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45) ‘꼰대’세상과 백발자조(白髮自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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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45) ‘꼰대’세상과 백발자조(白髮自嘲) 
  • 이형로
  • 승인 2021.05.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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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언어 된 꼰대…BBC, 오늘의 단어로 ‘Kkondae’ 소개
- ‘흰머리’는 연륜•관록이지만 절대선은 아냐…아집•편견 버리고 성찰의 지혜 필요
영국 BBC에 오늘의 단어로 소개된 '꼰대'. 자신만이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하는 나이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BBC 오늘의 단어 캡처) 

‘라떼는 말이야’로 상징되는 '꼰대'라는 말이 요즘처럼 성행하던 때는 없었다. 남녀노소가 '꼰대가 어쩌구 저쩌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꼰대라는 말은 그저 늙은이나 선생을 비하하는 은어로 썼던 말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꼰대의 어원은 대략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번데기의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라는 것이다.  번데기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란 뜻에서 꼰데기라고 부르다가 꼰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됐다는 주장이다. 프랑스어로 백작을 지칭하는 말인 콩테(Comte)의 일본식 발음이 콘데인데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이 일제에게 백작 등의 작위를 받고 잘난 척하며 자신을 콘테라고 자랑스럽게 부르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어원이야 어쨌든 꼰대란 말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또는 '나이값을 못하는 사람'을 비꼬아서 쓰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이 대한민국에서 유행하자 드디어 해외에서까지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9년 9월23일 영국의 BBC의 TV채널인 BBC Two가 '오늘의 단어'로 한국어 발음 그대로 꼰대(Kkondae)를 소개했다. BBC는 "당신은 이런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꼰대를 늘 자신이 옳다고 믿고 타인은 항상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본 세계의 네티즌은 국적 불문하고 자신의 주위에도 꼰대들이 많다는 반응이었다.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가 꼰대인줄 모른다는 점이며 자칭 다방면의 전문가여서 상대방의말이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자신은 솔선수범하지 않고 남들에게 시키는걸 좋아한다. 상대를 존중하기보다 자신을 떠받들어 줘야 좋아하며 잘난척 하는 것을 즐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괜히 나이만 들어 꼰대 소리 듣기 싫다며, 가수 서유석은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하는 수 없이 밀려서 꼰대가 됐다는 노래다. ‘30년을 직장에서 일하다 내몰렸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등산이나 당구장으로 다니다, 이제는 안되겠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이 모두 옳았다, 뭐 좀 배워서 새롭게 출발해 보자’는 내용이다.

늙었으니 이제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출발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극히 건설적이며 긍정적인 인생을 노래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매우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아주 소극적인 삶의 태도다. 내 늙음에 대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늙는 것에 대해 왜 변명이나 핑계를 대야하는가. 왜 그럴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소재로한 삼성생명 광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연륜과 관록이 있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절대선은 아닌만큼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자기성찰을 하며 지혜가 필요하며 그것이 꼰대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사진=삼성생명 광고 캡처)

예전에도 꼰대라는 말 때문에 늙은이들이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조선후기 성리학자인 침우당 장지완(枕雨堂 張之琬, 1806~1858)이 그런 마음을 읊은 시로 '백발자조(白髮自嘲)'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런 마음을 노래했다.

남들이야 하얀 머리 싫다해도 나는 좋다네
(人憎髮白我還憐 인증발백아환련)
한참 살펴보면 잠시 머무는 신선 같지 않소
(久視猶成小住仙 구시유선소주선)
둘러보면 그 몇이나 이 정도 살았겠소
(回首幾人能到此 회수기인능도차)
검은 머리도 앞다투어 북망산에 가는걸
(黑頭爭去北邙阡 흑두쟁거북망천)

'백발자조'를 직역하면 '백발을 스스로 비웃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결국은 비웃음도 아니요, 스스로의 위안(自慰)도 아니다. 그는 대단한 자신감에서 이 시를 읊었다.

늙은 침우당이 젊은이(검은 머리)들에게 하는 협박이 결코 아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그야말로 달관한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서유석이나 박범신의 말보다 훨씬 가슴에 와닿는 교훈이다. 아니, '교훈'이라 하면 역시 꼰대답다고 할테니 그저 이런 글도 있다고 해두자.

베이비붐 세대인 필자는 진작부터 386세대와 X세대로부터 꼰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X세대는 Y세대에게, Y세대는 X세대의 자녀들인 Z세대에게, Z세대는 MZ세대에게 꼰대 소리를 듣고 있으며, 이제 이들은 알파세대에게 모두 꼰대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꼰대들의 관용어인 '나 때는 말이야'가 '라떼는 말이야'로 그리고 다시 'Latte is horse'로 바뀌었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꼰대는 시대, 국적, 세대를 불문하고 존재했으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꼰대란 단어도 세분화되어 굉꼰(굉장한 꼰대), 젊꼰(젊은 꼰대), 역꼰(逆꼰대) 등 다양한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필자와 같은 늙은이만 지칭하는 말이 아니어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백발은 연륜(年輪)이자 관록(貫祿)이다. 그러나 그게 절대선(絶對善)은 아니다. ‘라떼는 말이야’, ‘내가 해봐서 알아’라며 나만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며 선입견이나 아집, 편견, 고정관념,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지기성찰과 타인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정한 자아를 가꾸기에 힘을 쏟는다.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인격이기도 하고 원만한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지혜이기도 하며, 꼰대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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