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19) 역할 종료와 功遂身退(공수신퇴), 身後而先(신후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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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19) 역할 종료와 功遂身退(공수신퇴), 身後而先(신후이선)
  • 이형로
  • 승인 2020.05.2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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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도 소임을 다하면 기꺼이 자리를 비워주고 내년 봄을 기다려
- 노자 도덕경 '공을 이뤘으면 기꺼이 몸을 물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
노자 도덕경 9장 '공수신퇴 천지도'  현대 중국서예가 주굉흥(周宏興) 작품.
노자 도덕경 9장 '공수신퇴 천지도' . 공을 이루었으면 기꺼이 몸을 물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뜻이다. (현대 중국서예가 주굉흥(周宏興) 작품)

코로나19가 극성인 와중에도 4월에는 목련꽃 향기가 그나마 우리들 숨통을 틔웠다. 이제는 5월의 모란마저 모두 떨어진 '자투리 봄(殘春)'이다. 여신의 화려한 외출을 장식했던 많은 꽃들은 자기 소임을 마치고 돌아갔다.

지금부터는 은방울꽃, 초롱꽃, 금낭화, 붓꽃, 매발톱꽃, 비비추, 옥잠화, 금불초들이 여신의 마지막 외출을 도와줄 것이다.

4월의 꽃은 누가 뭐래도 목련꽂이다. 꽃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 해서 목련(木蓮), 그리고 은은한 향기는 난초향과 비슷하다 해서 목란(木蘭)이라고도 한다. 심지어 꺾은 가지에서도 난초향을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는 망춘화(望春花)라고도 하며 한방에서는 신이화(辛夷花)라하여 비염이나 혈압강하에 쓰인다.

목련꽃이 필 때 자세히 관찰해보면 꽃봉오리가 한쪽으로 조금씩 휘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꽃들이 해를 따라 해바라기를 하는데 반해 목련꽃은 하나같이 북쪽을 바라보고 핀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목련화의 전설을 지어내, 임금에 대한 충절의 상징으로 신하들이 북쪽에 계신 임금에게 드리는 인사라고 한다. 또한 북쪽에 사랑하던 사람의 무덤이 있어서 꽃송이가 모두 그쪽을 향하고 있다는 전설도 만들었다. 그래서 목련꽃에게 북향화(北向花)라는 별명도 붙여 주었다.

정동길로 출근한지 벌써 9년째다. 덕수궁 출근하던 첫해인 2012년 봄에는 정동제일교회 벧엘교회당의 자목련은 질 무렵에서야 눈에 들어왔다. 이제 4월이 되면 고풍스런 붉은 벽돌의 교회당 창문을 살피는게 버릇이 되었다.

교회당 붉은 벽의 자목련, 꽃이 벙글 때는 바탕과 같은 색이라 눈에 띄지 않는다.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활짝 펴서 꽃잎의 흰 부분이 드러나서야 비로소 꽃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이 꽃을 보노라면 마태복음 6장 5,6절이 떠오른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으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6: 5~6)

외식하는 기도란 남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를 말한다. 기독교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인데, 이 기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행한 자는 자신의 상을 이미 받았으니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행한 것이므로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나 발설할 필요도 자랑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사는것 같다. 요즘 어떤 종교지도자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대중들에게 어필하려고 기도하는 것이라면, 예수님도 분명히 그것은 외식 즉 위선이요 자기 상을 이미 받았기에 더 이상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골방'이란 반드시 밀폐되고 은밀한 장소가 아닐 것이다. 그곳이 화장실이든 사무실이든 잠자리든 거실이든 교회든 방해받지 않는 장소가 바로 '골방'이 될 것이다. 그런 장소에서 진실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응답을 받을 것이다.

정동교회의 자목련은 우리들의 교만함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꽃이다. 꽃봉오리가 벙글일 때는 그곳에 자목련꽃이 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만개해서 흰꽃잎이 보여야 비로소, "아, 자목련이로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5월의 마지막 봄을 장식하는 꽃을 꼽으라면 당연히 모란이다. 모란은 옛부터 '꽃중의 왕(花中之王)'이라 했다. 중국의 사대미인으로 당 현종이 총애하던 양귀비가 모란꽃에 비유되기도 한다.

당 현종과 양귀비는 어느날 화원을 산책하다, 양귀비가 연못에 피어있는 흰 연꽃이 예쁘다고 하자, 현종은 곁에 있는 내 말을 알아 듣는 꽃이 더 예쁘다고 했다. 여기서 '사람 말을 알아 듣는 꽃'이란 뜻의 '해어화(解語花)'란 말이 유래한다.

모란꽃(사진 위)와 열매. 모란꽃은 열흘정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소임을 다하면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준다.

새벽에 툭, 툭! 떨어지는 모란은 가는 봄이 아쉬워 내는 소리가 아니다. 봄비와 이슬은 이 찬란한 봄을 떠나기 싫어 모란꽃이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그저 올봄도 내 임무를 완수했다는, 내 다음 자리는 열매가 대신한다는 안도의 표시다.

오히려 필자가 가는 봄, 떨어지는 모란꽃이 아쉬워 내년을 기약하며 시 한 수로 배웅해 본다.

送春(송춘, 또다시 봄을 보내며) 
春雨暫歇花多陳 춘우잠헐화다진
送君慶運鬱方寸 송군경운울방촌
牧丹雨露何時振 모란우로하시진
別淚春春落紅箋 별루춘춘낙홍전

봄비 문득 그치니 꽃이 많이도 피었다
경운궁에서 그대 보내니 내 가슴은 숨이 멎을 듯
모란에 맺힌 이슬방울 어느 때나 떨쳐버릴까
별리의 눈물 매년 봄이 되면 그 붉은 꽃잎에 떨어지는걸

경운궁(慶運宮)은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하기 전까지 덕수궁의 이름이다. 방촌은 촌심(寸心)이라고도 하는 심장 즉 우리의 마음이며, 홍전(紅笺)은 '붉은색의 편지지'란 의미로 떨어지는 모란꽃과 이별 편지의 메타퍼이기도 하다.

고려 인종 때의 문신 정지상(鄭知常, ?~1135)은 '송인(送人)'이란 시에서 봄과 사랑하는 이를 대동강에서 눈물로 보냈지만,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떠나 보낼 사람이 없어 봄과 모란을 님으로 대신했다. 그의 시에서 시안(詩眼)인 많을 '다(多)'자를 차용해봤으나, 그의 표현만큼 다의적이며 다양한 색깔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여러 색깔의 꽃이라는 의미다.

목련이나 모란꽃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열흘을 넘기지 않는다. 말 그대로 '화무십일홍'이다. 하지만 이들은 임무가 끝나면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놓는다.

이런 자연의 이치를 일찍이 깨달은 노자는 도덕경 7장에서 "자신은 물러남으로 진정으로 앞서는 것이다(後其身而身先)."라며, 9장에서는 "공을 이루었으면 기꺼이 몸을 물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다(功遂身退 天之道)."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요즘은 날씨 탓인지 봄꽃은 한꺼번에 피었다 한꺼번에 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꽃들이 끝봄을 장식하고 있다. 오늘도 봄비는 이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을 시샘이라도 하듯 빨리 떨어져라 어서 가라 재촉하고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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