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9) 새해인사와 산숭해심 유천희애(山崇海深 遊天戱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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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9) 새해인사와 산숭해심 유천희애(山崇海深 遊天戱海)
  • 이형로
  • 승인 2022.01.0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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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여러분, 건강하고 여유롭고 고귀한 삶 누리시길
- 오유천하(傲遊天下)…하고싶은 말과 일 하면서, 남에게 피해 주지않는 생활을
임인년(壬寅年)을 상징하는 호랑이 세화(歲畵) 바탕에 '山崇海深 遊天戱海(산숭해심 유천희해)와 새해에도 행복하소서'라는 글이 쓰인 연하장.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틀에 박힌 말보다는 한결 고상하면서도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사진=스톤아티스트 천영덕)

연말연시에 친지 등에게 간단하게 축하인사를 담은 서찰을 보내는 풍습은 예전부터 있었다. 새해에 스승•부모•친척•친지 등을 직접 찾아가 인사드리지 못할 경우 아랫사람을 시켜 문안 서찰을 보내곤 했지만 지금과 같은 연하장은 우편법이 제정되고 엽서가 발행되면서 비롯됐다.

연하장은 15세기 독일에서 아기예수 그림과 신년축하 문구를 동판으로 찍은 것을 카드로 만들어 아는 사람들끼리 나눈 게 시초라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19세기말 우편엽서 등장으로 지금과 같은 연하장으로 발전하게 됐다.

모양은 달라도 중국에서도 10세기경부터 연하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의 연하장은 받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겉모양은 물론 길이마저 달랐다. 심한 것은 무려 6m의 길이에 6명의 하인이 운반해야 할 만큼 엄청난 무게의 연하장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새해가 다가오면 도화서에서 수성노인, 선녀, 신장, 호랑이, 닭 그림 등을 그려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이 왕족이나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세화(歲畵)다. 이 세화를 설날에 액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문이나 문설주에 걸거나 붙였다. 새해를 송축(頌祝)하고 재앙을 막기위해 그려진 그림이라서 연하장과 부적의 용도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런 풍속이 민간에까지 퍼져 조선시대말까지는 세화를 돌리는 풍습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메이지(明治)시기인 1871년 우편제도 성립 때부터 연하장이 생겨났다. 그러다 지금처럼 연말에 연하장을 보내는 습관으로 정착된 것은 그로부터 16년 뒤인 1887년부터다. 전자 우편•연하장으로 대신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아직도 한 사람이 적으면 몇 십장서부터 많게는 수백 장씩 보내고 있다. 요즘도 인구 1억2000만명에 연하장을 무려 10억장씩 찍어낼 정도다.

일본인은 연하장의 축하문구로 근하신년(謹賀新年) 이외에도 근하신춘(謹賀新春), 공하신년(恭賀新春)이란 말을 쓴다.줄여서 하정(賀正)•하춘(賀春)•영춘(迎春)이란 말도 사용하지만, 2자 문구는 윗사람에게는 결례라는 생각에 아랫사람에게만 쓰고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부터 근하신년을 써오다가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더해 한 쌍의 구절로 쓰고 있다(송구영신은 칼럼34 참조). 예전에 우리도 '근하'나 '신년'이란 말을 썼지만, '근하신년'이란 4글자 성어는 분명히 일본인들이 만들어 쓰고 있는 말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추사 김정희의 ‘山崇海深 遊天戱海(산숭해심 유천희해)’. 산과 바다처럼 깊고 높은 명예와 수명, 그리고 하늘에서 노니는 고니처럼 바다 위를 나는 기러기처럼 여유로운 삶을 누리소서'라는 기원을 담은 말로 새해 연하장의 인사말로도 잘 어울리는 귀절이다. 

전에 추사 김정희에 대한 글을 쓰면서 '山崇海深 遊天戱海(산숭해심 유천희해)'란 글씨를 만났다. 비록 위작이라는 논란이 있지만, 전서•예서•행서가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다. 삼성미술관 소장인 이 작품은 폭 42cm 길이 207cm로 추사 작품 중에서도 대작으로 손꼽힌다.

유홍준은 '산숭해숭'이란 구절은 추사가 스승으로 받들었던 청나라 경학자이며 서예가인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이 실사구시의 실학정신을 풀이한 글 속의 한 구절이라 한다. 하지만 김병기는 이 구절을 그런 의미로 단정할 수 없다며, 송나라의 범성대와 팽구년의 싯구인 '山高水長'이라는 말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옹방강과 추사가 롤모델로 삼았던 서성 왕희지(王羲之, 303~361)가 난정집서(蘭亭集序)에서 '이곳은 높은 산 높은 언덕에 무성한 숲과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此地有崇山峻岭 茂林修竹 차지유승산준령 무림수죽)는 표현에서 전거를 찾고싶다. 그리고 이 말은 노자 도덕경 제7장의 '천장지구'(天長地久, 하늘과 땅은 영원무궁하다)라는 구절에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산숭해심'이란 '산과 바다처럼 깊고 높은 명예' 혹은 '산처럼 바다처럼 오랜 수명'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천희해'는 남북조시대 양나라 사람 소연(蕭衍)이 위나라의 명필인 종요(鍾繇)의 글씨를 평하여 "바다 위를 나는 기러기 떼의 비상처럼(群鴻戱海 군홍희해), 구름 속에 노니는 고니처럼 한가하고 여유가 있다(雲鵠遊天 운곡유천)"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추사가 쓴 '산숭해심 유천희해'라는 말은 '산과 바다처럼 깊고 높은 명예와 수명, 그리고 하늘에서 노니는 고니처럼 바다 위를 나는 기러기처럼 여유로운 삶을 누리소서'라는 장수와 여유로운 삶을 기원하는 의미의 말이다.

연하장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추사의 글씨까지 꺼낸 까닭은, '근하신년'이란 틀에 박힌 말 대신에 다른 좋은 말도 있지 않을까해서다. 이 말이 일본의 잔재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사람들도 많다.

'산숭해심 유천희해'란 말이 웃어른께 드리는 말씀으로 적합하다면, 젊은이들에게 알맞은 메시지로 생각나는 말이 있다. 다소 무협소설적인 기분이 들지만 '오유천하(傲遊天下)'가 그것이다. '오유'는 직역하면 '오만하게 노닐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으면서 자존심은 지키며 세상을 살아가자'라는 의미에서 이 말을 만들어 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하면서도, 남을 다치지 않게 살아보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칼럼의 제목이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이라 한자성어로 신년인사를 만들어봤지만, 순우리말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정성어린 마음만큼 귀중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독자 여러분, 임인년(壬寅年) 새해도 행복하소서!!!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8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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