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12) '헛소리(bullshit)'말고 진짜 '횡설수설(橫說竪說)'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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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12) '헛소리(bullshit)'말고 진짜 '횡설수설(橫說竪說)'을!
  • 이형로
  • 승인 2020.03.0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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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설수설의 본래 의미는 ‘해박한 지식으로 종횡무진하며 가르친다’는 뜻
- 4•15 총선, 얼마나 많은 헛소리 쏟아질까…재미있되 논리정연한 말 듣고 싶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고은(古恩) 지성룡 작품. 봄이 왔지만 코로나19가 봄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있다.

여느 때 같으면 4•15 총선 관련 기사가 뉴스 첫머리를 차지했을 요즘, 코로나19로 그 자리를 빼앗겼다. 중국에서 불어닥친 역병바람이 꽃바람, 미세먼지, 더나아가 선거바람까지 휘몰아 가고 있다. 동방규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시 한 구절이 70~80년대 이후 2020년 봄에 실감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정치권은 4•15 총선 체제로 돌입했으나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공약(空約)'남발, 상대후보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비난, 가짜뉴스 등 우리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횡설수설'은 적게 듣게 됐기 때문이다.

◆정몽주에게 ‘횡설수설 선생’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

횡설수설(橫說竪說)의 사전적 의미는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이다'이다. 다시 말하면, 그럴듯한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나 사실은 뜻이 없는 어그러진 말을 늘어놓는 것을 뜻한다. '아전인수', '견강부회', '언어도단', '내로남불' 심지어는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시쳇말조차 포괄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횡설수설이란 말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원형은 장자 서무귀편에 나오는 여상의 '횡설종설(橫說從說)'이다. 여상은 위(魏)나라 문후(文侯)를 설득하기 위해 횡설(橫說)로는 유가의 시•서•예•악을, 종설(從說)로는 병가의 태공병법을 인용했다고 한다.

횡설수설의 본래 의미는 해박한 지식으로 가로 세로로, 말그대로 종횡무진하며 사람을 깨운친다는 뜻인데 지금은 오락가락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불가에서는 1004년에 출간된 선종의 역사서라 할 수 있는 '경덕전등록 희운선사편'에 처음 보인다. 선종에서 횡설은 돈오(頓悟), 수설은 점수(漸修)라 할 수 있다.

고려말에 유가 참고서 즉 위서(緯書)라고는 '주자집주'밖에 없었으나 정몽주는 경서(經書)의 뜻을 정확히 해석하였으며 이를 설명할 때도 막힘이 없었다.

그의 스승인 이색(李穡,1328~1396)조차 "정몽주는 강론할 때 '횡설수설'하게 설명하였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夢周論理 '橫說竪說' 無非當理)“라고 극찬하며 그를 '동방 이학의 시조(東方理學之祖)', 즉 우리나라 성리학의 원조로 추앙했을 정도였다. 당대 대학자이자 스승이었던 이색으로부터 이처럼 극찬을 받은 정몽주는 이후 '횡설수설 선생'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고려사 열전 제30권, 정몽주전)

이처럼 '횡설수설'의 본래 의미는 해박한 지식으로 가로로 세로로 말 그대로 종횡무진하며 다른 사람을 깨우친다는 뜻이다. 횡은 다종 다양한 사물을 포괄하는 탐색의 폭을, 수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탐색의 깊이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횡설수설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왜, 지금의 얼토당토않은 의미로 바뀌었을까? 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횡수설거(橫竪說去)'나 '횡수설화(橫竪說話)'라는 말을 지금의 횡설수설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숭유억불 정책이 심화되면서 불가에서 즐겨 사용하던 말을 일부러 왜곡한 것은 아닐까? 마치 '장광설(長廣舌)'이란 불교용어가 해방이후 왜곡된 의미로 변한 것처럼 말이다.

'개소리 괴소리를 지껄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개와 고양이 소리를 지껄인다'라는 표현으로 횡설수설의 속된 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포은 정몽주 초상화(사진 위)와 경북 영천 임고서원의 '동방이학지조' 송탑비. 포은의 스승인 이색(李穡)은 "정몽주는 강론할 때 '횡설수설'하게 설명하였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夢周論理 '橫說竪說' 無非當理)“라며 포은을 '동방이학의 시조'라고 극찬했다.

◆헛소리, 진실호도하는 교활하고 파괴적 언어행위…거짓말보다 훨씬 위험

미국의 분석철학자인 프랭크퍼트(Harry G. Frankfurt) 교수는 '헛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2005, 프린스턴대학 출판사)라는 저서에서 '헛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헛소리가 참(truth)과 거짓(false)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매우 교활하고 파괴적인 언어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횡설수설의 본래 의미를 알고 있을까? 그들이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엘리트집단이기 때문에 본래의 그 깊은 뜻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줄기차게 횡설수설을 하고 있으리라.

얼마 전 야당이 자기당을 비판하는 언론에 '삼진아웃제'를 적용해서 아예 취재를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가 여당과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3일만에 철회했다.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그런데 이에 못지않은 짓을 여당에서도 저질렀다. 신문에 여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어느 교수를 고발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소가 웃다가 턱이 빠질 노릇이다. 불과 며칠전 야당의 삼진아웃제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거라며 통렬히 비난했던 여당이다.

더구나 가관은 방송에 패널로 출연한 여당 국회의원의 횡설수설이다. 야당은 삼진아웃제를 3일만에 철회했지만, 여당은 하루만에 철회했으니 자기네가 그래도 낫다는 것이다. 그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오십보백보'라는 말도 모른단 말인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야당 지도자라는 사람은 현 코로나19 사태는 위험한 상황이므로 '경계단계'에서 '심각단계'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서울시장이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 등 대규모 집회장소를 폐쇄한다고 하자, 민주주의 탄압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심각단계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사람이 대규모 집회는 허용하라는 말인가? 심각단계에서는 집단행사를 막고 강제해산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심각단계 격상을 촉구한 사람이 심각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민주주의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는 말이다.

4•15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정치인들의 횡설수설이 더욱 심해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제발 당부하건데, 이왕 횡설수설을 하려면 원래의 의미대로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논리정연하고 재미있게 좀 해달라. 그래서 우리들이 스트레스 좀 덜 받게 해달라는 부탁이다.

이제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서 논리에 어긋나지 않고 조리있는 말이라면 알아듣지 못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러나 재미있게 한다고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또는 '주어가 없다'라는 이런 기발한 유머는 삼가자. 그러면 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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