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13) 경제인, 그들은 왜 환호하지 않았을까?
상태바
[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13) 경제인, 그들은 왜 환호하지 않았을까?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전 SK그룹 사장)
  • 승인 2020.04.24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주영과 이건희, 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개최 확정 발표순간 조용히 웃으며 박수만
- 기업인들 원래 큰 제스처 없지만 ‘사회적 인식’도 기쁨표출 제약 요인으로 작용
1981년 IOC의 88서울올림픽 개최지 확정 발표순간 한국유치단와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유치의 1등공신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왼쪽 두번째)는 자리에 앉은채 조용한 웃음으로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전경련)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1981년 9월30일 독일 바덴바덴과 2011년 7월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각각 열린 IOC총회장에서의 장면이다.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쎄울(서울)”이라고 발표하는 순간 한국대표단은 환호했다. 그로부터 딱 30년 후 자크 로케 위원장이 “평창”이 적힌 메모를 펼쳐 보인 순간 역시 한국 대표단은 환호했다. 서로 얼싸안고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런데 1981년 서울올림픽 발표의 순간 정주영 유치위원장은 웃고만 있었다. 아주 만족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환호도, 만세도 그리고 얼싸안지도 않았다. 유치위원장으로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도 기뻐하는 제스처는 가장 작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개최가 발표되는 순간 대통령을 중심으로 30년전과 똑같은 환호와 만세와 포옹이 있었다. 그러나 이건희 IOC위원은 웃음과 함께 박수가 기쁨의 전부였다. 가장 큰 기여를 하고도 그의 제스처는 가장 작았다.

◆30년 시차에 사람은 달라졌는데도 같은 장면…‘조용히’ 기뻐하는 모습

30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이들의 표현방식이 그대로 일치하는 것은 왜였을까? 왜 그들은 환호하지 않았을까?

정주영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서울 올림픽 개최를 제안하자 당시 국무총리는 반대했다고 한다. 한국과 대만의 IOC위원이 찬성해 2표를 얻는데 그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최선을 다했다. IOC위원들의 방에 매일 꽃을 배달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키워내듯 보란 듯이 올림픽을 유치했다.

이건희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전용기를 타고 지구를 몇바퀴 돌았다. 사위까지 한국빙상연맹회장에 앉혀 유치업무를 도우라했으니 가족 총동원령을 내린 셈이다. IOC위원들은 만나기 위해 점심, 저녁을 두 번씩 먹은 적도 허다했다고 한다. 기뻐도 가장 기뻤어야 할 그들이 왜 남들처럼 환호하지 않았을까?

2011년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IOC총회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발표되자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한국유치단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다. 유치의 1등공신이었던 이건희 삼성회장(왼쪽)이 조용히 박수로 축하하는 모습은 30년전의 정주영 회장 모습과 닮은꼴이다.(사진=전경련)

기업인들은 태생적으로 큰 체스처가 없다. 연호와 만세와 포옹은 신문의 정치면에 익숙한 사진이다. 경제면에 나오는 사진이라야 현장 둘러보면서 손으로 지시하거나 허리를 굽혀 제품을 살펴보는 정도가 동적인 표현의 전부이다. 만세나 포옹은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어서 생애 최고의 순간에도 자신들에게는 가장 익숙한 방식인 함박웃음과 박수로 기쁨을 표시했을 것이다.

올림픽 유치작업을 하면서 그들은 ‘수퍼 갑’의 지위를 던져 버렸을 것이다. 보통 대기업 회장은 누구도 부럽지않은 호사와 영예를 누릴 것으로 호사꾼들은 얘기한다. 경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이들을 황제에 비유한다.

◆'경제경쟁'에서 세계와 겨루는 기업인들, 응원과 격려 분위기 필요

그러나 정주영 회장이 그 일을 할 당시 당대의 실세인 신군부에 의해 전경련회장직을 그만두라는 압력까지 받았다. 산업합리화의 명목으로 자동차를 누구에게 넘기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이건희 회장도 평창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라고 사면·복권의 명분을 씌웠다. 3수에 도전하며 혹시 모를 실패의 책임은 온통 그에게 미리 뒤집어 씌운 셈이다. 그런 그들이 황제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거들먹거리며 멀찌감치 IOC위원들과 일정 잡아놓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는가?

수퍼 갑이 아니라 수퍼 병이 되어도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유치를 성공했으니 그들은 환호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만세 부르고 포옹하는 시간에 그들은 박수 정도로 지난 날을 회상했을 것이다.
 
대기업은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국내에서의 시각도 이들의 환호를 제약했음이 틀림없다. 돈은 마음대로 벌고 여론도 조작하고 재벌은 마술방망이를 가진양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대기업의 오너가 유치했다면 자연스런 일뿐이고 그걸 유치못하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한 걸로 매도하고 비난하면 그뿐이다.

당시 2018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경쟁도시 뮌헨은 피겨선수 출신의 카트리나 비트가 유치위원장을 맡았고 정부가 지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업회장이 유치위원장을 맡았고 정부가 지원했다. 차이가 있다. 스포츠 축제라고 해도 국가적 행사이니만큼 그동안 가장 혜택을 많이 입어 성장한 대기업이 유치를 지원해 그 동안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국민적 합의가 이런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국내의 인식은 기업인들의 큰 제스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어쨌든 문화행사는 문화인이, 체육행사는 체육인이 주역이 되어 세계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반시민이 그들을 위해 돈과 시간과 재능을 할애하는 것이 더 크게 보이는 국가의 저력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인은 기업의 세계에서 세계와 경쟁해 1등을 쟁취하고 그 기쁨을 환호와 포옹과 만세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차례의 올림픽 유치는 우리나라의 각 분야에서 보석같은 존재들이 힘을 합하고 지혜를 짜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룩한 국가적 쾌거이다. 만약 다음에 또 이런 자리가 있다면 한국의 문화·체육계 인사들이 주역이 되고 기업인들은 그들과 얼싸안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소와 박수만으로 그쳤던 그 때를 추억으로 회상하며 목청껏 환호하고 만세를 불렀으면 좋겠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93, 102동 434호(신천동, 더샵스타리버)
  • 대표전화 : 02-3775-4017
  • 팩스 : -
  • 베트남 총국 : 701, F7, tòa nhà Beautiful Saigon số 2 Nguyễn Khắc Viện, Phường Tân Phú, quận 7, TP.Hồ Chí Minh.
  • 베트남총국 전화 : +84 28 6270 1761
  • 법인명 : (주)인사이드비나
  • 제호 : 인사이드비나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16
  • 등록일 : 2018-03-14
  • 발행일 : 2018-03-14
  • 발행인 : 이현우
  • 편집인 : 장연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진
  • 인사이드비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인사이드비나.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sidevina@insidevina.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