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0) 山川能語(산천능어), 肺腑能語(폐부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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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0) 山川能語(산천능어), 肺腑能語(폐부능어) 
  • 이형로
  • 승인 2020.11.0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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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이, 오장육부가 말을 한다면 장의사와 의사는 어떻게 될까
- 생명과 죽음을 다루는 사람들, 존경의 의미 담아 ‘사(師)’로 호칭
- 의대생들 ‘의사선생님’ 3중존칭 의미 깨달아야…정부, 국시문제 ‘양시론’으로 풀기를
의사국가시험 거부 의대생 구제 문제가 진통을 겪고있다. 의료계와 정부는 서로의 잘못을 공격하기보다 인정하는 자세로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의사들은 '사', '선생', '님' 등 3중존칭이 겹친 의사선생님이라는 호칭의 의미를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정부는 여론에 기대 '이번에 본때를 보이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아야 한다. 사진은 지난 8월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회의모습. (사진=대한전공의협의회)

지난주 건강검진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마침 무료 독감백신 접종 시작일이라 접수창구는 환자들로 붐볐다. 접수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창구에서 "안죽자니~~임" 호명한다. 대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음을 참는다.

나중에 '안숙자'를 잘못들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죽자'보다는 병원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우리는 작은 병이든 큰 병이든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기 위해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과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달 27일 의정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간담회를 가졌으나, 의협 측에서 의정협의체 구성의 전제조건으로 의대생 국가시험(의사국시) 문제 해결을 꺼내들어 난항을 겪고 있다.

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28일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향후 이로인해 벌어질 모든 상황의 책임은 정부측에 있으며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일방적으로 3일의 시한을 통보한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의협이 통보한 시한의 마지막 날인 28일 정례브리핑에서 "의사국가시험 문제에 대해선 (국민적인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종전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의협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대전협은 의협과 공조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며 "정부는 전공의와 의사들을 더이상 거리로 내몰지 않기를 바란다"고 의협을 두둔하고 나섰다.

출퇴근할 때 예전에는 준비하고 있는 책 원고를 퇴고한다든지 필요한 자료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칼럼을 연재한 후로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면서 거기에 달린 댓글을 보는 재미도 함께 늘었다. 칼럼의 소재를 건져볼까 해서이다.

신의라 불리는 편작(扁鵲, BC401-BC310). 중국 고대속담에 '山川而能語 葬師食無所 肺腑而能語 醫師色如土(산천이능어 장사식무소 폐부이능어 의사색여토)'라는 말이 있다. 산천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풍수가는 밥벌이를 할 수가 없을 것이고, 오장육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의사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는 뜻이다.

보통 정부의 정책이나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찬반이 엇비슷하다. 그중에는 이웃나라인 중국•일본과 달리 우리 네티즌들의 댓글은 촌철살인의 위트와 유머가 넘쳐나는 재미있는 글들이 많다. 하지만 의협과 대전협의 파업 그리고 의대생 국시 문제에 대해선 백의 구십구는 비판의 목소리만 높이고 위트와 유머라고는 아무리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의사들이 공부만 잘하는 폭력배냐", "손에 칼 들었다고 협박질이냐", "국시가 의대생 니네가 보고 싶을 때 보는 쪽지 시험이냐", "이번엔 버르장머릴 고쳐줘야 한다", "성인인 너희들이 한 행동에 책임져라" 등등.

이미 의대생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국시 접수를 취소하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국시 접수 취소한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57만 1995명의 지지를 받았다. 의사들이 파업을 하던 지난 9월초에도 국민들의 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산천능어(山川能語)와 폐부능어(肺腑能語). 명나라 양신(楊愼, 1488~1599)의 고금언(古今諺)과 청나라 임백동(林伯桐, 1778~1847)의 속담집인 고언전(古諺箋)에 실려있는 고대중국의 속담에서 유래한 성어다.

山川而能語(산천이능어)
葬師食無所(장사식무소)
肺腑而能語(폐부이능어)
醫師色如土(의사색여토)

"산천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풍수가는 밥벌이를 할 수가 없을 것이고, 오장육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의사의 얼굴이 흙빛이 되리라."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를 때는 풍수가에게 묏자리를 물어야 하고, 사람이 아프면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 치료를 해야 한다. 산천과 오장육부는 말을 할 수 없어 전문가 아니면 어디가 명당인지, 왜 아픈지 알 수가 없다. 만약 산천과 오장육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사이비 풍수쟁이와 돌팔이 의사는 밥줄을 잃게 될 것이다.

속담에서는 장의사와 의사가 사람의 죽음과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는 의미로 존칭인 사(師)를 붙여 '장사(葬師)'와 '의사(醫師)'라 부르고 있다. 예전에 의사는 보통 의생(醫生)으로 호칭했으나, 존경하는 의미로 낭중(郎中)•대부(大夫)라는 관명을 붙여 불렀다. 중국에서는 지금까지 이런 관습이 남아 한•양의를 막론하고 존경하는 의사는 '따이후(大夫)'라 부른다.

극존칭인 '師'자를 붙인 이유는 돈만 밝히는 사이비 풍수쟁이와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떠돌이 돌팔이인 강호낭중(江湖郎中)을 신랄하게 풍자하기 위해서다. 존경받는 사람들중에 간혹 장난질을 치는 못된 인간들이 있어 그들을 더욱 비꼬기 위함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에 '근자감'이란 말이 있다. '근거없는 자신감'을 줄여서 말한 신조어다. 지나친 자신감을 조심하라는 경계의 의미도 내포된 말이다.

정부는 여론을 등에 업고 이번 기회에 정부시책에 반대하는 '어린것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보겠다는 의도가 있는건 아닌지, 반대로 의협과 의대생들은 여전히 칼을 쥔 쪽은 자신들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로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나름대로 '근거있는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만일 정부가 여론에 기대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속셈이라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요즘이라 하지만, 여론에 의한 정책만을 고집한다면 정부의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여론기관만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의대생들이 성인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학생으로 세상물정에 밝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 쳐도 그들이 의협이나 대전협이 내세운 총알받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똑똑한 그들은 이번 기회에 학교 공부와 인생 공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울러 사람 목숨 가지고 ‘거래’를 하면 국민들이 등을 돌린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이 있다. 접미사로 붙이는 '님'자가 그것이다.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말이다. 師자도 존칭인데 거기다 선생(先生)이란 극존칭도 모자라 '님'자까지 붙여 존경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의사선생님!', 왜 이런 칭호를 받는지는 의사 본인들이 잘 알아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할 때다. 서로의 잘못을 들춰내 공격하다 보면 충돌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양비론보다는 황희 정승처럼 상대방을 인정하는 양시론(兩是論)이 해결 방법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좋은 결말로 모든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불상사는 없어야 되겠다. 환자들은 물론이요 의대생들도 국민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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