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 타계…‘북(北)우중’, ‘세계경영’, ‘세일즈맨 신화’ 조어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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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 타계…‘북(北)우중’, ‘세계경영’, ‘세일즈맨 신화’ 조어 남기고
  • 김동현 기자
  • 승인 2019.12.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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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기업경영 영욕 뒤로한채 9일 오후 숙환으로…향년 83세
- 서른살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창업…세계경영으로 국내 2위 그룹 일궈내
- 외환위기로 그룹 해체 비운…말년엔 베트남 경제개발 자문, 동남아지역 청년사업가 양성
지난해 5월 베트남 출판사 알파북스가 김우중 전 회장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베트남어로 번역 출판한 당시(사진=인터넷 캡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일즈맨 신화’, ‘세계경영’, ‘북(北)우중’ 등 많은 신조어를 뒤로한채 9일 오후 11시50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83세.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김 회장은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의 상징적 기업인이다. 그의 창업과 대우그룹 성장사(史)는 1970~80년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사와 궤를 같이한다. 김 회장을 두고 만들어진 신조어들은 영욕의 기업경영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창업후 짧은 기간에 고속성장…한국경제 압축성장의 상징적 기업인

세일즈맨 신화는 수출업체 직원으로 원단수출 업무를 하다가 창업해 재계 2위(자산기준)의 대우그룹을 일궈낸 것을 두고 생긴 말이다.

세계경영은 1년 중 국내에 있는 날보다 해외출장이 더 많을 정도로 아프리카, 동구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시장개척을 해온 광폭경영에서 비롯됐다. 1989년 펴낸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회장의 저서는 출판 6개월만에 100만부가 팔릴 정도로 공전의 인기를 끌며 젊은이들의 필독서가 됐다.

북우중은 IMF사태로 그룹해제의 비운을 맞은 후 말년에 베트남에서의 경영노하우 전수와 후진양성과 등의 활동을 하면서 생겨난 단어다. 베트남 교민사회와 진출기업들 사이에는 ‘북우중, 남연차’라는 말이 회자된다. 김 회장이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 머물며 베트남 관료들에 대한 경제개발 자문과 인재양성 등으로 영향력을 발휘했고, 호치민과 동나이성 등 남부지방에서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여러개의 회사를 갖고 활발한 사업 활동을 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김 회장은 1936년 대구 출생으로 경기중•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1963년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만 서른살 때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그는 한성실업에서 일할 때 국내 처음으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킬 만큼 세일즈 및 시장개척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대우실업이 짧은 기간에 재계 2위의 대우그룹으로 성장한데도 이런 그의 능력이 토대가 됐다.

◆국내보다 해외출장일이 더 많아, 세계경영…차입경영 한계, IMF사태로 그룹해체

1969년 호주 시드니에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를 설립했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회장의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와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 단기간내 경영정상화를 이뤄 국내 중화학산업화를 선도했다. 같은 시기 에콰도르(1976년),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1982년 무역·건설부문을 통합해 ㈜대우를 설립해 그룹형태를 갖췄고 이후 자동차·중공업·조선·전자·통신·정보시스템·금융·호텔·서비스 등의 세계진출을 본격화했다.

1983년에는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이른바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수상했다.

김우중 회장은 80년대 말부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세계는 넓고...’에세이를 낸 것도 그무렵이었다. 대우그룹은 1998년 자산 76조7,000억원, 매출 91조원, 수출 186억달러의 실적을 기록했다. 대우의 수출은 당시 한국 전체수출 1,323억달러의 14%에 달하는 것이었다.

1999년 해체 직전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고용 25만명 규모였다.

그러나 이같은 김 회장과 대우그룹 성장에는 ‘차입경영’이라는 달갑지 않은 지적이 뒤따랐으며 결국 빚 때문에 그룹해제의 운명을 맞았다.

IMF사태는 부채가 많은 대우그룹에 치명타가 됐다. 당시 대우그룹의 부채는 89조원에 달했다. 위기로 금리가 치솟으면서 대우의 금융비용 부담은 걷잡을 수없이 늘어나며 유동성위기가 닥쳤다.

대우차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추진이 어그러진데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대우는 41개 계열사를 4개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방안을 내놓으며 안간힘을 다했으나 끝내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교육, 의료, 소외계층 지원 등

김 회장은 생전에 교육, 의료분야, 기초학문연구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창업후 10년만인 1977년 사재를 출연해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한 뒤 현재의 아주대학교를 인수, 교육지원 사업에 나섰다. 김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수원 아주대병원은 대우학원이 1994년 개원한 병원이다.

1980년에는 조선소가 있던 경남 거제에 학교법인 지성학원을 설립, 옥포·옥림유치원, 대우초, 거제중·고교를 세워 지역주민들의 교육에 기여했다.

김 회장은 1978년 역시 사재를 출연해 대우재단을 설립하고 낙도·오지의 의료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대우재단은 이후 1979년 전남 신안과 무주, 진도에 대우병원을 개원했고 이듬해에는 완도에도 대우병원을 개원, 낙도주민들의 건강을 보살피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1981년에는 대우의료재단(초대 이사장 홍인기)을 설립해 거제에 처음으로 종합병원 격인 대우병원의 문을 열었다.

기초학문연구지원사업에도 열성적이었던 고인은 1980년에는 개인재산을 추가로 출연, 그 성과를 담은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를 발간하는 등 760여권의 학술서 출간에 기여했다. 대우학술총서는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서로 꼽히고 있다.

이후 1992년에는 대우장학재단과 산·학·연 연구조합인 고등기술연구원을 설립해 장학과 교육지원 사업을 펼쳤다.

김 회장은 '세계는 넓고....'의 인세를 토대로 1992년 청주에 소년소녀가정의 자립을 지원하는 대우꿈동산을 개원하기도 했다.

◆하노이에 머물며 베트남 관료들에 경제개발자문 등 영향력 커…북(北)우중

김 회장은 그룹 해체 이후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한 베트남에 주로 머물며 동남아의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사업가(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프로그램에 주력해왔다.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프로그램은 그동안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 회장은 건강이 예전같지 않은 지난해 8월에도 GYBM 교육현장을 방문했는가 하면, ‘GYBM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줄 것’을 유지로 남길만큼(대우 관계자 전언) 이 사업에 큰 관심과 열정을 보였다. 

베트남 관료들도 김 회장에게 경제개발을 위한 자문을 자주 받았다. ‘북우중’이라는 말도 김 회장의 이같이 활동에서 나온 것이다.

대우그룹 해체후 한동안 기업은 사라졌어도 ‘대우(DAEWOO)’라는 브랜드를 살리고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학계와 재계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김 회장이 세계를 누비며 닦아놓은 ‘대우’와 그 이름이 상징하는 개척정신의 영향력은 그만큼 깊고 컸다.  

대우그룹 전 임직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중심으로 대우 임직원들은 매년 3월 창업기념일 행사를 열어왔으며 지난해 행사에 참석한 김 회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였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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