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8) 사시이비(似是而非) 오자탈주(惡紫奪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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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8) 사시이비(似是而非) 오자탈주(惡紫奪朱)
  • 이형로
  • 승인 2023.05.08 13:4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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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은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사람
- 거짓말, 말바꾸기, 변명이 일상인 ‘사이비’ 정치인들
- 사회에 큰 해악…사이비 구별해내지 ‘않는’ 우리들 잘못도 있어
원문에 ‘사이비자(似而非者)' 또는 '사시이비(似是而非)'로 돼있는 '사이비(似而非)'란 말은 외양은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것 또는 그런 자를 뜻한다. 입만열면 거짓말, 수시로 말바꾸기나 변명이 일상이 된 정치인 등 우리사회에는 사이비 지도자들이 너무 많다. (사진=인터넷 캡쳐)

어렸을 때 집 바로 옆에 의원이 있었다. 근동에 병원이라곤 그 작은 의원 하나가 전부였는데 원장은 소아과•내과•외과에 산부인과까지 진료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인술을 펼치는 슈바이처 같은 인물이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지역사회에서 자선사업과 무료진료로 동네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어머니를 포함한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나쁜 사람이라는 쑥덕거림이 돌기 시작했다. 원장이 간호사를 임신시켜 그만두게 했다느니, 어린 가정부가 소파수술을 했다느니, 작은 마누라를 두고 매일 본부인을 때린다는 등 어린 필자가 듣기에 민망한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후 그 집 큰딸의 첼로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강남으로 이사갔다는 소문과 함께.

만장(萬章)이 어느날 스승인 맹자에게 물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향원(鄕原)'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 분명할텐데 왜 유독 공자께서는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德之賊)'이라고 하셨는지요?"

향원이란 겉으로는 성실하고 후덕해 주위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 향원은 고을 수령을 속이고, 양민에게 피해를 주는 토호를 가리킨다. 글머리의 우리동네 원장이 현대판 향원이라 할 수있다.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이 비난하려 해도 특별히 비난할 게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특별히 없으나 더러운 무리와 야합하고, 집안에서는 충심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밖에서는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의 겉모습만 본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그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겠지만, 성현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 오사이비자)'라 한 것이다."

원문에는 '사이비자(似而非者)' 또는 '사시이비(似是而非)'로 되어있는 '사이비(似而非)'란 말은 '외양은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것 또는 그런 자'를 뜻한다. 향원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맹자는 다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공자께서 강아지풀을 미워함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고, 망령됨을 미워함은 그것이 정의를 혼란케 할까 두려워함이고, 날카로운 구변(口辯)을 미워함은 그것이 믿음을 혼란케 할까 두려워함이고, 자주색을 미워하는것은 그것이 붉은색을 혼란케 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원을 미워함은 그들이 덕을 혼란케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셨다.“

이는 논어 양화편(陽貨篇)에서 공자가 한 말을 만장이 스승인 맹자에게 그 뜻을 질문한 것으로 맹자 진심장구하편(盡心章句下篇)에 실려있다. 

논어 양화편 원문에는 ‘惡紫之奪朱也 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也(오자지탈주야 오정성지란아악야 오이구지복방가야)’라고 기록돼있다. 자주색이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고, 정나라 음악이 아악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 구변이 날카로운 자가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거짓이 참된 것을 욕보인다'란 의미의 '오자탈주(惡紫奪朱)', '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집는다'란 뜻의 '이구복방(利口覆邦)'이란 성어가 유래한다. 공자는 이처럼 사이비와 부정(不正)이 진실과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못마땅해 했다. 

