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외국여성, 이혼 주된책임 남편에 있으면 체류자격 허용’ 판결

- 대법원, 베트남여성의 출입국당국 상대 체류불허 취소소송서 원심파기 환송 - ‘남편 전적인 책임때만 인정하면 권리행사 제한’…‘불허사유 입증책임도 행정청에 있어’ -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여성 인권보호 진전 의미

2019-07-10     김동현 기자
베트남

[인사이드비나=김동현 기자] 한국과 베트남 양국 사회에 공분을 일으킨 한국인 남편의 베트남인 아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베트남인 아내 A씨가 남편과 이혼후 아이와 함께 한국에 그대로 살고싶다는 의사를 밝힌 가운데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한국남성과 결혼해서 국내로 들어온 해외여성이 이혼했을 경우 체류자격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이혼의 주된 책임이 남편쪽에 있다면 체류자격을 허가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베트남국적 여성 B씨(23)가 서울남부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체류기간 연장 불허가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승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 남편에게 폭행당한 베트남인 아내, '이혼해 아이 양육권갖고 한국서 합법적으로 살고싶어' 의사 밝혀

B씨는 2015년 한국인 남성(40)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와서 시어머지 집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살면서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무급으로 일을 하던중 2016년 2월 유산을 했다. B씨는 돈 쓸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신용카드를 받아쓴 뒤 즉시 돌려주는 생활을 했다.

B씨는 직접 돈을 벌기 위해 남편과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한 면세점에서 일을 하던중 편의점 일이 힘들어진 시어머니가 다시 편의점에서 일할 것을 요구받았다. B씨가 이를 거부하면서 고부간 갈등이 커졌다. 남편은 ‘아내가 가출해 소재를 알수 없어 신원보증을 철회한다는 신고서를 내고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 소송이 벌어졌고 법원은 ‘남편에게 주된 귀책사유가 있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이어 2017년 5월 결혼이민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출입국당국은 실태조사뒤 남편의 전적인 귀책사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체류거부 처분을 내렸고 A씨는 이에 불복해 출입국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A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졌다. A씨에게도 혼인파탄의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게 법원의 판결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이혼하게 된 것이 오로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 때문인 경우에만 체류자격을 연장해준다면 외국인 배우자는 혼인관계를 적법하게 해소할 권리행사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며 "한국인 배우자가 이를 악용해 외국인 배우자를 부당하게 대우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체류자격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귀책사유가 외국인에게 있다고 증명할 책임은 행정청에게 있다"고도 결정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체류기간이 최대 3년인 결혼이민(F-6) 비자로 국내에 들어오며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체류연장시 대부분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하다. 신원보증이 없으면 불법체류가 된다.

◆ 한국인 배우자의 부당대우로 이혼한 여성, 추방당하지 않고 합법적 체류 길 연 대법원 판결 

외국인 여성이 이혼해서 체류자격 연장신청을 할 경우, 한국인 배우자의 외도나 폭력 등 중요한 귀책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은 자진출국을 종용하는게 그동안의 관례였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들은 ‘신원보증’과 이혼시 혼인파탄 귀책사유를 자신이 입증해야 하는 등 인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온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국인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로 이혼을 한 외국인 여성들이 추방당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근거가 돼 결혼 이주여성의 인권보호 진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한편 베트남 언론에 따르면 남편에게 폭행당해 당국의 보호를 받고있는 A씨는 자신을 찾아온 주한 베트남대사관 관계자에게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남편과 함께 살려고 한국에 왔는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며 "남편과 이혼한 뒤 아이 양육권을 갖고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A씨는 지난달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고 배우자 비자로 입국해 이달초 1년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두 살짜리 아들은 남편의 호적에 등재됐지만, 아직 법무부를 통해 국적취득 절차를 밟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