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3) 恕己恕人(서기서인), 恕己及人(서기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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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3) 恕己恕人(서기서인), 恕己及人(서기급인)
  • 이형로
  • 승인 2020.12.1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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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용서, 그것이 바로 사랑
-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도 가장 큰 베풂이자 사랑
현대 중국서예가 로과(璐過) 작품 '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책인지심책기 서기지심서인)'.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는 뜻으로 연말을 맞아 한해를 마무리하며 새겨볼만한 말이다.

지난 토요일 근무중 서울광장 하늘에서 갑자기 폭죽이 터졌다. 아, 벌써! 매년 이맘때면 서울광장에서는 성탄절 트리 점등식이 열린다. 작년만 하더라도 성가대가 찬송가를 부르며 제법 떠들썩한 축제였다. 이번 점등식은 비교적 조용하다. 코로나19 시국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연말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런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눈시울을 적시는 작으나마 뜨거운 사랑의 불씨는 있었다.

"제가 아무리 20년 옥살이를 했어도 그분들 모두 용서해 드리고 싶습니다." 화성연쇄살인(이춘재 연쇄살인) 8차사건'의 재심 청구인 윤성여(53) 씨가 지난달 마지막 공판을 마치고 나오며 기자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잘못된 수사로 억울한 옥살이를 20여년 했음에도 모두를 '용서'한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말이다.

우리를 대립과 갈등으로로 몰고가는 권력자들만큼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혹독한 운명을 바탕에 깔고있는 깨달음에서 '용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도소 안에서도 흉악범으로 낙인찍혀 집단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는 중에도 윤씨의 무죄를 믿어주고 수용생활에서부터 출소후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교도관, 수녀시절 그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고 역시 그의 무죄를 믿어준 나호견 뷰티플라이프 교화복지회 이사장, 그리고 재심을 도와주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등은 한결같이 그를 웬만한 종교지도자보다 존경한다고 한다.

지난 11월19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검찰을 대표해 윤씨에게 사과한다"면서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됐다"며 윤성여 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이란 지난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씨 집에서 13살 여중생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윤성여씨는 이듬해 검거돼 당시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하다가 2009년 가석방됐다. 1심에서는 범행을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그는 2•3심에서 경찰 조사 당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춘재가 이 범행도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자백하면서 지난해 11월 재심이 이루어졌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 들어간지 30여년만이다. 검찰은 윤 씨에게 "검찰은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20년이라는 오랜시간 수감생활을 하게 한 점에 대해 피고인과 그 가족에게 머리숙여 사죄한다"고 밝혔다. 

생산량은 생육에 필요한 여러 인자중 공급비율이 가장 낮은 인자, 즉 제한인자에 의해 지배된다는 '최소량의 법칙'을 표현한 그래픽.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구절이다. 경제력, 부부금슬, 자녀교육, 외도, 성격, 불치병 등 가정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여러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그 나머지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를 '안나 카레니나 법칙(Anna Karenina Principle)'이라고 한다. 미국 진화생물학자인 제라드 다이아몬드(Jarad Diamond) 교수는 그의 저서 '총•균•쇠'에서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비슷하지만,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며 야생동물의 가축화에 적용되는 원칙으로 이 법칙을 처음 제시했다.

전세계의 수많은 초식성 야생동물 가운데 이미 4500년전에 사육되기 시작한 소•말•돼지•양•오리•닭 등14종 이외에는 가축화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 법칙이 적용된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법칙이 또 있다. 바로 '최소량의 법칙(Law of the Minimum)'이다. 질소(Nitrogen)를 발견하여 근대 '비료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Freiherr von Liebig, 1803~1873)가 1840년 제창한 이론이다.

이 법칙에 의하면 식물의 생산량은 그 생육에 필요한 여러 인자, 예를들면 양분•수분•온도•햇빛 등 중에서 공급 비율이 가장 낮은 인자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이때의 가장 적은 인자를 제한인자(制限因子; limiting facter)라 한다.

가령 영양소만 국한하더라도 질소, 인산, 칼륨, 망간 등 어느 한 가지 요소가 부족하면 다른 것이 아무리 많이 들어 있어도 식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최대가 아니라 최소가 성장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최소량의 법칙은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사람이 살만한 바람직한 사회가 되려면 각 구성원 간에는 관용, 협동, 화해, 신뢰, 사랑, 용서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부족한 제한인자는 무엇일까. 부족한 요소가 넘치는 요소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덕수궁 돌담길에 버려진 연탄재위에 장미꽃 한송이가 꽂혀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되뇌이며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떠올려본다.

송사(宋史) 권314 범순인전(范純仁傳)에는 자식들에게 훈계하는 내용이 전해진다.

人雖至愚 責人則明(인수지우 책인즉명)
雖有聰明 恕己則昏(수유총명 서기즉혼)
爾曹但常以 責人之心責己(이조단상이 책인지심책기),
恕己之心恕人 不患不到聖賢地位也(서기지심서인 불환부도성현지위야)

"비록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남을 꾸짖을 때는 밝고
똑똑한 사람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어두운 법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항상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그러면 성현의 위치에 이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들을 용서하라'는 '서기서인(恕己恕人)'이란 말이 유래했다. 서기지심(恕己之心)이란 말도 그 뜻은 같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티끌만한 잘못도 밝혀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마음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한다면 세상에 용서못할 것은 없다. 사람은 물론 세상 모든 것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포박자 지리(抱朴子 至理)편에서는 '서기급인(恕己及人)을 넘어 '서기급물(恕己及物)'까지 말하고 있다.

범순인(范純仁, 1027~1101)은 북송 중엽의 학자이자 정치가다. 그는 사마광과 함께 신종 때 왕안석의 변법개혁에 반대하며 강력하게 맞섰던 보수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지식한 사마광과 달리 왕안석의 변법개혁 가운데 타당하다고 여긴 정책은 받아들였는데, 이 때문에 사마광과 크게 충돌을 빚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는 사마광의 비난에 대해 '상대방과 노선이 다르다고 하여 타당한 언행이나 정책까지 모두 폐기할 필요는 없다'며 맞섰다.

사회에서 죄를 저지르면 법률에 따라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러 일종의 용서를 받는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법률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로간 마음의 문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로가 풀려면 못풀 문제도 아니다.

용서는 단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다. 용서는 그 사람에게 갖고 있던 미움과 원망을 내 마음으로 놓아주는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가장 큰 베풂이자 사랑이 바로 용서다. 그러므로 사랑이 따르지 않은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윤성여씨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제한인자인 '용서'를 선택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첫 구절을 필자에게 대입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글을 맺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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