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17) 덧없는 세월…春宵苦短(춘소고단), 一刻千金(일각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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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17) 덧없는 세월…春宵苦短(춘소고단), 一刻千金(일각천금)
  • 이형로
  • 승인 2020.04.2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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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기만한 봄날의 밤, 일각이 천금과 같아라…시간은 귀중한 것
- 참 좋은 계절…코로나19로 봄 느낄새 없이 지나가
범의(凡衣) 민일영의 예서 죽간체 작품. 소동파(蘇東坡)는 춘야(春夜)에서 '春宵一刻直千金(춘소일각치천금, 봄밤의 한순간은 천금과 같다)'이라며 시간의 귀중함을 강조했다. 짦은 봄날이 올해는 코로나19로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갔다.

올해는 연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금까지 이 좋은 봄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를 잘 견디며 21대 총선을 대과없이 마무리해서 천만다행이다. 어쨌든 이러구러 봄날은 왔다가고 있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원래 3월11일부터 한국 근현대서예전을 기획하였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5월 5일로 연기하였다.

미술관앞의 수양벚나무는 비록 한 그루지만 이맘때 주위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늘어진 가지에 매달려 하늘하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벚꽃도 이미 꽃비가 되어 흩날려버렸다.

중화전에서 바라보면 수양벚꽃과 미술관 입구에 길게 걸려있는 현수막이 어우러진다. 봄바람에 펄럭이는 '君不見(군불견)'이란 큰 글씨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와 어울렸다.

낙화와 붓글씨, 이태백의 권주가 '장진주(將進酒)'의 한귀절을 떠올리게 한다.

君不見            군불견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奔流到海不復回 분류도해불복회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러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현대미술관에 걸려있는 '君不見(군불견)' 현수막과 봄꽃의 조화가 이태백의 권주가 將進酒(장진주)의 한 귀절을 떠올리게 한다.

술꾼들이 술 마시는 이유가 삼만팔천가지라면 믿겠는가? 뭐 그 이유라는게 핑계라해도 상관없다. 그러니 꽃 피고 달 뜨면 한잔 생각나는 것도 그 핑계중 하나임은 물론이다. 게다가 벗이나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마시면 금상첨화, 또 하나의 핑계일게다.

조선시대 이정보(李鼎輔, 1693~1766)는 술 마실 이유로 꽃과 달, 그리고 벗을 꼽았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翫月長醉)하리오

그럴듯하고 고상하지만 이 또한 삼만팔천가지 핑계 안에 들어감은 물론이다.

당나라 왕애(王涯, 764~835) 또한 가는 봄, 가는 세월이 아쉬워 '송춘사(送春詞)'에서 술로 위안을 삼았다.

日日人空老 일일인공로
年年春更歸 연연춘경귀
相歡有尊酒 상환유준주
不用惜花飛 불용석화비

우리는 날마다 헛되이 늙어 가는데
봄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네
마음껏 서로 즐기세 술독에 술 있으니
꽃비 흩날린다 애석해하지 말게나

덕수궁에 핀 모란, 철쭉(사진 위)과 석어당 소나무 사이에 걸린 달(아래). 조선시대 이정보(李鼎輔)는 꽃과 달, 그리고 친구를 술마시는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봄날에 누구나 술 생각만 하는건 아니다. 양귀비와 당 현종은 다른 의미에서 짧은 봄날, 그것도 밤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아쉬워했다. 

당의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서사시 '장한가(長恨歌)'에서 그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대신 노래했다.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불조조

봄 밤은 너무 짧아 해높이 솟았구나
그후로 황제는 아침 조회에 나가지 않았네

밤새 사랑을 나누다보니 해가 중천에 떴는지도 몰랐다. 황제는 당연히 조회를 주재하지 못했으리라. 당 현종과 양귀비 그들에게는 봄밤이 짧아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봄이라고 누구에게나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북송의 소동파(蘇東坡, 1037~1101)는 '춘야(春夜)'라는 7언절구에서 다른 의미로 봄날을 아까워했다.

春宵一刻直千金 춘소일각치천금
花有淸香月有陰 화유청향월유음
歌管樓臺聲細細 가관루대성세세
鞦韆院落夜沈沈 추천원락야침침

봄밤의 한순간은 천금과 같고
그윽히 퍼지는 꽃향기 달은 구름 속에 숨었다
연회장 음악소리 잦아들고
그네만 매달려 있는 뒷뜰엔 이제 밤이 깊어 간다

양귀비와 당현종. 현대 중국화가 왕타오(王濤) 작품(사진 위)과 영화에서 양귀비로 분한 중국 여배우 판빙빙. 백거이(白居易)는 두사람의 사랑이야기를 노래한 장한가(長恨歌)에서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라며 절절한 사랑을 표현했다.

온세상이 아름다운 봄날 밤이다. 이 밤이 지나면 아름다운 봄날 하루가 또 스러지는 것이니 아깝지 않을 수 없다. 봄은 우리네 청춘과 같다. 젊을 때는 시간이 많이 남은듯 아까운 줄 모른다. 그러나 나이들다 보면 매 순간이 아깝다. 특히 다시 오지않을 봄날의 밤은 단 일초도 아깝다. 충분히 천금의 가치가 있다(一刻直千金).

세상에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노래 그만 부르고 조용히 쉴 때다. 낮에 하늘 높이 날아 오르려 애쓰던 그네도 지금은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않는가. 이 밤이 지나면 모든게 부질없다.

시인은 봄날 밤을 비록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했지만, 실은 교훈적이며 신랄한 패러독스까지 담고있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누구에게나 시간은 귀중하다는 것을, 누대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는 고관대작들에게는 이 세상도 다시 한번 돌아보라는 충고의 시다.

앞산에 꽃이 지누나 봄이 가누나
해마다 저 산에 꽃 피고 지는 일
저 산 일인 줄만 알았더니
그대 보내고 돌아서며
내 일인 줄도 인자는 알겠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 '일'이다. 이렇게 봄을 보내는 것은 단순히 봄이라는 계절, 세월과의 이별이 아니라 또 다른 나와의 작별이기도 하다.

올봄도 가고 있다. 흩날리는 꽃비, 떨어진 꽃잎을 피해 발 디딜 틈이 없다. 22번째 꽃바람인 '모란바람(牧丹風)'이 불어 꽃향기 은은한 요즘, 마지막 꽃샘추위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올봄 마지막 꽃샘바람이리라.

이제 며칠후 모란도 제 소임을 다하고 뚝뚝 떨어지면 여름의 들머리인 입하(入夏)다. 그래, 여름이 오기 전 떨어지는 모란꽃 핑계삼아 친구들과 '모란음(牡丹飮)'이나 한번 열어보자!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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