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5) 정치권의 인재영입과 梅不賣香(매불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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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5) 정치권의 인재영입과 梅不賣香(매불매향)
  • 이형로
  • 승인 2019.11.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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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 향기커녕 악취 풍기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 많아
설중매. 매화는 고결 겸허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자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많은 시인묵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꽃이다.

'조국'이라는 폭풍우가 한차례 몰아치더니, 정국은 이제 내년 총선 채비에 들어가는 양상이다. 정당들은 새로운 인재를 영입한다며 딴에는 애쓰는 모습이다. 그 와중에 어느 예비역 장성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논란을 접하면서 ‘매불매향(梅不賣香)’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매화는 (함부로) 향기를 팔지않는다는 뜻이다.

그 장성은 영입이 도마에 오르자 ‘삼청교육대 정신교육’라는 망발에 가까운 말로 반박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의식수준에 경악했다. 그의 반박이 현역시절 행위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공천을 못받아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표하기 위함인지 그 의도는 알 수 없다.

◆시인묵객들에 널리 사랑 받은 꽃…선비정신의 표상

매화는 고운 자태와 맑은 향기, 눈 속에서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청초함으로 옛부터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라 칭송받으며 불의에 굴하지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꼽혔다. 또한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는 별명도 얻어, 모진 풍상을 겪어내는 강인한 정신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고결•겸허•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시나 그림의 소재로 지금까지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널리 받고 있다.

북송시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처럼 기르며 일생을 지내 '매처학자(梅妻鶴子)'란 고사의 주인공인 임포(林逋, 967~1028년). 그는 서호 고산에 은거하며 20여년간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오로지 학을 기르고 매화를 완상하며 지냈다. 그는 300여 수나 되는 매화시를 읊을 정도로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다.

'매처학자(梅妻鶴子)'의 주인공 임포. 중국 북송시대 선비인 임포는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처럼 기르며 일생을 지낼만큼 매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년)도 말년에 매화를 벗하며 지냈다. 말년에 둘째 아들과 두번째 아내마저 여의고, 그는 오직 매화를 사랑하는 매처학자의 삶을 살았다.

퇴계는 살아 생전에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 혹은 매선(梅仙)으로 의인화해서 부를 정도로 매화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할 만큼 사랑하였다. 그가 평생 무려 75제 107수에 달하는 매화시를 지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퇴계는 6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후손들에게 당신의 사후 상례와 석물을 화려하게 하지 말고 작은 빗돌이나 하나 세워달라는 유언을 내렸다. 그리고는 서재의 매화분재를 가리키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저기, 저 매화에 물 좀 주거라."

퇴계는 풍기 군수를 마지막으로 도산서원에 칩거하며 51차례나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끝내 고사하며 자신의 '향기'를 팔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당대 중국만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는 아닐지언정 어쨌든 군주주의 사회였다. 그렇다면, 조선도 '플루타르크영웅전'에서의 표현처럼 '법과 정의는 제우스신과 나란히 앉아 있다. 권력을 가진 이가 하는 모든 일, 그것은 그대로 법이고 정의일 수밖에 없다'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청렴결백한 삶을 영위하며 결코 나를 팔지 않겠다는 결기는 보통 사람으로선 한번도 힘들 것이다.

◆상촌 신흠이 노래한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불매향(不賣香)'적 태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상촌 신흠(象村 申欽, 1566~1628년)이다.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로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柳莖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오동은 천 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있고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수없이 이지러져도 그 본바탕은 남아 있고
버들은 아무리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요석 김성태의 예서체 작품. 조선시대 선비 상촌 신흠은 매화는 한평생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않는다(매일생한불매향)이라고 노래했다.

신흠은 조선중기 주자학 위주의 성리학 사회에서 이단으로 취급받던 양명학이 지양한 지행합일의 실천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개방적인 학문태도와 가치관을 지닌 그는 문학론에 있어서도, 시는 형이상자(形而上者)이고 문장은 형이하자(形而下者)라 주장하여 시와 문장이 지닌 본질적인 차이를 알고 창작할 것을 역설하였다.

특히 시는 객관적 사물인 경(境)과 창작주체의 직관적 감성인 신(神)과의 조화를 창작의 주요 동인으로 강조했다. 시인 내면의 직관적 영감과 상상력의 발현에 주목하는 이러한 시론은 당대 문학론이 대부분 정신적인 교화에 중점을 둔 것과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문학적 태도였다.

상촌의 시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인 '매불매향(梅不賣香)'이란 '아무리 곤궁에 처하더라도 나의 의지를 끝까지 밀고 나가겠노라!'는 자세의 다른 표현이다. 이를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가끔 자기 자랑할 때나 써먹는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꾼들은 전문가들도 어렵게 찾는 구절을 어쩌면 그렇게 구석구석 뒤져 적절하게 써먹는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그럴 시간과 정력이 있다면 민생에 좀 더 그 시간을 할애했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옛 정치가들의 올곧은 정신만을 본받았으면 한다.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 했다. 복숭아와 자두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밑에는 저절로 길이 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한갓 복숭아나 자두도 맛있게 잘 익었다면 일부러 부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가게 마련이거늘, 하물며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향기는커녕 악취를 팔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3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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