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耕當問奴(경당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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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耕當問奴(경당문노)’
  • 이형로
  • 승인 2020.02.03 12: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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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 일은 농부에 묻는 것처럼 의료전문가들 의견에 귀기울여야
- 無病自灸(무병자구), 귀찮더라도 예방이 최선…국민들 노력도 중요
고은(古恩) 지성룡의 '경당문노 직당문비(耕當問奴 織當問婢)'. 농사 일은 하인에게 묻고, 베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야 하는 것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당국이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올바른 판단과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남쪽으로부터 매화를 시작으로 꽃소식이 한창 전해질 때인데, 북서쪽 중국에서 반갑지 않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소식에 국민들 걱정이 태산이다. 2일 현재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환자는 14000명, 사망자는 304명이다. 봄철의 미세먼지 걱정은 오히려 하찮은 일이 되어 버렸다.

전염병의 확산은 그 자체로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정부가 정보를 독점한 상황에서 방역활동이 효과적이지 않으면 정부시책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정보 비공개에 의한 정부의 신뢰도 하락은 지난 메르스 사태와 같은 결과를 되풀이할 수 있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최근에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 전염병으로는 2015년을 강타한 메르스, 그 이전에는 신종플루와 사스 등이 있었다.

조선후기 역병(疫病 전염병)이 유행한 빈도는 매우 높아서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역병의 창궐은 오히려 전쟁보다 인구를 감소시키는 더 큰 요인이었다. 심할 때는 50만명 이상이 죽었다고 기록되었으니 전체인구의 5%가 역병으로 사망한 것이다.

조선후기 역병으로는 콜레라, 천연두, 성홍렬, 이질, 홍역, 장티프스 등이 유행했고 가장 심한 것은 천연두와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고통스럽기로 악명이 높은 질병이다. 얼마나 아팠으면 범이 살점을 찢어내는 듯 고통스럽다는 뜻에서 '호열랄(虎列剌)*이란 말이 나왔겠는가. 조선사람들은 그 고통이 마치 쥐가 몸속 구석구석을 갉고 다니는 것 같다고 '쥐통' 또는 '쥐병'이라 불렀다.

조선인들은 잠자는 사이 쥐의 모습을 한 악귀가 다리를 갉다가 배로 올라와 몸속에 스며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콜레라의 원인인 쥐를 쫓아낸다는 의미로 집안에 고양이를 기르거나, 집 안팎에 고양이 부적 붙이기, 고양이 수염을 태워 먹이기, 고양이 영혼에 기원 올리기, 아픈곳에 고양이 가죽 문지르기 등의 대처법이 생겨났다.

요즘도 다리가 저릴 때 '쥐가 난다'고 하며,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로 풀리게 한다는 장난은 위와 동일한 사고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프랑스 탐험가 샤를 바라의 '조선기행'에 나오는 콜레라퇴치 고양이 부적. 조선시대 사람들은 콜레라의 고통이 마치 쥐가 몸속 구석구석을 갉고 다니는 것 같다고 '쥐통' 또는 '쥐병'이라 불렀으며 이를 퇴치하기위해 천적인 고양이를 가까이 두는 방범을 내세웠다.

역병은 '역귀(疫鬼)'가 사람에게 붙는 것으로 생각하여 역귀를 겁주거나 쫓아내는 축귀(逐鬼),  살살 달래서 역귀의 한을 풀어주는 굿, 더 뛰어난 신령의 도움을 받아 역귀에서 벗어나는 방법 등이 역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축귀에는 복숭아 나뭇가지로 환자를 때리거나 불을 이용해서 쫓는 방법이 있었으며, 달래는 방법으론 굿과 '여제(厲祭)'가 있었다. 더 큰 신령의 도움은 장승을 세우거나 산천(山川)이나 성황(城隍) 등에 비는 방식이 있었다. 이 가운데 여제의 방식은 특기할 만하다.

여제의 대상은 전쟁이나 질병, 형벌 등으로 불운하게 죽거나 제사를 지내줄 후손마저 없는 외로운 혼령이다. 이들을 '여귀(厲鬼)'라고 하며 우리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고 여겼다. 이런 여귀가 역병이나 한발(旱魃)의 원인이라고 하여 역병이 유행하거나 가뭄이 심할 때 국가나 고을에서 여제를 지냈다.

