 수출은 6,055억 달러, 수출상품 수는 1만여개에 이르렀다. 

세상에 눈을 맞췄더니 국민의 숨겨진 저력이 결집됐고 이는 수출규모만으로도 온전히 증명됐다. 수출은 한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산업발전의 궤적이 됐다.

◆국정농단사태…정치자금 문제 여전히 과제라는 반증

예나 지금이나 정치자금은 돈을 버는 기업인들의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경제인협회 김입삼 사무총장(후에 상근부회장)이 1962년 9월 부임했다. 그는 10월12일 경제인협회 사무실에서 이정림(대한유화), 최태섭(한국유리), 이한원(대한제분) 등의 회장단을 만났다.

그들이 김 사무총장에게 준 첫번째 과제는 ‘정치자금’에 관한 것으로 경제인들이 정치자금은 내도 교도소에는 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최소한 돈 내고 뺨 맞는 일은 없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협회는 ‘정치자금 양성화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법은 법,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권력과 돈은 수시로 결합되었고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은 수시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와 전직 대통령, 기업총수들의 구속은 초창기 경제인들의 과제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국정농단사건에서 뇌물공여•횡령등의 혐의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국정농단사건은 과거 기업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정치자금 문제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점을 반증해준다. (사진=서울경제TV 캡처)
국정농단사건에서 뇌물공여•횡령등의 혐의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국정농단사건은 과거 기업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정치자금 문제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점을 반증해준다. (사진=서울경제TV 캡처)

국민을 잘살게 한다는 것은 경제인들의 한 소명이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굶어죽는 사람이라도 없게 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였다. 1961년에 김연수 회장(삼양사) 주도로 양식이 떨어진 농가 구호를 위해 밀가루 1만5,000포대와 현금 3억원을 모아 장면 총리에게 전했다.

이 긴급 지원금으로 정부는 하급 지방공무원과 경찰관들에게 약간의 수당을 지급할 수 있었다. 공무원 급여를 충당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경제수준을 짐작케 하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전경련의 2대회장인 이정림은 1963년 일본에서 농업전문가 4명을 자비로 초청했다. 당시 한국은 땅은 있는데 척박했다. 육종, 비료, 특수작물, 고령토 등 4개 분야의 전문가들은 비료를 뿌리고 볍씨를 개량했다. 국민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 준 통일벼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다.

경제가 궤도에 올라갈 즈음 주식 대중화를 추진했다. 외자에 상응한 내자를 조달하고 성장의 과실을 국민들과 같이 나눠 갖자는 취지였다. 기업의 주식을 분산하고 자본의 대중화를 통해 가족기업을 국민기업으로 승화시키자는 제도를 재계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채택했다.

이렇게 성장한 한국의 주식시장은 시가총액 1조달러를 훌쩍 넘어 경제규모에 상응한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했다.

◆ 세계시장 향해 뛰고 경쟁 통해 단련하며 성장과실 나누려 고민

오늘날 남북한 경제의 명암을 가른 한 요소를 동양나이론(현 효성TNC)의 나일론 개발 일화가 제공하고 있다.

북한은 석탄에서 비날론(주체섬유)을 개발했다. 정부가 주도했다. 남한은 석유에서 나일론을 개발했다. 기업이 주도했다. 나일론은 세계표준이었다. 세상에 눈을 맞추고 기업을 키운 남한과 자기 눈높이만으로 정부만 있고 기업을 없앤 북한의 경제성과는 어찌보면 나일론 개발에서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초창기 경제인들은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세상의 기준에 눈을 맞추려 했지만 나라는 너무나 왜소했다. 국민을 잘 살게 하려는 목표를 가졌으나 주위의 의구심은 끝이 없었다. 세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냉소와 의심을 잘 극복했고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고민하고 고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더 큰 시장을 향해 뛰었고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그러면서도 성장의 과실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려고 했다. 시대는 바뀌어도 우리 시대의 경제인들도 결국 같은 고뇌를 안고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註) 이 글의 상당 부분은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 김입삼(2018.12), 도서출판 동인>에서 발췌 한 것입니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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