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5) 사택망처(徙宅忘妻), 사가기부(徙家棄夫)

- 이사할 때 아내를 잊고 간다고?…요즘 세상에선 망발 - 아내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미안한 일 하지말고 있을 때 잘해야

2022-04-04     이형로

필자 부부는 언제부터인가 무슨 할 일이 있거나 혹은 해놓은 일이 있으면 서로 얘기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잊지않기 위해서인데 그러면 뭐하나, 찌개 올려놓은 후 서로 잊고 태운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궁여지책으로 타이머를 마련했지만 시간 맞추는 것을 잊으니 그것 역시 큰 효과가 없다. 그래도 둘다 잊을 확률이 줄어드니 여전히 서로 알려주고는 있다.

아내는 마트에 갈 때면 필요한게 없냐고 묻고가지만 잊고오기 일쑤다. 요즘은 필요한 품목을 메모하고 가지만 메모장 보는걸 잊는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길을 걷다가 또는 차안에서 시상이 떠오르면 메모를 한다. 그러면 뭐하나, 메모했다는 것을 잊는데. 휴대전화 메모장에 글을 쓰다가 전화가 오면 핸드폰을 찾기도하고, 통화를 하고 있으면서 전화기를 찾는 일도 있다.

나이들면 자연스런 건망증이라지만 치매증세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의사 친구가 건망증과 치매증세 초기의 경우 확실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기억력이 감퇴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치매에 해당되고, 기억력 상실을 의식하면 건망증이다’라는 말에 위안을 삼고있다.

우리는 보통 지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깜박깜박할 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며 놀려댄다. 좀 더 심한 경우를 빗댄 '업은 아이 삼년 찾는다'는 속담도 있다. 과장되고 황당한 경우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가 공자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노나라 왕 애공(哀公)은 제자들과 주유천하를 마치고 온 공자 일행을 위로차 주연을 베풀었다. 주연이 끝난 후 공자와의 독대 자리에서 애공은 물었다.

“寡人聞忘之甚者 徙而忘其妻有諸(과인문망지심자 사이망기처유제)”

"선생님, 듣자하니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이사를 하면서 자기 아내조차 잊고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일이 진짜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뭘그정도 가지고 그러냐 그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다고 대답한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왕숙(王肅)이 편찬했다는 공자가어 현군(孔子家語 賢君)편에 실린 이야기다. 

여기서 '이사하면서 아내를 잊어버리다'란 뜻의 '사택망처(徙宅忘妻)'란 고사성어가 유래한다. 중요한 일을 놓치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비유하거나, 건망증이 심한 것을 비유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사가망처(徙家忘妻)라고도 한다.

한때 일본에서는 남편이 출근했을 때를 틈타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반려동물만 남겨놓은 채 이사하는 유행(?)이 있었다. 이래저래 꼴보기 싫은 남편과의 이별, 아니 이혼의 통보였다. 

요즘이야 5년이상 사실혼 관계이면 연금도 부부가 반반씩 나누는 법이 통과돼 황혼이혼-일본에서는 숙년이혼(熟年離婚)이라 한다-이 성행하고 있지만, 그때는 아내측에선 '이사하면서 남편을 버리는 것(徙家棄夫 사가기부)'이 한 방편이었다.

아프리카 바비라족 남자는 이혼하고 싶으면 기름을 가득 채운 작은 항아리와 지팡이를 잠자는 아내의 머리맡에 놓는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푸에블로 인디언은 아내가 신발을 벗어놓으면 바로 이혼이라고 한다. 푸에블로 인디언 여인만큼은 아니어도 지금은 이혼을 하자면 어렵지않다. 물론 재산과 아이들 양육 문제가 걸리지 않은 협의이혼인 경우이다. 

요즘 퇴직자 남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혼사유가 있다. 50대는 외출하는 아내를 따라나서다 이혼당하고, 60대는 살만 닿아도, 70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혼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남편들이 까닥 잘못하면 쫓겨나는 위기의 세상이 되었다.

공자가어의 일화에서 공자 대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사하면서 아내를 잊고 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심한 사람은 그 자신까지 잊는다(此猶未甚者也 甚者乃忘其身 차유미심자야 심자내망기심)’는 것이었다.

공자는 그러면서 중국 고대의 폭군으로 유명한 하나라 걸왕, 상나라 주왕의 예를 들었다. 이들은 사해(四海)의 부를 가지고 있는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국사는 돌보지 않고 사치와 황음에 빠졌다고 했다. 또한 권세에 아부하고 남을 비방하는 간사한 신하들만 가까이 하며 충직한 신하들은 모두 추방시켜 결국나라를 망쳤으니, 이것이 바로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忘身)'의 심한 경우라고 했다.

이사하면서 아내를 잊고 갔다면 아내는 무척 섭섭했겠지만 다시 데려오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을 잊었다면 누가 찾으러 온단 말인가. 공자가 일갈한 '자신을 잊는다(忘身)'는 말은 불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망아(忘我)'와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망아는 '무엇에 열중하거나 황홀하여 자신을 잊는 경지'를 말하지만, 망신은 '자기 본분을 잊는다'는 말이다. 자기 주제 파악을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거든 미안한 짓은 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 그렇다고 자신을 잊어서도 안된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