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 진영논리와 易地思之(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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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 진영논리와 易地思之(역지사지)
  • 이형로
  • 승인 2019.11.04 16:3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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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 조국정국에서 ‘너 죽고, 나 살자’식 진흙탕 싸움’
- 서로 처지 바뀔 수 있다는 점 생각하면 과연 그랬을까
현강 박홍준(玄江 朴弘俊)의 '역지사지'. 조국사태로 여야 정치권이 첨예하게 맞서고 국민들의 의견도 양쪽으로 갈라진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을 보면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와 의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강 박홍준(玄江 朴弘俊)의 '역지사지'. 조국사태로 여야 정치권이 첨예하게 맞서고 국민들의 의견도 양쪽으로 갈라진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을 보면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와 의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국과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역지사지란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조국 정국’과 ‘조국 사회’는 상식과 합리적 판단•비판 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오로지 진영 논리가 판을 쳤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두 달 넘게 조국으로 날이 밝고 정경심으로 날이 저무는 현상이 계속됐으니 그 과정에 대해서는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다만 시계바늘을 오래전, 그러니까 지금 여당과 야당이 서로 상대방 처지였을 때로 돌려보면 어떨까 싶다.  

◆ 맹자의 '역지즉개연'에서 유래?…주자의 ‘장심비심’이 더 가까워

그 시절, 문제있는 인물이 장관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여당(현 야당)은 하자에는 눈을 감고 옹호하기 바빴다. ‘정쟁’, ‘국정 발목잡기’라는 야당에 대한 역공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야당(현 여당)은 사생결단식 공세를 퍼부었다. 정권을 향해 ‘오만’, ‘독선’, ‘불통’이란 딱지를 붙였다. 입장만 바뀌었지 이런 공방은 조국 정국에서도 그대로 재연됐다.

여당은 세상 끝날때까지 여당을, 반대로 야당은 언제까지 야당만 할 것 같은 자세로 일관했다. 서로 처지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면 여야의 공방이 ‘너죽고 나살자’식의 극한 싸움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지사지의 유래를 맹자의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찾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한자 좀 안다는 사람이 맹자의 권위에 견강부회한 것이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꾸어도 하는 행동은 서로 같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지사지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굳이 역지사지란 말과 비슷한 성어를 찾는다면, 공자의 '추기급인(推己及人)'이나 주자의 '장심비심(將心比心)' 또는 청나라 임칙서(林則徐)의 '설신처지(設身處地)'라고나 할까? 이 모두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라는 속뜻을 품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및 보좌진들이 여당의 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 적용에 반대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사진 위)과 2008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여당의 쟁점법안 강행처리에 반발해 국회의장실및 본회의장 점거를 논의하고 있는 회의모습이 대조를 이루고있다. (사진=MBC 캡처)

우리 역사에서 역지사지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황희 정승이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의 아내와 딸이 그의 관복을 짓다가 입씨름을 했다. 이게 맞느니 저게 맞느니 티격태격하다, 결국에 황희를 찾아와 판단을 해달라고 하자 황희는 아내 말도 맞고, 딸 말도 맞다고 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황희가 글을 읽고 있는데 하녀 셋이 씩씩대며 찾아왔다. 까마귀가 우리집 감나무에 흰똥을 쌌는데 우리집 감을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집 감을 먹고와서 그런지 판단을 해달란다.

"갑순이 말도 옳고, 을순이 말도 옳고, 병순이 말도 맞다!". 황희는 이도저도 모두 옳다고 대답했다. 아내의 말도 딸의 말도 갑순이 을순이 병순이의 말도 모두 옳다고 대답했으니 제일 뛰어난 역지사지가 아닐 수 없다.

◆ 네편내편없이 잘잘못을 정확하게 판단•평가해야

그런데 우리나라 현 상황에 맞는 인물은 바로 율곡 이이 같은 인물이다. 율곡은 노론, 소론을 떠나서 이쪽저쪽 맞다는 것은 맞다, 그르다는 것은 그르다라고 말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율곡은 이쪽저쪽에서도 환영을 받지못했다.

어느 때는 좋다하고, 어느 때는 잘못됐다며 들쑤셔대니 좋아할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내가 칭찬받을 때는 좋았지만, 어느 때 나에게 비난이 쏟아질지 모르니 사람들은 늘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율곡과 같은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 자세와 의식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아닐까? 특정 개인과 집단을 위한 충성이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네편 내편없이 잘잘못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태도 말이다.

양시양비론은 흔히 소신이 없고 우유부단하다거나 '회색'이라고 비아냥을 받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강한 용기와 소신이 필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역지사지는 여야가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을 쓰기 위해서는 전제가 깔려야한다. 서로 적으로 간주한다면 어느 누가 적의 입장에서 배려하겠는가. 서로 파트너로 여겨야 주자의 장심비심, 임칙서의 설신처지이나 역지사지가 가능할 것이다. 

그들의 역지사지가 본래의 뜻대로 변화하면 사회가 지금처럼 강퍅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3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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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선 2019-11-09 14:11:32
허우적 선생 화이팅

윤준호 2019-11-09 15:58:15
매번 좋은글 잘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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