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7) 야누스의 두얼굴과 庚申守夜(경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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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7) 야누스의 두얼굴과 庚申守夜(경신수야)
  • 이형로
  • 승인 2021.02.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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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울에도 봄이 숨어있어 …마음속엔 이미 ‘좋은 봄소식’
- 섣달그믐 밤새우기, 한사람의 두모습…과거의 나, 미래의 나
- 전쟁때 도와준 야누스 신전의 문 평상시 닫아둔 이유…평화를 갈구한 것 아닐까
주역은 동지를 양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는 복괘(復卦☷☳)로 상징했다. 음의 기운인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한겨울에도 봄이 숨어있는 것이다. 눈에 덮힌 동백꽃이 겨울속의 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지난 3일이 입춘이었다. 겨울의 들머리인 입동이 지난 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기나긴 겨울이 다 간 기분이다. 팬데믹 코로나19의 3차유행과 함께한 올겨울은 유독 암울하였다. 그나마 눈과 비까지 제법 내려 먼지 스산한 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24절기엔 각각 3가지 징후가 있는데 이를 72후(候)라 한다. 입춘에는 차례대로 동풍이 얼어붙은 땅을 녹인다는 동풍해동(東風解凍)을 시작으로,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기지개를 켠다는 칩충시진(蟄蟲始振), 물속 깊이 숨죽이고 있던 물고기가 얼음을 지고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어척부빙(魚陟負氷)이 그것이다.

春在水無痕 (춘재수무흔)
春在山無迹 (춘재산무적)
李白桃紅未吐時 (이백도홍미토시)
好個春消息 (호개춘소식)

봄이 물에 있지만 흔적이 없고
봄은 산에 있지만 자취가 없네
흰 오얏꽃 붉은 복사꽃 아직 피지 않았지만
좋은 봄소식은 이미 와있었네

남송(南宋)의 왕신(汪莘, 1155~1227)이 입춘을 맞이하여 지은 복산자(卜算子•立春日賦)라는 사(詞)의 후렴구다. 왕신은 유•불•도에 두루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주역에 능통한 학자 겸 문인이었다. 성리학의 대가 주자와도 교유가 있었다.

시인은 자취없이 오는 봄을 먼저 바람으로 느꼈다. 만물을 녹이기 시작하는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먼저 느꼈다. 비록 산속 계곡물은 얼어있지만 그 밑에선 물고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시작하는 것을 알고있었다. 마침내 마음속에는 이미 흰 오얏꽃과 붉은 복사꽃이 피고 있었다. 시인은 '좋은 봄소식(好春消息)'을 벌써 가슴에 담고 있었다.

사실은 봄이 아직 멀리있던 동지(冬至)에도 그 기운은 숨어 있었다. 그래서 주역에선 동지를 양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는 복괘(復卦☷☳)로 상징했다. 봄은 이미 음의 기운인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한겨울과도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올해는 입춘보다 좀 늦다. 차례 지내러 오지 말라는 형님의 전갈이 있었다. 대역병인 코로나19가 우리의 평상을 깨뜨리고 있다. 사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兒童此夕鬧比隣 (아동차석뇨비린)
春入皇都喜氣新 (춘입황도희기신)
獨閱塵編過夜半 (독열진편과야반)
一燈分照兩年人 (일등분조양년인)

이 밤에 이웃집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드는데
서울에 봄이 드니 기쁜 기운이 새롭다
홀로 옛책 보며 한밤 지새우니
하나의 등불이 두 해의 사람을 나누어 비춘다.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3~1351)의 '섣달그믐밤에 홀로 앉아서(除夜獨坐)'라는 시다. 이곡은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로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지만, 고려후기 성리학 수용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이웃아이들은 섣달그믐밤을 지새느라 떠들썩하고, 도성에 찾아온 봄기운을 벌써 느끼는 주인공이다. 홀로 옛 서적을 읽으며 밤을 지새는 사이 어느새 삼경을 지나 새해 아침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잠을 안자고 섣달그믐밤을 떠들썩하게 지새는 까닭이 있다. 지금이야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우리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눈을 연신 비비며 잠을 쫓다 깜빡 잠이 들면 장난끼 많은 형들은 내 눈썹에 밀가루를 묻혀놓곤 얼른 거울을 보라던 기억이 떠오른다.

