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4) 蟬蟲五德(선충오덕)…매미의 다섯가지 덕목

- 요란한 매미 울음 소리의 계절에 되새겨보는 덕목…文•淸•廉•儉•信 - 사회부조리 여전…나라 잘되려면 지도자와 관리들 청렴결백해야

2020-08-10     이형로

코로나19로 뜻하지 않은 긴 휴가를 마치고 마침내 덕수궁에 돌아왔다. 자귀나무꽃과 옥잠화가 한창일 때 대한문을 닫았는데 이제는 백일홍, 금불초, 비비추, 맥문동 그리고 무궁화꽃이 한창이다. 아울러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매미소리 요란하다.

며칠 전 가을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도 지났다. 하지만 유난히 긴 올여름 장마는 아직도 끝나지 않아 오늘도 하늘은 온통 먹장구름이다. 덕수궁 매미소리도 장마야 어서 물러가라는듯 빗소리에 맞춰 더욱 높아진다.

궁궐에는 임금과 왕비를 상징하는 용과 봉황이 있다. 답도(踏道)에는 궁궐에 따라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으며 정전의 천장 한가운데 천개(天蓋)에도 금룡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중요 전각과 담장의 기와에도 용과 봉황 문양이 있다.

◆매미, 군자의 지극한 덕목을 지닌 곤충(至德之蟲)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곤충 가운데 거미와 매미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정직한 곤충의 상징으로 궁궐의 막새기와에 거미와 거미집을 새겨 넣었다.

거미는 밤새 비바람에 망가진 자신의 집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보수하거나 새로 짓는다. 그 집은 늘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성실과 정직의 상징적인 곤충으로 여겼던 것이다.

매미는 더욱 귀하게 여겨 임금과 관료들의 모자에까지 매미 날개를 달아 놓았다. 늘 곁에 두고 매미의 덕(德)을 본받으라는 의미다.

매미는 땅속에서 종류에 따라 5년에서 길게는 17년이라는 인고의 기다림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 마지막 다섯번째 허물을 벗은 매미 유충은 새벽녘 땅속에서 나와 햇볕 잘 드는 나무줄기에서 우화(羽化)한다.

아침 햇살에 젖은 날개를 말리고 체온을 높인 매미는 비로소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맘껏 발휘한다. 길어야 한달, 목이 쉬도록 기나긴 인고의 한을 마음껏 풀고 처서(處暑)가 지나면 귀뚜라미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라진다.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는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되도록 나무줄기로 오른다. 높이 오르면 땅위의 천적인 땅거미와 두더쥐 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덕수궁에는 기껏해야 30cm도 안되는 맥문동과 비비추 꽃대에서 우화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한방에서 선퇴(蟬退)라며 두드러기 치료제로 쓰이는 매미 허물이 눈에 많이 띈다.

매미는 예로부터 문청렴검신(文淸廉儉信) 5덕을 갖춘 곤충이라 여겼다. 선충오덕(蟬蟲五德)이다. 중국 서진(西晉)의 시인 육운(陸雲, 262~303)은 늦가을의 매미를 주제로 한선부(寒禪賦)라는 시를 지었다. 그는 서문에서 매미를 '지극한 덕을 갖춘 곤충(至德之蟲)'이라고 표현하면서 매미에게는 군자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이 있다고 했다.

頭上有緌則其文也(두상유유즉기문야)
첫째, 문덕(文德)이 있다고 했다. 평상시엔 감추고 있는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은 길게 늘어진 선비의 갓끈과 같아서 학문(學文)에 뜻을 둔 선비와 같다. 또한 매미의 반복적인 울음소리는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로 들린다.

含氣飮露則其淸也(함기음로즉기청야)
둘째, 청덕(淸德)이 있다. 매미는 오로지 맑은 이슬과 수액만 먹고 사니 청렴(淸廉)하다.

黍稷不享則其廉也(서직불향즉기렴야)
셋째, 염덕(廉德)이 있다. 농민이 애써 일군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치(廉恥)가 있다.

