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7) ‘추미애 논란’과 各得其所(각득기소), 端操淸靜(단조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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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7) ‘추미애 논란’과 各得其所(각득기소), 端操淸靜(단조청정)
  • 이형로
  • 승인 2020.09.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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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득기소, 사람• 사물 각각 걸맞는 소임과 자리 있어
- 엉뚱한 장소에 걸린 '단조청정' 액자…'언행 조심하고 몸가짐 깨끗하게'라는 뜻 인듯
서예가 송정(松亭) 박재범 의 '각소기득' 작품. (사진 위). 사람과 사물은 각각 걸맞는 소임과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아래는 단조청정.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갔건만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있다. 낮에는 파란 하늘에 뭉개구름 피어오르고, 저녁에는 가을의 전령인 귀뚜리소리 요란하다.

이 좋은 계절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기분을 살리려 이발소에 들렸다. 10여년을 다니던 이발소가 주인의 갑작스런 사고로 문을 닫아 지난달부터 다른 곳으로 간다. 안으로 들어서니 지난달에는 신경쓰지 않아서인지 보지 못했던 액자가 눈에 띈다.

'端操淸靜(단조청정)'. 약간 멋을 부렸지만 방정한 해서(楷書) 글씨다. 이발사에게 물어보니, 친지중에 서예를 하는 분이 가게 이전 기념으로 써주었단다. 글씨 쓴 이의 아호가 운초(雲樵)로 '구름잡는 나무꾼'이다. 멋들어진 별명이다.

단조청정이란 넉 자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용모 단정히 해서 깨끗하고 조용히 살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자대로라면 이발소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유래와 속뜻을 안다면 설사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여성들이라면 화를 낼 것 같다.

전한(前漢)의 유향(劉向, BC.77~BC.6)은 열녀전 비약편(列女傳 卑弱篇)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正色‘端操’ 以事夫主 ‘淸靜’自守 (정색단조 이사부주 청정자수)
無好戱笑 契齊酒食 以供祖宗 (무호희소 계제주식 이공조종)
是謂繼祭祀也 (시위계제사야)

(아녀자는 늘 정색을 하며 올바로 조신해서 지아비를 주인처럼 섬기고 몸을 깨끗이 지키며,
쓸데없이 장난치며 웃지 말고, 술과 음식을 정갈히해 조상을 모신다,
이를 일러 제사를 잇는다 한다)

이같이 단조청정이란 본래의 의미는, 남자들만이 가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아 단정히 한다는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동떨어진 뜻이다. 한나라 때 완성된 '남존여비 사상'의 끝을 보여주는 의미다.

 

명나라 헌종(憲宗) 때 운영(雲英)이란 궁녀가 있었다. 그녀는 5살에는 효경을, 7살이 되어서는 13경까지 외우고 해석할 정도의 재원이었다. 그녀는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아도 이목을 끌만큼 빼어난 용모였다.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했으니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헌종이 운영을 위해 따로 거처를 마련해주니 그녀는 '단청각(端淸閣)'이란 이름을 붙였다. 22살이 되어 중병에 걸리자, 남은 여생은 황제의 건강을 빌며 살겠노라 출가한다. 

얼마후 그녀가 죽자 헌종은 그녀를 위해 묘비명까지 써주었다. 그녀 처소의 이름인 단청각은 바로 유향의 열녀전에서 인용한 말로, 운영은 죽는 순간까지 황제를 위해 정조를 지키며 깨끗하게 살다 죽었다.