도교 서적인 포박자(抱朴子) 등에서는 60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이 되면, 사람 몸에 형체없이 기생하고 있던 삼시충(三尸蟲)이 잠든 사이에 몸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 옥황상제에게 그 동안의 죄과를 낱낱이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2주갑(二周甲) 즉 120년의 수명을 부여받는데, 살아가며 악행의 정도에 따라 수명이 단축되어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고 여겼다. 삼시충은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사람의 죄상을 상제에게 보고하여 죄의 경중에 따라 3일에서 300일까지의 수명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에 경신일 밤에는 자지않고 삼시충이 상제에게 고해바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습을 '수경신(守庚申)' 또는 '수삼시(守三尸)'라고 한다.

이런 경신신앙과 유사한 형태로 우리 민간에서는 조왕신(竈王神) 즉 부뚜막신에 대한 신앙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이를 경신신앙의 다른 유풍이라고 하였다. 조왕신이 제야에 승천하여 그 집안의 죄상을 옥황상제에게 보고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위해 섣달그믐날 밤에 대낮같이 등불을 켜놓고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이다.

부엌 뿐만 아니라 방•마루•다락•창고 심지어는 뒷간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밤새도록 자지 않고 놀이를 하는 풍습을 '수세(守歲)'라 하였는데 이 또한 경신신앙의 유풍이라 할 수 있다.

주위에 등불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다. 하나의 등불이 나와 함께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고있다. 조금전 나와 지금의 나는 한순간에 2년을 걸쳐 산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두해 사람(兩年人)'이라 했다. 결국은 로마인의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방금 전의 나는 과거를, 방금 후의 나는 미래를 뜻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새해 시작 달인 1월을 정월이라 부르고 있다. 고대 제왕은 일년 첫번째 달에 문무백관들의 신년하례를 받으며 향후 일년의 정사(政事)를 결정했다. 그래서 첫째달을 '정월(政月)'이라 했으나, 진시황 때 그의 이름 영정(嬴政)을 피휘(避諱)하여 정월(正月)로 바꿔부른 후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로마국립박물관의 야누스상. 야누스는 전쟁때 도와주는 고마운 신이지만 로마인들은 평상시에 야누스 신전의 문이 닫혀있기를 소망한 것은 전쟁을 통해 역설적으로 평화를 갈구한 것 아닐까 생각된다.

서양에서 1월을 영어로 January라고 한 까닭은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유래한 말이다. 로마신화에서 야누스(lanus, Janus)는 문과 대문 또는 문간, 처음과 끝이자, 시작과 변화를 상징하는 신이다.

두 얼굴을 지녔지만 정면과 뒤통수에 얼굴이 있다. 뒤통수의 얼굴은 과거를, 정면의 얼굴은 미래를 응시한다. 두 얼굴은 역사를 통찰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와 통하는 신의 얼굴이다. 이 두 얼굴은 과거와 미래, 겉과 속, 안과 밖, 처음과 끝이자 시작과 변화를 상징한다.

야누스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계기는 온전히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앤서니 애슐리 쿠퍼(Anthony Ashely Cooper, 1671~1713) 때문이다. 감정과 욕망, 이성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던 그는 '인간, 매너, 의견, 시간의 특성에 관하여'(1711)라는 저서에서 "한쪽 얼굴로는 억지 미소를 짓고, 다른 쪽 얼굴로는 노여움과 분노를 표하는 작가들의 이 '야누스 얼굴(Janus-face)'만큼 우스꽝스러운 것은 없다"고 했는데, 이것이 야누스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시작이다.

그러나 옛 로마인들에게 야누스의 두 얼굴은 결코 부정적인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은 새해 첫날 야누스에게 정성껏 제물을 바쳤다. 새해 첫날뿐만 아니라, 매월 첫날 아니 하루의 시작인 아침에도 야누스에게 제물을 바쳤다. 야누스가 허락해야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일이 풀리려면 항상 문이 열려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야누스 신전의 문만은 굳게 닫혀있기를 소망했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우고 얼마 지나지않아 주위의 적들이 로마를 공격했다. 로마인들이 위기에 처하자 야누스가 나타나 뜨거운 샘물을 뿜어내 적들을 쫓아냈다. 이때부터 로마인들은 전쟁이 나면 야누스 신전의 문을 열었다. 야누스가 나타나 도와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바로 문을 닫았다. 비록 야누스가 도왔지만, 그들은 야누스의 문이항상 닫혀 있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전쟁, 아니 조그만 싸움조차 일어나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로마인들은 전쟁때 도와준 야누스 신전을 통해 역설적으로 평화를 갈구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고사하고 자그만 다툼도 서로를 피폐하게 만든다. 이는 국가간의 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단체나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로마인들이 평소에는 야누스의 문을 굳게 닫은 까닭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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