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편 어려운 어린 형제에 공짜 치킨 제공 홍대입구 점포에 쏟아졌던 '돈쭐' 주문
내가 가진 것을 지키고 끊임없이 채우려하는게 인간의 속성이다. 남들에게 나누고 베푸는 행위를 손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눔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이웃이 생긴다. 공자는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을 강조했다. 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는 이들이 많이 생겨 외롭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서 '덕필유린(德必有隣)'이란 성어가 만들어졌다.
덕은 한 개인의 삶에 나타나는 가장 바람직한 인격이며, 상대를 포용하는 너그러운 품성, 은혜를 베푸는 올곧은 심성이다.
그러면서 공자는 논어 자한(子罕)편에서 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吾未見好德 如好色者也(오미견호덕 여호색자야)‘. 덕 좋아하기를 미색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MZ세대를 보면 꼭 그런것만도 아니다.
올해초 치킨 프랜차이즈 철인7호 김현석 대표 앞으로 익명의 고등학생 손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에 따르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몸이 편찮게 되자, 학생은 아르바이트 중 가장 힘들다는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버텨왔다.
지난해초 치킨을 먹고 싶다고 조르는 철없는 동생을 위해 주머니를 탈탈 턴 단돈 5000원을 들고 거리로 나섰지만, 치킨 5,000원어치를 파는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홍대입구 부근의 한 치킨집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형제를 본 젊은 점주는 그들을 가게 안으로 들여 약 2만원어치의 치킨을 대접한 뒤 돈도 받지 않았다. 이후 동생은 형 몰래 치킨집을 몇번 더 찾았고, 점주는 그때마다 치킨을 그냥 내주었다. 또 한번은 덥수룩한 동생의 머리를 미용실에 데려가 깎아 보내기도 했다. 이 사정을 눈치챈 미용실 여주인도 선행에 동참했다.
그 이후 고등학생 형은 미안한 마음에 치킨집을 찾지 않았지만, 올초 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가장 힘들다는 뉴스를 보고 홍대 치킨집 사장님이 잘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돼 편지를 썼다. '처음 보는 자기 형제들에게 따뜻한 치킨과 관심을 준 점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앞으로 성인이 되어 돈 많이 벌면 자기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점주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사연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자 우리 젊은이들이 '돈쭐'을 내줘야 한다고 들고나섰다. 주문은 쇄도했고, 배달이 안되는 강원도, 부산 그리고 바다건너 제주도에서도 먹은 것으로 칠테니 비슷한 사연을 가진 이가 오면 치킨을 내주라는 선결제 주문까지 이어졌다. 프랜차이즈 본사도 월세와 물품 대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1000만원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돈쭐'은 '돈+혼쭐'의 합성어다. 혼쭐내다는 몹시 꾸짖거나 벌을 주어 질책하는 반면, 이에 대한 반어법과 그 변형으로 어떤 사람이 선행을 했을 때 '돈으로 혼내야 한다'라는 뜻으로 생긴 신조어다. '돈쭐' 문화는 기성세대가 아닌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정치적•사회적 신념 같은 자기만의 의미를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소비행태, 이를테면 착한 기업을 가려내서 이들을 돈쭐내는 소비 행태를 '미닝아웃(Meaning out)'라 한다.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숨겨왔던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힌다는 의미인 커밍아웃(Coming out)의 합성어다. 이런 사람들을 아예 미닝아웃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닝아웃족으로 대표되는 MZ세대는 이런 가치소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과거에는 나쁜 제품 구매를 거부하는 보이콧 운동이 이러한 소비자운동의 대표적 행태였다면, MZ세대는 직접 물건을 사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이콧’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단계 진화한 방법을 쓴다. 그저 돈으로 혼내는게 다가 아니라, 요즘 젊은 MZ세대는 이런 속깊은 덕(德)까지 겸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후 홍대 치킨집은 선물과 응원 메시지는 물론, 넘쳐나는 주문으로 본사 직원 4명을 지원하고 튀김기도 늘렸다. 얼떨떨한 점주는 돈쭐의 무서움을 직접 체험했다며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올해 3윌 점주는 돈쭐 주문으로 번 300만원과 후원금 200만원 그리고 자기 돈 100만원을 보태 총 600만원을 마포구청 꿈나무 지원사업에 기부했다.
주역 문언전 곤괘(周易 文言傳 坤卦) 설명에는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글귀가 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덕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넘쳐 후손들에게까지 그 복이 미친다는 말이다. 즉 '적선여경(積善餘慶)'이다.
다산 정약용이 덕이란 '나의 곧은 마음을 실천하는 것(行吾直之心)'이라 했듯이, 진정한 덕은 내가 본래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성품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누고 돕는 행위는 덕을 갖춘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공자는 진정한 덕을 갖춘 사람에게는 '반드시'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머뭇거리지 말고 덕을 갖추라는 간절한 당부인 것이다.
코로나19가 백신 접종으로 잠시 사그라지는듯 하더니 델타 변이 바이러스라는 복병을 만났다.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도 이제는 옛말, '코로나 블랙'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이런 때 MZ세대의 '돈쭐'이란 참신한 덕행이 착한 변이 바이러스가 되어 코로나19까지 삼켜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MZ세대 젊은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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