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 설로 시작하는 한해…魚傳尺素(어전척소)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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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 설로 시작하는 한해…魚傳尺素(어전척소)를 기다리며
  • 이형로
  • 승인 2020.01.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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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봄과 함께 님에게서 기쁜 소식' 고대
자기접시에 그려진 약리도(躍鯉圖). 잉어가 도약하는 모습의 약리도는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20년 경자년도 새해 벽두부터 국내외로 뒤숭숭하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을 연출하더니 나라안에서는 작년 조국 정국에 이어 공수처법 통과와 검찰 고위직인사, 선거법 등으로 정가가 또 시끄럽다.

민화에서 어해도(魚蟹圖)란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넓은 의미에서 수중에서 사는 모든 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물고기는 암수 한쌍으로, 혹은 새끼를 거느린 모습으로 나타나며 수초• 꽃• 새들까지도 등장한다. 민화에서 물고기는 단순히 그것을 감상하고자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길상적인 의미가 담긴 상징화다.

첫째,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다. 물고기는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고 있어서 항상 삿된 것을 경계할 수 있다고 여겼다.
둘째, 많은 알을 낳는  물고기는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배가 부른 물고기 그림은 풍요를 상징한다. 
셋째,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데 이는 동해 먼바다에 살고 있다는 상상의 어류인 비목어(比目魚)와 관련있다. 눈이 하나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이 짝을 지어야만 헤엄을 칠 수 있다는 비목어는 암수 날개가 한 쪽씩 밖에 없다는 비익조(比翼鳥)와 함께 금슬 좋은 부부의 상징이다.
넷째,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그림이 잉어가 도약하는 모습을 그린 약리도(躍鯉圖)다.

잉어 형상의 자물쇠. 물고기는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고있어 민화 등에서 삿(邪)된 것을 경계하는 벽사의 의미로 표현됐다.

옛부터 중국에서는 용문(龍門)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곤륜산에서 흐르는 물은 적석산을 거쳐 황하 상류의 용문폭포에 이른다. 이 폭포 밑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수천만 마리의 잉어가 모여 서로 다투어 폭포를 뛰어 오른다. 폭포를 뛰어 오른 잉어만이 용이 되어 만사형통의 여의주를 갖게된다.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입신출세의 가도에 오르게 되는 것을 '용문에 오르다'라고 하며, 그 첫번째 관문인 진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출세의 제일보라 해서 등용문(登龍門)이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크기가 다른 두 마리 잉어가 유유자적 노는 그림은 소과•대과에 두번 급제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물고기 세 마리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삼여도(三餘圖)라 하며 '선비들의 면학하는 태도를 일깨운다'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에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책 읽기를 좋아하여 늘 책을 끼고 살았다. 학문이 날로 발전하여 경서를 강론할 수준에 이르러, 고관으로도 입신해 호조판서에 해당하는 대사농(大司農)의 벼슬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그를 사사하겠다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선뜻 제자로 받아들이려하지 않았다. 한번은 어떤 이가 그에게 배움을 청하자 " 우선 책을 여러번 읽어야 한다. 여러번 읽다 보면 그 뜻이 절로 드러난다."(當先讀百遍 讀書百遍 其意自見, 당선독백편 독서백편 기의자현)‘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매일 쪼들려 바쁘지 않은 날이 없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자, 동우는 세 가지 여유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겨울과 밤 그리고 비 오는 날이 세 가지 여유로운 시간에 해당하는데,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 시간이고, 밤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며, 비 오는 날은 농사의 나머지 시간이다'(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라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민화 삼여도(三餘圖). 삼여는 세가지 여유를 말하는 것으로 선비의 면학태도를 일깨우는 말로 쓰인다.

이는 삼국지 동우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림에서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리는 까닭은 물고기 어(魚)자와 남을 여(餘)자는 발음이 같은 ‘위(yu)’로 해음(諧音)이기 때문에 세 가지 여유 즉 '삼여三餘'를 의미한다. 바로 동우의 고사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제나 후학에게 학문을 북돋으려는 방편으로 삼여도를 선물하곤 했다. 선비들이 삼여도를 서재에 걸어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어전척소(魚傳尺素)'라는 물고기와 관계있는 사자성어가 있다. 한나라 때 변방에 주둔군으로 떠난 남편이 아내에게 생선 뱃속에 편지를 넣어 보냈다는 옛노래(古樂府)에서 비롯됐다. 한나라 일척一尺은 24cm 정도, 소(素)는 흰명주를 말한다. 그러니 20여cm되는 흰 비단에 소식을 적어서 생선 뱃속에 넣어 안부를 전했다는 사연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멀리서 온 나그네
잉어 두 마리 전해 주었네
일하는 아이에게 잉어 요리 시키니
뱃속에 비단 편지가 들어 있었네
설레는 가슴 안고 천천히 읽어보니
앞부분은 식사 거르지 마라
뒷부분에는 당신이 너무 보고 싶다는 사연이네

客從遠方來 객종원방래 
遺我雙鯉魚 유아쌍리어
呼兒烹鯉魚 호아팽리어
中有尺素書 중유척소서
長跪讀素書 장궤독소서
書上竟何如 서상경하여
上有加餐食 상유가찬식
下有長相憶 하유장상억

이 시의 '두 마리 잉어(雙鯉魚)‘는 실제 물고기가 아니라 잉어 모양의 나무상자를 말한다. 뚜껑과 본체로 나누어지니 두 마리 잉어라 한 것이다. '잉어 요리를 하다(烹鯉魚)'라는 말도 물론 편지가 든 잉어 상자를 열어본다는 은유다.

편지는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가는 동안 훼손될 우려가 있어 나무상자에 넣어 운반했는데 상자는 주로 잉어 모양이었다. 이때 잉어는 하늘의 뜻도 알리고 낭군 소식도 전하는 전령인 동시에 풍년 또는 다산을 상징하는 길조였기 때문이다.

여야의 날선 공방은 21대 4.15 총선과 맞물려 더욱 뜨거워질 양상이다. 우리 국민은 얼마를 더 기다려야 정치인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설을 맞아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봄과 함께 님에게서 기쁜 소식이 오길 기다리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3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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