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9) 경제인, 그들은 혁명가였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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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9) 경제인, 그들은 혁명가였다(상)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 승인 2020.02.1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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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주 1세대들, 땀과 열정으로 지금의 경제 기반 마련
-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산업 신화, 그들의 손에서 창조돼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저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 1세대 창업자들은 땀과 열정, 애국심으로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신화를 창조하며 오늘날 우리경제의 기반을 마련한 '혁명가'였다. (사진=SK그룹)

지난 1월19일 타계한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1922~2020)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군 창업주 1세대의 시대가 저물었다. 이미 고인이 된 이병철(1910~1987), 정주영 (1915~2001), 김우중(1936~2019), 박태준(1927~2011), 최종현(1929~1998) 같은 분들이 창업주 1세대의 범주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회사를 창업해 왕성한 기업 활동을 벌이던 시절은 한국경제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1966년에서 1991년까지 25년간 한국의 연평균 실질성장률은 9.3%에 달했다. 1인당 GNP도 1965년 106달러에서 1995년에는 1만2340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2차대전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국가가 됐다.

◆오일쇼크, 국가부도, 금융위기 등 숱한 위기…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물론 고비도 있었다. 자원이 없는 나라이기에 유가가 폭등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70년대와 80년대의 오일쇼크가 그것이다. 정책의 대비없는 섣부른 개방으로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전세계를 덮친 금융위기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마침내 인구가 5000만명이 넘으면서 1인당 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3050클럽에 7번째로 가입했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G7국가가 된 셈이니 혁명이 일어난거나 진배없다.

혁명의 진앙지는 누가 뭐래도 창업주 1세대의 애국심이었다.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면서 이병철 삼성 회장은 회사를 말아 먹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수많은 밤을 하얗게 샜다. 그래도 그는 “일본이 할 수 있다면 한국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삼성이 없어도 나라는 살지만 나라가 없으면 삼성도 없다”라고 자신의 회고록인 호암자전에 기술했다. 그가 날밤을 새우며 고민했던 반도체였지만 지금은 반도체 없는 한국경제를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던 창업주 1세대들은 일본과 가까우면서도 일본을 뛰어 넘겠다는 꿈이 있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은 1985년 당시 미쓰비시자동차에서 엔진기술을 제공받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차의 알파엔진 개발을 확인한 1989년, 미쓰비시 자동차의 구보 회장은 아이치현의 연구소로 가서 퇴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가 연구원들을 불러 모아 호통을 치며 한 말은 “너희들 지금처럼 하다가는 현대차에 곧 기술 배우러 가야할거다. 정신 차려라”.

그때까지도 일본 게이단렌(經團聯)의 회장단과 전경련의 회장단이 연차 정례회의를 할때면 단골의제는 자동차산업의 연수생 확대였는데 이는 현대자동차가 제의한 단골의제였고, 일본측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를 채택해주곤 했다.
 
정주영의 나라사랑 정신은 현대 울산공장의 지붕에 새겨져있다. 그는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며 현대그룹 전체를 나라사랑의 화신으로 만들고자 했다.
 
얼마전 타계한 신격호 회장에게서도 나라사랑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그는 1978년 2월 일본에서 개최된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페더급 세계챔피언전에서 일본 선수를 꺾은 홍수환 선수를 위해 도쿄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일본 땅에서 일본 선수를 꺾었는데 카퍼레이드라니? 홍수환 선수도 순간 당혹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다음날 홍수환 선수를 롯데 사무실로 초대했다. 그리곤 “일본 선수 를 꺾은 주먹이네”하며 홍수환의 두 손을 어루만졌다고 한다. 옆에 있는 일본인 임원들도 신기해하며 두 주먹을 만졌다고 한다. 신 회장은 내심 그 당시 일본보다 못살던 한국이지만 언젠가는 더 잘 살 수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홍선수를 후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한 민족의식, 애국심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프로복싱 전 세계챔피언 홍수환. 지난 1월 타계한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1978년 일본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페더급 세계챔피언전에서 홍 선수가 일본 선수를 물리치자 도쿄에서 홍 선수를 위한 카퍼레이드를 벌여 한국인의 자부심을 표출했다. (사진=롯데그룹)

◆중국 개혁개방 이끈 덩샤오핑, 애국심 가득한 한국 기업인들 부러워해

SK의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기 직전까지 매달려 집필했던 책이 그의 사후에 유고로 나왔다. 제목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이었다. 경제인이자 기업가로서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은 잘 사는 나라였고 자신의 회사인 SK의 발전은 그다음이었다.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워 인재를 양성했고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좁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사후에 화장을 실천했다. 한마디로 나라를 잘살게 하기 위해 솔선수범의 길을 걸어갔던 셈이다.

외환위기로 국가가 부도났을 때,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국제수지 500억달러 흑자론을 주창했다. 그는 돌멩이라도 수출해 빼앗긴 경제주권을 되찾자고 했다. 당시 정부의 예측은 30억 달러 정도의 국제수지 흑자. 그러나 금모으기로 시작된 국민의 저력은 1998년 한해에만 460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로 귀결됐다.

그리고 이듬해 외자유치까지 포함해 1000억달러의 외화를 확보해 경제주권을 되찾아왔다. 그의 국제수지 500억달러 흑자론은 단순한 숫자상의 목표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국민적 자신감의 회복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가 망친 나라를 경제로 되살린 최고의 애국심이었다. 김우중은 나라를 구한 일등공신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은 한국의 기업인을 무척 부러워했다. 포항종합제철같은 제철소를 만들어 달라고 일본에 요청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잖아요”라는 대답을 듣고서였다. 그리고 1981년 한국의 대기업들이 주축이 돼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유치했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다.

1983년 5월 춘천에 불시착한 중국민항기 납치사건도 나라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항공사 대표 덕분에 원만히 해결되는 것을 보고 깊이 감명받았다. 등소평에게 애국심 가득한 대기업의 육성은 중국경제에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고 한국의 경제정책은 금과옥조가 됐다.

우리 역사에 언제 중국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반만년 역사에서 중국은 항상 대국이었고 우리의 흠모대상이었다. 그런 중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한국에 삼성같은 기업이 있고 박태준, 정주영, 조중훈 같은 기업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중국은 제철공장을 가지게 되었음은 물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분야에서도 한국을 앞서고 있다.

창업주 1세대는 나라 없는 설움을 딛고 나라를 새로 세운 혁명가였다. 죽창과 의병이 아니라 땀과 열정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영토를 전 세계로 넓힌 정복자였다. 세계는 지금 또 한 번의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입한 세계경제 속에서 한국의 새로운 도약을 실천해 갈 다음 세대의 혁명가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맞이할 수 있을까?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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