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5) 噤若寒蟬(금약한선)과 誇誇其談(과과기담), ‘도긴개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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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5) 噤若寒蟬(금약한선)과 誇誇其談(과과기담), ‘도긴개긴’
  • 이형로
  • 승인 2020.08.2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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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말해야될 때 입다문 자, 작은 공(功) 부풀려 자랑하는 자…꼴불견은 마찬가지
'금약한선(噤若寒蟬)'. 다가올 추위가 무서워 울지 않는 매미처럼 시류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껴 잘못된 것에 직언을 하지 못하거나 올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오늘은 처서(處暑)다. 처서는 입추와 백로 사이의 절기로 한여름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는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절기로 이때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한다. 올해 기록적인 장맛비 속에서도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잦아드는 때이기도 하다.

매미를 소재로 한 초충도(草蟲圖)를 제법 감상해봤지만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송림한선(松林寒蟬)'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겸재는 조선후기 화가로 본래 양반가문이었지만 몇대를 출사하지 못한 한미한 가문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영의정 김창집의 도움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양천현령을 거쳐 80세(1756년)에 화가로서는 파격적인 종2품 중추부사에까지 올라 83세의 세수를 누렸다.

◆겸재의 ‘송림한선’그림, 매미가 소나무에 앉아?…화훼초충화 형태의 풍자화

겸재는 초기에 중국 남종화로 시작하였으나 30세를 전후로 진경산수로 돌아서 조선 산수화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그는 실제풍경 스케치를 위해 전국 명승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육운(陸雲, 262~303)은 한선부(寒蟬賦)에서 매미의 다섯가지 덕목을 찬양하였으며,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명선부(鳴蟬賦)를 지어 매미의 덕을 노래했다. 이들 이외에도 수많은 문인들이 매미를 노래했다. 이러한 매미에 취하여 화가들 또한 앞다투어 붓을 들어 매미를 그렸다. 정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겸재의 '송림한선'은 구성이 매우 단순하다. 왼쪽 위에서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소나무 가지 중간에 한 마리 매미가 앉아 있을 뿐이다. 매미는 하늘을 향해 앉아 있으며 나뭇가지는 땅 쪽으로 늘어져 있다. 만일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있고 매미 또한 위를 쳐다보고 있다면 임팩트가 없어 싱거운 그림이 될 것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정선의 송림한선. 매미는 소나무에는 좀체로 앉지않는데도 겸재가 소나무에 앉은 매미를 그린 것은 옳은 소리를 못하고 군자인양 자리나 꿰차고있는 관료를 풍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매미를 소나무 가지의 연장선처럼 돌출되게 그렸다. 더구나 매미와 소나무 가지가 만나는 부분에서는 붓질이 끊겼다.

소나무 가지와 가지를 잇고 있는 매미가 날아가버리면 위아래로 분리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해 내고 있다. 또한 소나무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긴장된 분위기를 배가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매미가 소나무에 앉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매미는 주로 벚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버드나무 등에 앉아 수액을 빨아 먹거나 짝을 찾느라 울어댄다.

끈적끈적한 송진이 흐르는 소나무와 향이 짙은 향나무,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은행나무 등에는 좀체로 앉지 않는다. 이런 나무에는 알조차 낳지 않아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탈각한 허물도 보이지 않는다.

겸재는 조선의 진경화를 선도한 화가다. 사생화를 그린 그가 그만한 눈썰미와 관찰력이 없어서 소나무 가지에 매미를 그렸을까? 

생물학적으로 한선은 우리나라에서 '애매미(학명 Meimuna opalifera)‘라 한다. 우리나라, 중국, 타이완, 일본에 걸쳐 동북아시아에 널리 분포한다. 몸길이는 암수가 대체로 30mm 정도로 말매미나 참매미보다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현 시기는 7~9월이 보통이며 남부지방에선 10월 초순에서 중순까지에도 생존하여 가끔 늦매미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문학에서는 한선을 보통 가을매미라 번역한다. 무더위가 사라지는 처서를 전후해서 늦게 허물을 벗고 쓸쓸히 우는 매미를 이른다. 어떤이는 쓰르라미 즉 쓰르람매미로 번역하기도 한다. 가을매미면 어떻고 쓰르라미라면 어떠랴. 그 분위기를 안다면 충분하다.

입을 꼭 다물고 울지 않는 매미를 한선이라 하기도 한다. 날이 추워져 곧 죽게 되는 것을 알고 두려워 더 이상 울지 않는 매미다. 이에 한선은 쓴소리나 올바른 소리를 못하며, 자기보다 선하고 현명한 인재를 천거하지 않는 인물에 비유된다.

이는 남북조 시대 송나라 범엽(范曄, 398~445)이 편찬한 후한서 권67 당고열전 두밀전(後漢書 卷67 黨錮列傳 杜密傳)의 일화에서 전해지고 있다.

