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3) 和氣靄靄(화기애애)와 ‘和氣曖昧(화기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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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3) 和氣靄靄(화기애애)와 ‘和氣曖昧(화기애매)’
  • 이형로
  • 승인 2020.07.2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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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화하고 즐거우며 웃음이 넘치는 화기애애에서 따온 화기애매
- 화목한지 아닌지 모호한 분위기…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신조어로 굳어져
화기애애는 모임의 분위기가 온화하고 즐거우며 웃음이 넘치는 경우를 뜻하는데 여기서 따온 화기애매는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누구나 '화목한지 아닌지 모호하다'는 뜻을 알고 통용돼 신조어 굳어진 말이다. (사진=인터넷 캡처)

그집에 처음 간건 지난봄이었다. 퇴근해야지 하며 덕수궁내를 한바퀴 돌며 마무리하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술이 몇 잔 들어간 축축한 목소리다. 다짜고짜 빨리 오란다. 전화기에서는 주위의 왁자지껄한 소리뿐만 아니라 간간히 여인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서둘러 택시 타고 5분, 종로 서촌 맛집거리 입구에 도착하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동네 골목이 복잡해서 길치인 필자를 배려해서다. 혼자 찾는다면 밤새도록 헤매야 할 것임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길 구불구불 돌아 따라간 곳은 오래되고 작은 목조건물이었다. 글씨도 보일 둥 말 둥 '다래'라는 작은 간판이 달린 선술집이었다. 들어서니 탁자마다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의 손님들이다. 온통 낙서투성이 벽 한가운데 전서(篆書)로 '多來(다래)'라는 액자가 눈에 띄었다.

친구가 권하는 석 잔의 술을 마셨다. 사무실이 광화문에 있는 친구가 술 생각날 때면 가끔 들르는 집이다. 혼자 마시다 친구 생각나면 부르고 아니면 주모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한단다.

서글서글한 얼굴의 주모가 합석했다. 약 20여년전 가게를 시작할 때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가서 받은 상호가 '다래'다. 점심 때는 국수 말아 팔고 저녁에는 술과 맛난 안주를 내놓는 다래는 '많은 손님들이 와주십시요'라는 의미다. 그때 받은 부적 같은 것이 주방으로 들어 가는 문 위에 붙어있다.

액자의 다래라는 글씨는 누가 써줬냐고 묻자 주모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전에 자주 오던 한의원 원장이 써준 것인데 그당시 연세가 여든을 넘었다는 원장이 발길을 끊은 지 몇년 돼간단다. 연세가 있으시니...주모는 뒷말을 흐렸다.

잔글씨까지 자세히 살펴보니 '다래'라는 전서는 물론 발문의 잔글씨까지 떨림이 전혀없는 방정한 글씨다.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곁들여 웃음이 절로 나는 내용이었다. 액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多來 다래
美酒佳肴木櫨(미주가효목로, 좋은 술 맛있는 안주가 있는 선술집)
親愛主母高俊(친애주모고준, 사랑스런 주모는 수단이 좋기도 하지)
顧客和氣曖昧(고객화기애매, 손님들은 '화기애매'한 분위기에도)
滿堂示而樂耳(만당시이락이, 온 술집 가득 즐거움 뿐일세
         -松芝(송지)-       

多來는 이 집의 상호이자 주모의 애칭이기도 하다. 多자는 저녁 夕(석)자 두 개를 겹쳐 '많다'라는 의미의 회의문자(會意文字)다. 그런데 액자의 글씨를 보면 사람이 왼쪽 來자 쪽으로 무엇인가 갈망하며 쏠려 가는 모양으로 썼다. 來자는 어떤가. 두 개의 ㅅ을 다른 획보다 가늘게 처리하여 살짝 눈웃음 치는 모습의 글씨다. 주모가 손님을 기다리며 웃는 모습의 형상이 아닌가.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서울 종로 서촌에 있는 목로주점 '다래'에 걸려있는 액자. 상호인 다래 옆에 쓰인 글귀 가운데 '화기애매(和氣曖昧)'라는 글이 눈길을 끈다.

보통 선술집이란 의미의 목로주점이라 할 때는 木壚라는 한자를 쓴다. 이때 로(壚)는 술독이나 술잔을 올려놓는 흙으로 만든 대(臺)를 말한다. 목로는 기다란 널판지로 만든 일종의 상을 말한다. 목로주점이란 그런 목로를 만들어 놓고 단출하게 술을 파는 집 그러니까 선술집이다.