處不巢居則其儉也(처불소거즉기검야)
넷째, 검덕(儉德)이 있다. 매미는 여느 벌레들과는 달리 집조차 짓지 않고 그냥 나무에서 생활하니 욕심이 없고 검소(儉素)하다.

應候守節則其信也(응후수절즉기신야)
마지막으로 매미에게는 신덕(信德)이 있다고 했다. 매미는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때에 맞춰 열심히 울며 물러날 때를 알고 지키니 신의(信義)가 있다. 그래서 매미는 '지료(知了;안다, 알았다)'라는 또다른 별명도 가지고 있다.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매미…우리에게 교훈주기 위한 울음인가

보통 사모라 부르는 오사모(烏紗帽)는 원래 중국 민간에서 쓰던 일반적인 모자였다. 관료들이 오사모를 쓰기 시작한 것은 동진(東晉) 때부터였다. 그후 수•당•송대를 거치며 조선시대 익선관(翼善冠)과 사모의 모습으로 정착된 것은 명대이다.

특히 송나라 때에는 백관들의 사모의 날개가 유달리 길었다.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이 모자는 평각복두(平角幞頭)라 하며 속칭 장시모(長翅帽)라고도 한다. 이 관모의 발명자는 바로 송나라 개국황제 조광윤(趙光胤, 927~976)이다.

그는 왜 이런 괴상한 모자를 만들었을까? 조정의 대신들이 주위 사람들과 쑥덕대느라 조회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다. 심지어 대신이 황제인 자신에게 업무 보고할 때조차 잡담하느라 집중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원래 의심이 많은 조광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황위에 등극한 후 함께 천하를 종회무진하던 동료들에게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러니 문무대신들이 조정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쑥덕대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겠는가.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장시모였다. 그는 대신들의 오사모에 기다란 날개 즉 장시(長翅)를 달도록 명했다. 낭창낭창한 날개는 철사와 대나무로 만들어 걸어다닐 때마다 흔들흔들 우스운 모습이 되었다.

지금처럼 역병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황제 자신의 의심증 때문에 강제로 '개인간 거리두기'를 강요한 결과물이 바로 장시모였다. 매미의 가르침과는 한참 거리가 먼 엉뚱한 발명품이었다.

익선관은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가 국가의 대소 의례 때와 평상시 집무할 때 곤룡포와 함께 관모로 사용하였다. 익선관은 복두(幞頭)의 변형으로 중국 송나라 때는 절상건(折上巾)이라 하였다가 명나라에서 익선관이라 부르면서 조선에 전해져 사용하게 되었다.

그 형태는 사모와 유사하며 전면의 굴곡진 부분에 자색끈이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만 관료들의 사모와 다른 점은 한 쌍으로 된 매미날개를 위로 향하게 부착하였다는 것이다. 날개가 위로 향한 것은 하늘을 의미하며, 관료의 관모는 양 옆으로 붙여 땅을 향하고 있어 상하를 구분하였다.

관모의 매미 날개 모양의 양쪽 깃을 관리들이 서로 쳐다볼 때마다 매미의 덕목을 떠올리며 정사를 잘 베풀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던 것이다. 심지어 금이나 옥을 매미 모양으로 만들어 늘 가지고 다니며 관리로서 매미의 청렴한 덕목을 배우고자 하였다.

요즘도 우리사회에는 빈번히 터져 나오는 안전사고로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관료와 우리 국민들 사이의 신의와 청렴성과 무관하지 않다. 안전하게 시공해야 할 업자들이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하여 부실공사를 하고, 이를 관리 감독해야할 관리가 이들의 부정을 눈감아줌으로써 많은 인명피해와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 나라가 잘되려면 지도자를 비롯한 모든 관리들이 청렴결백해야 한다.

옛부터 우리들은 매미의 다섯가지 덕목을 배우고자 했으면서도 우리 사회 안에는 여전히 부조리가 존재하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에서도 우리들을 일깨우기 위해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매미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이행(李荇, 1478~1534)도 '매미'라는 시에서 '너의 천성이 자못 높고 깨끗하니, 누가 감히 하찮은 벌레라 하겠는가?(爾性頗高潔 이성파고결, 誰言蟲類微 수언충류미)'라며 매미의 덕을 노래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