다른 매미보다 작아 '애매미'라 불리는 한선(寒蟬).더위가 사라지는 처서를 전후해서 늦게 허물을 벗고 쓸쓸히 우는 매미를 말하며 쓴소리나 올바른 소리를 못하며, 자기보다 선하고 현명한 인재를 천거하지 않는 인물에 비유된다.

◆홍콩민주화운동과 한선효응…처벌 두려움으로 표현과 행동 스스로 위축

동한말, 두밀(杜密)이라는 사람은 평소 검소하며 청렴한 관리로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였다. 비록 권세가의 자제들이라 할지라도 죄가 있으면 엄중히 다스렸다. 그리고 재능있는 사람은 출세의 기회를 주고자 조정에 천거하였다. 동한의 저명한 경학자이자 교육가인 정현(鄭玄, 127~200)도 그가 추천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말년에 귀향하여 태수 왕욱의 멘토를 자처했다. 이때 두밀과 동향인 유승(劉勝)이라는 사람도 대부(大夫) 벼슬을 마지막으로 퇴임하여 귀향하였다. 왕욱이 유승을 청하여 정사에 관한 의견을 듣고자 하였으나, 두문불출 만나주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두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에 두밀은 왕욱에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유승은 퇴임후 세상사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두문불출 자신의 안위만 구하고 있소. 그는 뛰어난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정에 천거하지 않으며, 나쁜 일과 인물에 대해 들어도 추위에 떠는 매미처럼 입을 다물고 있소. 이는 고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죄인이라 할 수있소.(劉勝位爲大夫, 見禮上賓, 而知善不薦, 聞惡無言, 隱情惜己, 自同寒蟬, 此罪人也)“

이 고사에서 유래한 '금약한선(噤若寒蟬)'이란 말은 정권 말기 혹은 시류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껴 잘못된 것에 직언을 하지 못하거나 올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고위관료 또는 학자나 전문가들을 신랄하게 꾸짖는 의미의 성어다.

다가올 추위가 무서워 울지 않는 매미처럼 올바른 말도 못하고 자리나 보전하는 인물도 문제지만, 여태 자리나 꿰차고 있던 자가 정권말기라고 자기의 공(功)만을 과장되게 부풀려 떠드는 과과기담(誇誇其談)도 꼴불견이긴 마찬가지다.

홍콩 민주화운동을 전후로 '한선효응(寒蟬效應)'이란 용어가 홍콩을 비롯 동남아시아 중국어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Chilling Effect'의 번역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처벌의 두려움으로 표현이나 행동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억제적 효과를 말한다.

그 결과는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축효과'라 번역한다. 한선효응이란 말은 금약한선이란 성어에서 유래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구양수는 신진 관료파에 속하여 활약하였으나 신종(神宗))때 동향 후배인 왕안석(王安石, 1021~1986)의 신법에 반대하여 관직에서 쫓겨났다. 

겸재가 활약하던 조선은 병약한 35세의 경종의 후계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울 때였다. 이때 뒤에 영조가 되는 연잉군을 세자로 세우자는 영의정 김창집을 중심으로 한 노론과 이를 반대하는 소론들과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신임사화가 터져 김창집을 비롯한 이른바 노론4대신은 모두 사사된다. 2년 뒤(1724) 연잉군이 등극하여 영조가 되니 노론4대신은 자동적으로 죄가 풀렸다.

겸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십분 이해하고 송림한선을 그린 것이다. 소나무는 매화•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일컫는다. 겨울의 모진 풍상을 겪은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군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다.

이런 소나무 위에 군자인양 자리나 꿰차고 있는 관료를 상징하는 매미를 그렸던 것이다. 단순히 초충도의 매미를 그린 것이 아니라, 고사에서처럼 자신의 안위나 걱정하는 인물들을 꾸짖는 신랄한 풍자화이기도 하다.

어제는 천둥 번개 치며 소낙비가 몇 차례 쏟아졌다. 농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처서에 내리는 비다. 어쨌든 이제 곧 사라지고 내년에나 들을 매미 울음소리다. 그 자리를 가을 귀뚜리가 대신하리라. 아쉬움을 달래고자 필자의 졸시 한 수를 붙여 본다.

寒蟬鳴懶    한선명라(매미소리 잦아들고)
炎霖朦中朧 염림몽중롱 (무더위 장마에 혼마저 오간데 없다)
寒蟬鳴漸懶 한선명점라 (매미도 이제 게을러져 울음 잦아든다)
驟雨忽覺夢 취우홀각몽 (한바탕 소낙비에 홀연히 꿈 깨어나니)
秋蟀唱滿空 추솔창만공 (귀뚜리 소리 가을하늘에 가득하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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