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6) 漱石枕流(수석침류)나 口中雌黃(구중자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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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6) 漱石枕流(수석침류)나 口中雌黃(구중자황)이나
  • 이형로
  • 승인 2019.12.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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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린 걸 알고도 우기는 고집불통이나 수시로 말바꾸기나 매한가지 꼴불견
- 말과 행동하기 전 신중하게 생각하며 언행 함부로 말라는 교훈
수석침류(漱石枕流). 자기 의견만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기울지 않는다는 사자성어로 요즘의 불통 세태에 깊이 새겨볼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짝이 지금까지 인생의 단짝인 친구가 있다. 그러니까 벌써 강산이 네번 반이나 바뀔동안 사귀고있는 친구다. 지금은 그런일이 별로 없지만 10여년 전만하더라도 산책하다가 툭하면 언쟁, 운동 끝나고 생맥주 한잔하다가도 말싸움 하기 일상이었다. 격해져서 강냉이 안주가 날아다닌 적도 있다.

네 말은 틀리고 내 말이 맞다는걸 서로 강조하다 보니 그런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요즘이야 지난 일을 회상할 때면 서로 쓴웃음을 짓지만, 그때는 자신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무리해서 설득하다보면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내 자신도 틀리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으니 상대방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괜히 죄없는 강냉이가 수난을 당하기까지 했다.

◆내의견만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 말은 듣지않는 불통세태

중국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사람 유의경(劉義慶, 430~444년)의 '세설신어(世說新語)'와 진서(晉書)의 '손초전(孫楚傳)'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전해진다.

삼국시대 서진(西晉)의 손초(孫楚, ?~293년)가 벼슬하기 전 젊었을 때 일이다. 당시 진나라는 한창 혼란시기였다. 이때 젊은이들 사이에는 속세의 도덕이나 명문을 경시하고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중히 여긴 청담사상이 유행하던 때였다.

이때 손초도 당시 우상인 죽림칠현처럼 속세를 떠나 은거하기로 결심한 날, 친구인 왕제에게 흉금을 털어놓기로 했다. 

"나는 이제 여기 있는 돌로 베개 삼고, 저기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며 살고 싶다네(枕石漱流, 침석수류)“.

이렇게 조조의 '추호행(秋胡行)'이란 시의 한 구절을 멋지게 인용해야할 것을 그만 말이 헛나왔다.

"나는 이제 돌로 양치질하고 저기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 삶을 살고 싶다네(漱石枕流, 수석침류)“.

이 말을 들은 왕제는 친구가 미안해할까, "자네 말이 헛갈린거 같네"라고 조용히 말을 했지만, 손초는 우기고 나갔다. 그러면서 여기에 변명까지 더했다.

"내가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으려는 이유는, 옛날 시냇물에 귀를 씻은 허유처럼 쓸데없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라네."

◆시류따라 그때그때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

같은 시대에 왕연(王衍, 256~311년)이란 사람은 젊어서 당시 유행하던 청담(淸談)을 즐겼으며 관리가 되어서도 노장사상을 받들었다. 그는 당시 노장사상의 대가이며 자기 사상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난 곽상(郭象, 252?~312년)을 흠모하여 닮고자 했다.

왕연은 현령 벼슬을 시작으로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으며 청담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장사상에 대해 강연을 했는데, 앞뒤 이론이 맞지 않는 일이 잦았다. 사람들이 그 점을 지적하고 의문을 제기하면 되는대로 말을 바꾸어 강연을 계속했다.

요즘의 수정액처럼 쓰인 자황(雌黃). 신구자황(信口雌黃), 구중자황(口中雌黃)은 썼다 지웠다, 이랬다 저랬다 그때그때 수시로 말을 바꾸는 행태를 빗댄 말이다.

이런 경우가 가끔이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늘상 있는 일이 되었다. 강연하다가 고치고 고치고...사람들은 이를 '구중자황(口中雌黃)' 또는 '신구자황(信口雌黃)'이라며 비웃었다.

자황(雌黃)은 비소와 유황의 화합물인 비소황화물로 비황(砒黃) 혹은 계관석(鷄冠石)이라고도 하며 악성종양의 치료에 쓰였다. 또한 종이에 글을 쓰다 틀린 글자가 있거나 문장을 바꿀 때, 요즘 화이트 수정액처럼 일종의 지우개로 쓰였다.

그러니까 '구중자황'이란 말은 입 속에 지우개가 있는 것처럼 수시로 자신의 의견을 바꾼다는 말이다. 이 일화는 손성의 '진양추(晉陽秋)'와 진서 '왕융열전(王戎列傳)'에 나오는 고사다.

손초와 왕연은 지신들의 주장이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했다. 손초는 그래도 끝까지 억지를 부리며 인정을 안하고 시쳇말로 ‘꼰대짓’을 했다는 것이고, 왕연은 수시로 잘못을 알고 교정했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처음부터 방향이 틀렸으니 자꾸 고치다 보니 더욱 엉뚱한 방향으로 나간다. 손초가 억지를 부리는 똥고집 꼰대라면, 왕연은 교활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초년생이 자신이 한 말이 틀린 줄 알면서 끝까지 밀어부치는 것이 강단이나 소신인 양 하는 짓이나, 정치를 좀 했다는 자가 자기가 한 말을 수시로 바꾸는 것이나 꼴불견이긴 마찬가지다. 그게 그거, '엎어치나 메치나'이다.

'포테이토(potato)나 포타토(potato)'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발음이 어떻든 결국은 ‘포테이토’요 ‘감자’라는 것이다.

자기만 옳다며 상대방 말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나 파당이익과 시류에 따라 그때그때 오락가락 말과 입장 바꾸는 사람들이나 매한가지 아닐까?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3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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