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 쓰레기 더미 속의 액자와 安貧樂道(안빈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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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 쓰레기 더미 속의 액자와 安貧樂道(안빈낙도)
  • 이형로
  • 승인 2019.10.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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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궐같은 집이라도 잠자리는 두어 평이면 충분하고
- 만석꾼 부자라도 하루에 두어 되 쌀이면 배부르다

[인사이드비나=이형로] 출근길이다. 버스정류장 근처 가게에서 내부수리를 하지 쓰레기 더미를 잔뜩 내놨다. 그 쓰레기 더미 한쪽에 세워진 대련 액자가 있었다. 혹시 버리는게 아닌가했는데 가게 주인이 잠시 치워놨단다. 버리는게 아니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쓰레기 속의 액자에는 금옥(金玉)과 같은 글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

大廈千間 夜臥六尺(대하천간 야와육척)
巨田萬頃 日食二升(거전만경 일식이승)

아무리 대궐같은 집이라도 잠자리는 두어 평이면 충분하고,
아무리 만석꾼 부자라도 하루에 두어 되 쌀이면 배부르다.

이 글은 증광현문(增廣賢文)과 명심보감에 실려있는 격언으로,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게 필요없다는 말이다. 결국엔 모든걸 내려놓고 가야하는데, 정작 필요한건 한줌도 안되는데,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자는 교훈이자 경계의 글이다.

다시 말하자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말이다. 안빈낙도는 일찌기 공자가 논어의 '옹야편(雍也篇)'에서, 맹자가 '이루장구(離婁章句)'에서 역설한 바 있다. '가난해서 비록 남들에겐 구차하게 보일지라도 마음은 편안해서 도를 즐긴다'라는 뜻으로, 빈곤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늘 도를 추구하며 배우고 얻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증광현문은 '석시현문(昔時賢文)' 또는 '고금현문'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명나라때 편집된 계몽서다. 중국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명언이나 격언을 모아놓은 책으로 저자는 따로 없으며, 명•청 시대를 거쳐 계속 증보되어, 청나라 주희도(周希陶)의 수정본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유•불•선은 물론 속담까지를 아우르는 잡다한 내용이지만, 순자의 성악설을 전제로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각 시대의 사회상과 인간관계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으나, 결국엔 우리들에게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그나마 희망적인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우리나라에선 '명심보감(明心寶鑑)'이 그런 역할을 했다. 명심보감 편찬자는 고려 충렬왕때 노당 추적(露堂 秋適,1246~1317)으로 알려져 있다. 노당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 예문관제학을 거쳐 시량국학교수로 있을 때 명심보감을 엮어 가르쳤다. 혹자는 명심보감이 중국 명나라의 범립본(范立本, 1394~1454)이 편찬한 책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중국인이나 사대주의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명심보감이 아동들을 위한 훈몽서로 알려져 있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의 경륜이 묻어나는 내용들이 많아, 세파를 겪을대로 겪어 본 사람들이라야 무릎을 치며 감탄할 내용들이 많다. 어느 한 구절 버릴 것이 없어서 우리들이 살아가며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기에 충분하다.

이정 풍죽도(風竹圖). 17세기 초 비단에 수묵, 127.8cm×71.4cm, 간송미술관 소장

이 대련과 어울리는 시가 있다. 바로 송나라 때 선풍(禪風)을 드날린 오조 법연(五祖 法演, 1024~1104)의 오도송이다.

山前一片閑田地 叉手叮嚀問祖翁(산전일편한전지 차수정녕문조옹)
幾度賣來還自買 爲憐松竹引淸風(기도매래환자매 위련송죽인청풍)

산자락 한 뙈기 노는 땅, 두 손 공손히 모아 할아버지께 여쭙니다,
이 밭은 몇 번이나 되팔다 다시 샀나요, 솔바람 댓잎소리 아쉬워 그랬나요.

산비탈에 묵혀진 밭 한 뙈기가 있다. 예전엔 기름진 밭이었으나, 몇 번인가 주인만 바뀌었을 뿐 지금은 누구도 갈지 않아 잡풀만 무성하다. 그래서 이상하게 느낀 손자가 할아버지께 공손히 물었다.
"할아버지, 지금 저 밭은 왜 저 모양으로 잡풀만 우거져 있는가요?". 
"주인이 몇 번 바뀌다 보니 저 모양이 됐단다",
"아, 그러면 지금 저기 서있는 소나무나 대나무는 바람을 맘껏 즐길 수 있으니 좋겠군요!" .
아, 자연이다. 이제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시원한 바람을 한껏 즐기고 있다.

산비탈의 '한 뙈기 노는 땅'(閑田)이란 우리의 본성, 곧 마음자리다. '몇 번이나 되팔다 사곤'하는 행위는 우리 범부들의 일상 모습이다.
범연의 깨달음은 '솔바람'으로 바로 이어지고 있다. '솔바람 댓잎소리'는 우리 곁의 일상이자 자연의 소리지만, 우리가 늘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다.

비록 선사의 오도송이지만 우리의 참모습을 자연에 빗댄, 그래서 자연 자체를 노래한 사랑가다. 만경창파만큼 넓은 땅덩어리 가지고 있은들, 내가 묻힐 땅은 두세 평이면 족하리라. 아니다. 요즘은 산골(散骨)도 많이 하고 있으니, 송곳 꽂을 만한 한 뼘의 땅마저도 필요없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3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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