도성을 중심으로 좌측에 종묘와 문묘, 우측에 사직단이 설치되는데 여제단은 북쪽에 위치한다. 지방 군현에서도 치소인 관아를 중심으로 북쪽에 여제단을 설치하는 것이 관례다. 서울은 북한산에 여제단이 상설되었고 청명, 7월 보름, 11월 초하루에 예방차원에서 제사를 정기적으로 지냈다. 

여제는 대한제국까지 행해졌는데 과학지식의 결여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였지만, 민심수습 차원의 이유도 있었다. 오늘날은 과학의 발전으로 백신을 만들어 전염병을 예방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뜻밖에 지금과 같은 신종바이러스가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야말로 전문가의 견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이 잘 하는 분야가 있어 그 일로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것에 능통할 수는 없어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통치자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자도 지위나 학식의 고하를 떠나 남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며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교훈을 남겼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에는 심경지(沈慶之, 386~465)라는 책략이 뛰어난 장수가 있었다. 북위(北魏)가 북방의 이민족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당시 황제인 문제는 북위를 정벌할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먼저 심경지에게 출병의사를 물었으나 아직 북위를 이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문제는 고집을 꺾지않고 전쟁 경험이 전무한 문신들을 불러 모아 논의했다. 이에 심경지는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있습니다. 농사일은 머슴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봐야 마땅합니다(治國如治家 耕當問奴 織當問婢)“라며, 백면서생(白面書生)들과 전쟁을 도모해선 안된다고 간언했다. 이러한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군사를 일으켰다가 참패했다.

이는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심약(沈約, 441~513)이 편찬한 송서(宋書)에 실린 일화다. 여기에서 심경지는 전쟁의 전문가인 군인이요, 책상물림인 백면서생들은 전쟁에 문외한들이다. 머슴과 하녀(奴婢)는 요즘말로 하면 전문농업인과 직조기술자로 바꿀 수 있다. 이처럼 집안일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거늘, 국가의 대사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 비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수칙 안내문과 손세정제. 전염병 방역을 위해서는 정부의 대책은 물론 국민들의 예방 노력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산•진천 군민들이 우한에서 이송된 우리 교민들을 받아들인것은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의 설득 그리고 주민들의 양보와 협조로 이루어낸 결과다. 또한 정부의 방침을 신뢰했기 때문이리라.

지금의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초당적인 협력과 정부와 국민이 똘똘 뭉쳐야 한다. 정부도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우리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호들갑을 조금 떨 필요도 있다.

장자 도척편(莊子 盜跖篇)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도척이 천하의 큰도둑인 줄로만 알고 찾아가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후에 이렇게 탄식을 한다.

"나는 병이 없는데도 스스로 뜸을 뜬 꼴이 되었다!(無病自灸)". 자기가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말이다.

요즘 뜸은 그렇지 않지만 공자 때만 해도 무척 뜨겁워 아팠을 것이다. 병이 없는데 구태어 번거롭고 게다가 고통스럽기까지한 뜸을 뜰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 병의 예방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뜸을 떠야 한다. 지금은 모두가 무척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서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이 난관을 무난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은 19세기말 cholera를 '호열랄' 혹은 '호열랍(虎列拉)'으로 음역했다. 발음은 모두 '코레라(korera)'다. 당시 조선에선 '랄(剌)'자와 '자(刺)'를 혼동하여 '호열자(虎列刺)'라 잘못 읽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영향으로 '후리에라(虎烈拉)'라 하고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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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준 2020-02-04 12:39:13
재미있는글 잘 읽고 갑니다.다음 내용이 기대되는군요~^^

이기세 2020-02-04 11:45:10
호열자의 기원이 원래 콜레라 였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네요.
이형로님의 칼럼은 정말 유익한게 많습니다. 구수한 옛 이야기 풀어나가는 것 처럼 인생과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가시니 읽기도 좋고 받아들이기도 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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