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 말바꾸기, 변명이 일상인 ‘사이비’ 정치인들
- 사회에 큰 해악…사이비 구별해내지 ‘않는’ 우리들 잘못도 있어
어렸을 때 집 바로 옆에 의원이 있었다. 근동에 병원이라곤 그 작은 의원 하나가 전부였는데 원장은 소아과•내과•외과에 산부인과까지 진료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인술을 펼치는 슈바이처 같은 인물이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지역사회에서 자선사업과 무료진료로 동네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어머니를 포함한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나쁜 사람이라는 쑥덕거림이 돌기 시작했다. 원장이 간호사를 임신시켜 그만두게 했다느니, 어린 가정부가 소파수술을 했다느니, 작은 마누라를 두고 매일 본부인을 때린다는 등 어린 필자가 듣기에 민망한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후 그 집 큰딸의 첼로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강남으로 이사갔다는 소문과 함께.
만장(萬章)이 어느날 스승인 맹자에게 물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향원(鄕原)'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 분명할텐데 왜 유독 공자께서는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德之賊)'이라고 하셨는지요?"
향원이란 겉으로는 성실하고 후덕해 주위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 향원은 고을 수령을 속이고, 양민에게 피해를 주는 토호를 가리킨다. 글머리의 우리동네 원장이 현대판 향원이라 할 수있다.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이 비난하려 해도 특별히 비난할 게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특별히 없으나 더러운 무리와 야합하고, 집안에서는 충심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밖에서는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의 겉모습만 본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그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겠지만, 성현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 오사이비자)'라 한 것이다."
원문에는 '사이비자(似而非者)' 또는 '사시이비(似是而非)'로 되어있는 '사이비(似而非)'란 말은 '외양은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것 또는 그런 자'를 뜻한다. 향원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맹자는 다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공자께서 강아지풀을 미워함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고, 망령됨을 미워함은 그것이 정의를 혼란케 할까 두려워함이고, 날카로운 구변(口辯)을 미워함은 그것이 믿음을 혼란케 할까 두려워함이고, 자주색을 미워하는것은 그것이 붉은색을 혼란케 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원을 미워함은 그들이 덕을 혼란케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셨다.“
이는 논어 양화편(陽貨篇)에서 공자가 한 말을 만장이 스승인 맹자에게 그 뜻을 질문한 것으로 맹자 진심장구하편(盡心章句下篇)에 실려있다.
논어 양화편 원문에는 ‘惡紫之奪朱也 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也(오자지탈주야 오정성지란아악야 오이구지복방가야)’라고 기록돼있다. 자주색이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고, 정나라 음악이 아악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 구변이 날카로운 자가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거짓이 참된 것을 욕보인다'란 의미의 '오자탈주(惡紫奪朱)', '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집는다'란 뜻의 '이구복방(利口覆邦)'이란 성어가 유래한다. 공자는 이처럼 사이비와 부정(不正)이 진실과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못마땅해 했다.
붉은색은 정색(正色)으로 담담한 빛깔이고, 자주색은 간색(間色)으로 농염한 빛깔인데 사람들은 자주색을 좋아하므로 붉은색이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정나라 음악은 음탕한데 사람들이 좋아해서 아악을 어지럽게 했다. 또한 말재간만 뛰어난 자는 시비(是非)와 현사(賢邪)를 뒤바꾸어 말하고, 이런 자들에 의해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서 ‘能行之者 未必能言 能言之者 未必能行 능행지자 미필능언 능언지자 미필능행)’이라고 했다. ‘실행에 능한 자가 반드시 언변에 능한 것도 아니고, 언변에 능한 자가 반드시 실행에 능한 것도 아니다’는 말이다.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에 대한 실천을 잘 하는 것은 아니며, 말이 앞서는 사람치고 자기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 수시로 말바꾸기나 변명이 일상이 된 사람들, 이렇게 창피함이나 부끄러움을 모르고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뻔뻔스런 사람을 가리켜 후안무치(厚顔無恥) 혹은 철면피(鐵面皮)라 한다. 오늘날 사회지도자라 하는 사람들 중에 그렇지않은 사람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말인 '나이롱', '돌팔이', '짝퉁'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고 있는 '무늬만'이란 말이 사이비와 비슷한 의미라 할 수있다. 요즘 무늬만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입만 벌리면 우리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있다. 시쳇말로 '42B들이 판치는 세상'이 돼버렸다. '향원'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해악(害惡)이지만 더 큰 죄악은 그것을 구별해내지 못하는 우리일 수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