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9) 天地不仁(천지불인)과 미얀마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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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39) 天地不仁(천지불인)과 미얀마 사태
  • 이형로
  • 승인 2021.03.0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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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어질지 않고 그저 제 할일 할 뿐 ’이런가
- 어김없이 꽃피는 봄이 왔건만 미얀마는 혹독한 겨울
- 평화와 행복 상징, 미얀마 '따비에꽃(Thabyae) 빨리 활짝 피기를
'天地不仁(천지불인)' . 자연은 진정 어질지 않은 것인가? 복사꽃 붉고 버들가지 초록빛(桃紅柳綠)의 봄이 왔건만 '미얀마의 봄'은 엄혹하기만 하다. (사진=이형로)

인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국 국민들에게 총질을 하건, 전대미문의 코로나19 대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건 말건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봄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게 자연의 섭리(攝理)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 5장에서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즉 '자연은 어질지 않고 그저 무심하게 제 할 일만 할뿐'이라고 했다.

지난 5일은 세번째 절기인 경칩(驚蟄)이었다. 경칩은 바야흐로 본격적인 봄의 문을 들어선다는 음력 2월, 양력으론 3월의 절기다. 어제는 남산에 산책나갔던 친구가 계곡의 개구리가 알 낳는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다른 친구는 남쪽의 활짝 핀 매화를 보내왔다.

경칩은 도시화(桃始華), 창경명(倉庚鳴)으로 상징되는 절기다. 복사꽃이 피기 시작하고, 꾀꼬리가 운다는 계절이다. 경칩은 본래 전한(前漢) 6대황제 무제까지는 계칩(啓蟄)이라 했지만, 7대 경제(景帝, BC157~BC141) 때 그의 이름인 유계(劉啓)를 피휘(避諱)하여 그 후로 경칩으로 굳어졌다. 일본에선 지금도 계칩이라 한다.

세상사 제아무리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도 이런 봄을 만끽하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桃紅復含宿雨 (도홍부함숙우, 복사꽃 붉더니 간밤의 비 머금었고)
柳綠更帶朝煙 (유록갱대조연, 버들가지 초록빛에 아침 안개 둘렀네)
花落家童未掃 (화락가동미소, 꽃은 지건만 아이는 쓸 줄 모르고)
鶯啼山客猶眠 (앵제산객유면, 꾀꼬리 울어도 나그네 아직 꿈속이네)

성당(盛唐)의 시인 왕유(王維, 699~751)의 전원락(田園樂) 7수 가운데 여섯 번째 시다. 다른 시와 달리 6글자로 이루어진 육언절구다. 왕유가 말년에 종남산에 은거하다 남전(藍田) 망천에 있는 망년지교인 송지문(宋之問, 656~710)의 별장에 기거할 때 지은 시라 일명 '망천육언(輞川六言)'이라고도 한다.

복사꽃 붉게 피는가 싶더니 간밤에 내린 비까지 함초롬히 머금고 있다. 지난 밤에 내리던 비는 어느새 안개가 되어 이제 막 깨어난 초록빛 버들가지를 감싸고 있다. 복사꽃은 안개 속에 떨어지고 있건만 아이는 빗자루 들 생각이 전혀 없다. 꾀꼬리가 지저귀던 말던 봄잠을 즐기고 있는 시인을 닮아가는 아이다.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 중용을 취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음)의 경지에 오른 시인이다. 안달을 하던 말던 봄은 때가 되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인이다. 그저 때가 되면 '도홍유록(桃紅柳綠)'인 것을 시인인들 어쩌란 말인가. 어느덧 마당쇠 아이도 주인을 닮아가고 있다. 게을러서 낙화를 쓸지 않는건 아니다. 때가 되어 흩날리는 꽃잎을 또한 어쩌란 말인가. 그냥 놔두거라.

숙우(宿雨), 화락(花落), 앵제(鶯啼), 면(眠) 등의 시어를 떠올리면 얼핏 맹호연의 오언절구 '춘효(春曉)'가 떠오르나 그 의경(意境)은 자못 다르다. 왕유의 시에는 형(形)과 색(色)이 있어, 시 속에 그림이 있다는 점이 맹씨와 다른 점이다.

북송의 천재 시인 소동파는 왕유의 작품을 "(그의) 시를 읊으면 저절로 그림이 떠오르고, 그림 속에는 시가 담겨 있는 듯하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고 극찬하였다.

