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2) 코로나19…杜門不出(두문불출), 自靜無求(자정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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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2) 코로나19…杜門不出(두문불출), 自靜無求(자정무구)
  • 이형로
  • 승인 2020.07.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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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궁 등 공공시설 폐쇄 5주째…‘뜻하지 않은 휴가’, 문닫고 바깥출입 자제
- 답답하긴 하지만 이 기회에 조용히 마음공부하며 내려놓는 연습도 의미있어
덕수궁 폐쇄안내문과 굳게 닫히 대한문. 코로나19 수도권 확산으로 고궁 등 공공시설이 폐쇄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자가격리라는 뜻하지 않은 휴가를 맞는 사람들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이 기회에 두문불출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공부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싶다. (사진=덕수궁 관리사무소)

수그러들 듯하던 코로나19가 수도권에 확산되는 바람에 ‘강요된 휴가’인 자가격리를 5주째 보내고 있다. 당초 2주간의 공공시설 폐쇄가 5주간으로 연장된데 따른 것이다. 1~2주는 그동안 밀린 작업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5주째가 되니 동료들도 이제는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다. 필자야 그동안 친구를 몇번 만나 답답함을 풀 수 있었지만, 기저질환이 있는 동료 조선생은 5주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하자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는 어제 '계정우음(溪亭偶吟; 갯가 정자에서)'이란 시를 보내와 답답함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野老無營不出門 야로무영불출문(‘꼰대’ 딱히 할 일 없으니 나갈 일도 없어)
鉤簾終日坐幽軒 구렴종일좌유헌(발걷고 종일 조용한 정자에 앉아 있다)
胸中自爾心機靜 흉중자이심기정(마음속 저절로 고요하게 가라앉아)
竹雨松風亦厭喧 죽우송풍역염훤(대밭 빗소리 솔바람 소리마저 시끄러워 싫구나)

이 시의 작가 허장(許嶈, 생몰미상)은 병자호란때 인조를 구하려다 쌍령전투에서 전사한 영남좌도절도사 허완(許完, 1569~1637)의 아들이다. 진사로서 문명(文名)이 있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몇주째 두문불출하다 보니 이제는 도인이 다 된 조선생이다. 처음엔 답답하여 들끓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고요하다못해 주위의 모든 소리가 잡음이 되었다. 뜻하지 않은 휴가지만 이참에 하는 마음공부도 좋은 일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은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라는 단순한 뜻으로, 국어(國語), 진서(晉書), 사기(史記) 등에서 두루 쓰던 말이다. 집에서 은거하며 관직에 나가지 않거나 사회의 일을 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이 조선에 와서는 나름 스토리가 더해져 그럴듯한 고사성어로 탈바꿈한다. 이성계가 이른바 역성혁명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자 고려의 유신 72명이 새 왕조를 섬기기를 거부하고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두문동(杜門洞)에 깊숙이 들어가 죽도록 나오지를 않았다해서 생긴 고사다.

두문동에 은거했다는 72명의 명단은 기록에 따라 다르며 인원에 대한 이설도 많다. 조선시대 내내 72명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두문동이란 동네 이름도 고려 유신 한두 사람이 들어간 이후 붙여진 이름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충신이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관계도 없는 가문에서 견강부회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나라 사람들의 창의력은 옛부터 알아줘야 한다. 1990년대의 신조어 '내로남불'이란 말이 20~30년이 지났건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같은 행동이라도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냉혹하게 평가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가운데 한자는 ‘아니 不'자 한 글자밖에 없다. 사자성어인듯 아닌듯 하지만 어쨌든 네 글자로 이루어졌으니 사자성어임에는 틀림없다. 사자성어가 반드시 한자로만 이루어진 말이어야 한다면 그냥 '네글자성어'라 해두자.

이 말을 굳이 비슷한 의미의 한자성어로 바꾸자면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되고, 상대적인 말로는 공자가 말한 관인엄기(寬人嚴己)가 되겠다. 아시타비란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라는 뜻이며, 관인엄기는 그와 반대로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의미다.

이 말도 '라떼는(나 때는)' 기성세대는 영어도 섞인 줄임말로 그럭저럭 재미있어 쓰고는 있지만, 신세대에겐 쉰내 나는 '아재성어'가 될 터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그럴듯한 스토리가 덧붙어 재미난 고사성어가 될 것이다.

서예가 백초 신기순의 '계정우음(溪亭偶吟) 작품'. 발 걷고 종일 조용한 정자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고요해진다(鉤簾終日坐幽軒, 胸中自爾心機靜/구렴종일좌유헌, 흉중자이심기정)는 싯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두문불출에 대한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렸다. 장한가(長恨歌)로 유명한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자는 樂天, 772~846)도 말년에 두문불출하여 지은 '불출문(不出門)'이란 시가 있다.

不出門來又數旬(불출문래우수순, 문 밖에 안 나간지 또 여러 날)
將何銷日與誰親(장하소일여수친, 무엇으로 소일하며 누구와 벗할까)
鶴籠開處見君子(학롱개처견군자, 새장 열고 보니 학이 군자인 듯)
書卷展時逢古人(서권전시봉고인, 책 펴고 글 읽으니 옛 사람을 만나네)
自靜其心延壽命(자정기심연수명, 제 마음 차분히 하면 수명이 늘고)
無求於物長精神(무구어물장정신, 물욕을 버리면 정신 또한 깊어지니)
能行便是眞修道(능행변시진수도, 이것이 바로 참된 수양인 것을)
何必降魔調伏身(하필항마조복신, 번뇌를 없앤다 어찌 이리 야단인가

시에서 銷日(소일)은 消日(소일)과 같은 의미로, 어떠한 것에 재미를 붙여 심심하지 않게 세월을 보낸다는 뜻이다. 便是(변시)는 '다른 것이 아니라 곧'이란 뜻이며, 調伏(조복)은 부처에 기도하여 불력으로 악마에게 항복받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수행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마장(魔障)을 없앤다고 한다.

도연명이 국화를 좋아했듯이 백거이는 학을 군자로 여기며 좋아했다. 그는 스스로 허심탄회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고 물욕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정신세계를 높이면 자연히 수명까지 연장된다고 한다. 이 시의 시안(詩眼)인 자정무구(自靜無求)는 마음 공부를 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방하(放下)의 경지를 말한다. 수양한다며 야단법석 시끄러울 필요는 없다.

우리 속담에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이 있다. 비록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자의아닌 타의의 사회적 거리두기 핑계로 쉬고있지만, 이 기회에 수양이나 쌓자. 썩 내키지 않는 외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막연한 불안감을 갖느니 아예 두문불출하는게 낫겠다.

우리나라에서 해체시(解體詩)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황지우 시인은 '손을 씻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내키지 않는 외출을 하여 쓸데없이 하루를 저지르고 비누로 아무리 씻어봐야 께름칙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럴바엔 차라리 허장이나 백거이처럼 자가격리하여 수양이나 쌓자. 비록 우리집 앞마당에 학은 없어도 선현을 만날 수 있는 책은 얼마든지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날씨가 점차 더워지니 거사 유마힐이 아닐진대 빗소리 바람소리 주위의 모든 소리가 시끄럽다.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사람들이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아시타비의 목청을 높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니 오히려 덕수궁 매미소리가 그립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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