그런데 송지(松芝) 선생은 木櫨로 썼다. 착각을 했는지 아니면 요즘 탁자는 나무로 만들었으니 나무 목변의 櫨자로 썼는지는 모르겠다. 술 파는 여자를 보통 酒母라 하지만 선생은 '主母'라 했다. 술 파는 여주인이 아니라 '주인 아주머니'라고 상대방을 높여 존중하는 말을 썼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구절이 바로 화기애매(和氣曖昧)다. 화기애애(和氣靄靄)가 아니라 화기애매라니! 화기애애란 어떤 모임의 분위기가 온화하고 즐거우며 웃음이 넘치는 경우를 가리킨다. 서먹서먹하거나 험악한 분위기와는 반대되는 경우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모인 사람들의 기분마저 밝게 바꿔주며 요즘은 이런 상황을 이끌어내는 분위기 메이커가 특히 인기가 높다.

반면에 화기애매란 화목한 분위기인지 아닌지 모호한 분위기일 때 쓰는 ‘신조어’다. 화기애매란 말은 위에서 말한 화기애애에서 유래한 말임에 틀림없다. 유머감각이라면 어느 민족에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 한국인 누군가 쓰기 시작해서 또 하나의 성어로 굳어진 말이다.

'애매(曖昧,aimai)'란 말은 본래 일본식 한자말이다. 예전에 우리는 '어정쩡하다', '흐리터분하다'라거나 모호(模糊)라는 한자말을 썼다. 순우리말인 '애매하다'는 '아무 잘못이 없이 책망을 받아서 억울하다'는 뜻으로 썼다. 예를들면 '애매하게 누명을 쓰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애매라는 말이 일본식 한자말이니 쓰지말자 라든가, 더우기 애매모호라는 말은 같은 뜻이 겹치는 말로 바른말이 아니라는 주장은 이 글의 주제와는 벗어나니 잠시 접어두자.

짐작건대 송지 선생이란 분은 술을 즐겼으되 만취할 정도로는 마시지 않던 분이다. 술집의 분위기는 물론 주모의 살가운 입담까지 즐겼으리라.

빗쟁이와 마주 앉은 자리가 아니라면 우리의 술자리는 대부분 화기애애하게 시작한다. 술이 몇 순배 돌면 별것도 아닌것으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화해하고 분위기는 화기애애,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보면 다시 애매한 분위기로 돌아가 있곤 하는게 우리네 보통 술자리다.

조금 심하면 언쟁을 벌이다 술상을 엎어버리고 뛰쳐나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다툼을 하다가도 서로 잘못이라며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신다. 어느 때는 서로 사과한다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맨정신으로 옆에서 이들을 바라본다면 가관일 것이다.

한 사람은 술이 취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주절거리지만 상대방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까지 쳐주고 있으니 말이다.

송지 선생은 다래 선술집 저쪽 구석자리에서 이런 모습들을 모두 보았을 것이다. 이들의 짓거리를 바라보며 입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천천히 술 한잔. 그래, 이런게 우리네 삶이지. 지지고 볶다가도 서로 얼싸안고 한잔 술 기울이다 보면 우리가 있는 이 공간은 어느새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까닭이라네.

온화한 기색이나 화목한 분위기를 화기(和氣)라 하고, 여럿이 모인 자리가 화기로 가득하면 화기애애하다고 한다. 어울려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우면 화목(和睦)하다 하고,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되는 것을 융화(融和)라 한다. 그래서 화기애애라는 말은 화기융융(和氣融融)이란 말이기도 하다. 화기가 애애하던 애매하던 어쨌든 화기가 있다는게 중요하다. 서로 간의 다툼으로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보다 애매하나마 화기라도 있는게 낫다.

여든 살이 넘으면 우리는 망구(望九)라 한다. 그 나이에 글씨 쓸 때 손떨림이 없다는 얘기는 평소에 섭생을 잘했다는 말이다. 그의 별명은 '소나무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풀'이란 뜻의 송지(松芝)다. 옛부터 소나무와 지초(芝草)는 군자에 비유된다. 그분이 별명처럼 살았다면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존경받는 분이었을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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