맹호연도 꽃•새•바람•비를 시어로 삼았지만 세밀한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독자로 하여금 마음으로 간접적으로 깨닫게 하는 시인이다. 반면에 왕유는 독자에게 구체적이고 선명한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화폭에 붉은 복사꽃, 초록빛 버들가지, 꾀꼬리 등 봄기운이 충만한 그림만 그리면 된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단원 김홍도의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 왼쪽 상단 여백의 글은 왕유의 싯귀 ‘紅桃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

조선에는 왕유의 열렬한 팬이 있었다. 단원 김홍도가 그 주인공이다. 단원하면 풍속화를 떠올리기 십상이나, 그는 산수•도석인물(道釋人物)•화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화가다. 특히 그는 그림 속에 서정적인 분위기를 형상화하는데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화가다.

단원은 왕유의 시를 모티브로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를 남겼다. 서양화는 그리스•기독교 문화의 인본주의적 영향으로 화폭에 사람을 크게 그려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러나 동양화는 도가의 영향으로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분으로 여겼기 때문에 인물의 크기를 줄이고 오히려 배경인 자연을 강조하고 있다.

이 그림은 봄이 오는 길목, 야외 나무 밑에 자리를 펴고 봄을 즐기던 주인공이 낮잠에 든 장면을 묘사했다. 오른쪽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앞에는 버드나무가, 바로 뒤에는 붉은 꽃봉리를 달고있는 복숭아 고목이다. 현재 계절은 봄이라는 것을 두 그루의 나무로 형상화했다.

나뭇가지 위에는 꾀꼬리가 고개를 돌려 주인공을 깨우고 있으나 여전히 봄 낮잠을 즐기고 있다. 버드나무는 특이하게도 뿌리에서 나온 굵은 줄기가 땅속으로 곤두박질쳤다가 다시 나와 꿋꿋하게 자라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버드나무는 줄기를 꺾어 아무곳이나 꽂아도 살며, 가지를 아무리 잘라내도 살아나는 생명력이 질긴 나무다(折樹之生). 주위 환경이 어떻든 때가 되면 초록빛 잎을 피워내는 버드나무다.

단원은 그런 버드나무 굴곡진 줄기를 그림 한가운데 그려넣었다. 과연 그다운 발상이다. 그림의 주인공이 왕유인지 단원 자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세상사 버드나무처럼 굴곡진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그저 이 좋은 봄날을 즐길 뿐이다.

단원은 그림의 왼쪽 상단 여백에 왕유의 싯귀 ‘紅桃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를 적어넣고 '변치화에게 그림을 준다(寫與 卞穉和 檀翁)'고 썼다

치화(穉和)는 해부(海夫) 변지순(卞持淳, 1780?~1831?)의 자(字)다. 그는 김홍도의 화풍을 위주로 하여 산수•화조 등 여러 장르의 회화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던 여항(閭巷) 문인화로 알려졌다. 단원이 54세때 그에게 그려 준 해산선학도(海山仙鶴圖)도 전해진다.

평화와 행복의 상징인 미얀마의 '따비에꽃(Thabyae)과 군경의 기관총 난사에 숨진 19세의 미얀마 소녀 치알 신. 치알 신이 입고있던 옷에 쓰인 ‘모든 게 잘 될거야!(Eevrything will be OK!)’라는 염원이 빨리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사진=SNS 캡처)

이처럼 봄은 시대와 나라 그리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미얀마에서 평화와 행복과 안녕을 상징하는 나무가 '따비에(Thabyae;Teak tree)'다. 미얀마인들은 따비에 나뭇잎을 특별히 '따비에꽃'이라고 부르며 크고 작은 일이나 행사에 따비에 나뭇가지를 잡고 기원을 드린다.

미얀마의 지난 3일은 '피의 수요일', 군경의 기관총 난사에 38명이 숨졌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라고 했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이 '피'는 될 수 있는 한 적게 흘려야 마땅하다.

기관총 난사로 숨진 사람 가운데 꽃다운 19세 소녀 치알 신도 있었다. 소녀는 ‘모든 게 잘 될거야!(Eevrything will be OK!)’라고 쓰인 옷을 입고 있었다. 

치알 신의 염원대로 미얀마에 복사꽃뿐만 아니라 따비에꽃이 활짝 피는 봄이 빨리 오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한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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