어느덧 십여년이 흘렀다.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지 150주기를 맞아 그와 인연이 깊은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1902~1981)의 작품 전시회가 인사동에 열렸다. 그때 전서로 쓴 '단조청정'이란 작품도 함께 전시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소전은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년)과 더불어 현대 한국서예를 대표하던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예전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글 표지를 썼던 인물로, 한글의 여러 글씨체까지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소전 손재형이 각고의 노력끝에 일본에서 되찾아왔다. 소전으로부터 세한도를 사들인 손세기씨 가족이 지난 8월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소전은 고미술품 수집가, 금석학자, 정치인 등 다채로운 삶을 살았지만, 서예계에서는 다른 어떤 직함에 앞서 20세기 한국 서예계의 대부로 불리고 있다.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로 불리던 것을 우리는 '서예(書藝)'로 부르자고 주창했고, 추사체 이후 최초로 자신의 글씨를 '소전체'로 인정받았던 서예가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여러 일화가 있으나, 국보 180호인 추사의 '세한도(歲寒圖)'에 얽힌 이야기가 특히 유명하다.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인 1844년, 제자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 1803~1865년)이 중국 서적과 새로운 자료들을 보내준데 대한 고마움의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더불어 추사 그림의 격조와 품격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세한도는 우여곡절 끝에 일본강점기 경성제대(현재의 서울대) 교수이자 추사 연구가인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1879~1948)의 소유가 되었다. 손재형은 1945년 1월 도쿄의 한 병실에 있는 후지츠카를 두 달 동안이나 매일 찾아가 설득한 끝에 무상으로 되찾아왔다. 그렇지 않았으면 3개월 후 미군의 도쿄대공습 때 추사의 다른 자료들과 함께 잿더미로 변할 뻔하였다. 이처럼 세한도는 소전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손재형이 정치판에 뛰어들며 선거자금 조달 목적으로 세한도를 포함해 추사의 또다른 걸작인 불이선란도와 장승업의 인물화 등 3점을 요즘 가치로는 최소 30억원에 해당하는 당시 3000만원에 미술품 수집가인 손세기에게 넘겼고 그의 아들 손창근은 2020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에 무상으로 기증하게 된다.

단조청정이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는 성어다. 일본인들이 즐겨쓰는 사자성어를 모아놓은 '사자숙어집'(四字熟語集) 429번째에 있는 성어다. 이 책에는 위에서 인용한 유향의 열녀전의 내용은 없다.

이발소에 걸려있는 글씨는 운초라는 분이 네 글자의 의미만을 취해서, 이발소에 걸면 그럴 듯하니 써주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각자에 걸맞는 적당한 자리가 있다. 그래서 한비자는 양권편(揚權篇)에서 다음과 같은 경계의 말까지 했다.

使鷄司夜 (사계사야, 닭은 밤을 지키게 하고)
令狸執鼠 (영리집서, 고양이가 쥐를 잡게 함은)
皆用其能 (개용기능, 각자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上乃無事 (상내무사, 그래야 세상이 편안해진다)

불과 얼마전만 하더라도 이발소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대부분 서양 유명화가의 복제품이거나 사진 등이었다. 우리는 그런 그림을 '이발소그림'이라며 무시하기도 했지만 위화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이발소에 그런 그림 한 점 없으면 서운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발소에 걸려있는 붓글씨라니, 그나마 복제품이 아니라 다행인가? 오히려 유명한 서예가의 '이발소글씨'라면 더욱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단조청정의 본래의미와는 다르지만 이발소의 액자 속 글을 쓴 분은 아마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깨끗하게 하자'라는 의미로 쓰지않았을까 싶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는 서합괘(噬嗑卦)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日中爲市 (일중위시, 한낮에 시장을 만들어 )
致天下之民 (치천하지민, 천하의 백성들을 오게 하고
聚天下之貨 (취천하지화, 천하의 재화를 모아서 )
交易而退 (교역이퇴, 교역하게 하여)
'各得其所'(각소기득, 결국엔 각각 제 할 일을 하게 하였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도 각득기소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의미는 사람이나 사물은 각각 걸맞는 소임과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는 공자가 35살 즈음 제(齊)나라에 들렸을 때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해묻자 바로 '君君臣臣父父子子'라 간단하게 대답한다. 비록 간단하지만, 공자의 이 대답은 유가 정치사상의 요체이며 정명론(正名論)의 대명제가 되는 말이다.

정명을 간단히 말하자면 '~다워야 함'을 의미한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각 주체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 역할에 부여된 임무와 권한을 다함을 의미한다. 즉 겉과 속이 일치하는 그야말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해야 한다는 뜻으로, 앞에서  말한 '각득기소'와도 한편으론 통하는 말이다.

요즘 추미애 법무부 법무장관의 아들 휴가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추 장관이 야당대표 시절 압력으로 규정에도 없는 아들의 병가를 받아냈다는 의혹이다.

추 장관이 아들을 위해 '엄마찬스'를 썼는지, 아니면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야당과, 검찰, 보수언론의 음모론, 지금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측과 자리에 걸맞지 않은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가?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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