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5) 사채동결 긴급조치, 1972년 8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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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5) 사채동결 긴급조치, 1972년 8월3일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 승인 2019.11.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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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계약 무효, 새계약 대체…월평균금리 3.85%→1.35%로 조정
- 기업들 사채 3,895억, 통화량의 80% 달해…이자부담 크게 덜어
8.3 사채동결 긴급조치 기사. 고리사채에 신음하던 민간경제계는 이자부담을 크게 덜면서 기업활동이 활발해졌고 침체상태의 경제도 빠르게 회복됐다. 경제계는 이자부담 완화의 혜택을 기업공개로 국민들에게 일부 돌려줬으며 이는 금융산업과 중화학공업 발전의 계기가 됐다.

1960년대이후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경제는 1970년대에 접어들며 구조적인 문제가 노정된 데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의 영향까지 겹쳐 냉각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1969년의 13.8%에서 1970년 7.6%, 1971년 8.8%, 1972년 5.7%로 반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수출주도의 성장을 위해 외자를 끌어들인 것은 좋았으나 부실기업이 속출하여 큰 정치, 사회문제가 되었다. 1969년 5월 재무부는 차관업체 83개중 45개가 부실이라고 발표했다. 수출증가율도 1968년 42%에서 1969년 34%, 1970년 28%로 주저앉았다.

1971년 7월 수출확대회의가 열렸다. 회의후 관례에 따라 중앙청 국무위원식당에서 대통령 등 정부관계자와 경제4단체장의 오찬이 있었다. 김용완 전경련 회장은 기업부실에 대한 어려운 실정을 보고했다.

◆ 김용완 전경련회장 ‘고리사채 때문에 기업부실, 비상한 결단 필요’ 건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회의가 끝난 후 박정희 대통령은 김용완 회장을 전용 차에 동승시켜 청와대로 돌아와 김회장의 의견을 다시 물었다. 이 자리에서 김회장은 기업들이 열심히 일하나 고리사채 때문에 수익을 모두 빼앗겨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고 설명하며 비상한 결단을 내려달라고 역설했다.

김회장은 특히 자기가 경영하는 경성방직도 사채를 쓰고 있었는데 최근 증설을 위해 확보하고 있던 공장부지를 팔아 사채를 다 정리했노라며 조금도 사심이 없는 건의라는 점을 부연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채동결만이 경제위기의 극복책이라며 비상한 대책을 결심한 계기였다. 재계 지도자의 사심없는 건의로 최고위층의 경제우선주의가 날개를 펼 수 있게 됐다. 정경관계의 어느 한 쪽이라도 이기적 동기가 있었더라면 단언컨대 사채동결 조치는 실패했고 어느 개도국에나 그랬듯이 성장세가 꺾이고 미증유의 혼란에 나라가 빠졌을 것이다.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청와대안에 사채동결 및 조정을 골간으로 하고 단기고리 은행대출의 장기저리 은행대출금으로의 전환 등 긴급조치를 위한 극소수의 조직이 설치됐다. 이 조직은 극도의 보안 속에 1972년 6월말 모든 작업을 끝냈다. 그러나 당초 7월초로 예정됐던 긴급조치 발표는 때마침 남북조절위원회의 7.4 남북공동성명으로 한 달이 늦춰졌다.

기업들의 사채신고액은 당시 추정액 800억~1,800억원 보다 훨씬 많은 3,564억원으로 통화량의 80%에 달했다. 이는 고리사채로 인한 기업들의 어려움이 그만큼 컸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 침체 경제 급속회복…경제계 이자절감 혜택 기업공개로 환원, 금융산업•중화학공업 발전 발판 마련

1972년 8월2일 밤10시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완벽하게 보안을 유지한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한 긴급명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8월3일 0시를 기해 발효, 시행되었다.

긴급조치의 가장 중요한 골자는 기업과 사채업자의 모든 채권, 채무관계는 1972년 8월3일 현재로 무효화되고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1971년 우리나라 기업들이 쓰고 있던 사채의 평균가중 금리는 월 3.84%였다. 그런데 긴급조치로 월 1.35%의 조정사채금리가 도입되자 기업의 부담은 일시에 약 3분의 1로 경감됐다.

그 당시 사채규모는 600억 내지 1,000억원, 많아야 전경련이 주장하는 1,800억원 선으로 추계했는데 실제로 신고된 기업의 사채는 그 당시 통화량의 80%에 해당하는 3,456억원에 달했다. 8.3조치가 발표되자 부도위기에 처해 노심초사하던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은 이제 살았다며 맥주잔을 들고 만세삼창을 불렀다고 한다.

8.3 조치의 효과가 1972년 하반기부터 경제전반에 스며들자 우리 경제는 급속히 회복되었다. 1973년 1.4분기 중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했고 같은 기간 국민총생산은 19.0%의 실질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들어 둔화되었던 경제가 다시 고도성장의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기업 재무구조의 취약성을 개선하고 성장의 과실을 국민들과 나누어 가진다는 차원에서 기업공개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다. 전경련도 8.3조치직후 기업은 사회적 공기임을 강조하고 8.3조치로 받은 혜택을 생산성 제고와 기업공개로 국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1972년 66개사에 불과하던 증권거래소 상장회사 수는 1979년까지 309개의 대기업이 공개되고 상장회사도 355개로 늘었다. 산업의 발전이 증권 등 금융산업의 발전으로 확산되는 전기가 마련되기도 한 것이 8.3조치의 또 다른 성과였다.

아울러 경공업에 종사하던 기업들이 중화학공업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본 체질을 갖추게 됨으로써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됐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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