붉은색은 정색(正色)으로 담담한 빛깔이고, 자주색은 간색(間色)으로 농염한 빛깔인데 사람들은 자주색을 좋아하므로 붉은색이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정나라 음악은 음탕한데 사람들이 좋아해서 아악을 어지럽게 했다. 또한 말재간만 뛰어난 자는 시비(是非)와 현사(賢邪)를 뒤바꾸어 말하고, 이런 자들에 의해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오자탈주(惡紫奪朱)',논어 양화편(陽貨篇)에서 유래한 성어로 ‘거짓이 참된 것을 욕보인다‘는 뜻으로 사이비와 유사한 말이다.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사이비 지도자들이 판을 치는데는 사이비를 구별해내지 ’않는‘ 우리 모두의 잘못도 있다. (사진=인터넷 캡쳐)

사마천은 사기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서 ‘能行之者 未必能言 能言之者 未必能行 능행지자 미필능언 능언지자 미필능행)’이라고 했다. ‘실행에 능한 자가 반드시 언변에 능한 것도 아니고, 언변에 능한 자가 반드시 실행에 능한 것도 아니다’는 말이다.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에 대한 실천을 잘 하는 것은 아니며, 말이 앞서는 사람치고 자기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 수시로 말바꾸기나 변명이 일상이 된 사람들, 이렇게 창피함이나 부끄러움을 모르고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뻔뻔스런 사람을 가리켜 후안무치(厚顔無恥) 혹은 철면피(鐵面皮)라 한다. 오늘날 사회지도자라 하는 사람들 중에 그렇지않은 사람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말인 '나이롱', '돌팔이', '짝퉁'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고 있는 '무늬만'이란 말이 사이비와 비슷한 의미라 할 수있다. 요즘 무늬만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입만 벌리면 우리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있다. 시쳇말로 '42B들이 판치는 세상'이 돼버렸다. '향원'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해악(害惡)이지만 더 큰 죄악은 그것을 구별해내지 못하는 우리일 수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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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3-05-09 08:58:30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좋은 전통입니다.

윤진한 2023-05-09 08:57:49
장과 정치.군사의 최고 통치자로 군림할수는 있어도, 성인이나 군자칭호를 부여받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만 믿으며 중심으로 삼고, 서유럽의 가톨릭같은 세계종교도 이해하면서(비교종교학 방식으로), 군자의 길을 배우고 익히다보면, 자기 지위에 맞게 後學성격 儒生.儒林,유교도의 위치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느님(天)을 숭배하고 神明(천지의 신령)을 섬기며,조상에 제사하며, 공자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유교의 수천년 전통은 범위를 넓혀 남에게도 부모와 같은 노인공경.연장자 존대, 형제.자매와 같은 너그러움.인자함을 넓히도록 기반을 조성해 왔습니다. 이웃이 어렵고, 과부나 부모가 일찍 죽은 아이는 국가나 마을이 포용하는 유교 전통은 앞으로

윤진한 2023-05-09 08:57:10

뿐입니다.유교 경전인 詩經은 하느님[天, 하늘(하느님)]이 만백성을 낳으신점(天生蒸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하느님이나 천주님도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개념이 비슷합니다. 공자님은 하늘에 죄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경고하시고, 깨우치신 天命을 가르치시고, 하늘이 공자님께 부여한 덕(德)을 바탕으로, 도덕정치의 밑바탕이 된 인의예지신을 가르치시고, 공맹의 가르침은 삼강오륜을 낳아, 모든 동아시아 통치자들은 공자님이 제시하신 군자의 가르침을 따르기 열망하며(실제로 군자로 추증되려면 후세에 유림들의 합의나 국가의 법으로 추증되어야 인정됨) 노력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성인이나 군자는 공자님과 그 이전의 성인이신 요.순.우.탕, 문.무.주공정도로 한정하여왔습니다.후세의 중국 황제나 제후들은 유교의 최고 제사

윤진한 2023-05-09 08:56:15

논어 陽貨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子曰 "鄕原은 德之賊也". 향원(鄕愿)이란, 공자님당시 너무 일반적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위선자의 유형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鄕理(고향마을 사람들)의 신망을 얻기 위해 선량함을 가장하여, 실제로는 온갖 피해를 끼치는 부류가 참된 德을 해치는 賊이란 의미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인체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을 속여 실속을 채우던 악덕 土豪, 還穀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자, 공물을 착복하는자, 촌민을 불러모아 수시로 사냥을 하여 농사를 방해하는 자등이 전형적인 향원으로 분류되어 이런 부류는 세력을 얻지 못하고 비토의 대상이 되어왔으므로, 실제로 득세한적도 없었습니다. 탐관오리로 처벌받거나, 선비사회의 공적으로 몰려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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