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5) 측은지심(惻隱之心), 회사후소(繪事後素)

-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간의 도덕적 능력이자 내면의 아름다움 - ‘그림은 바탕을 깨끗이 한후 그리는 법’…겉모습보다는 인성이 중요

2023-03-27     이형로

지난 주말 심한 미세먼지 속에서도 정동길은 봄을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평소처럼 정동길을 걷던 필자도 사람들 틈에서 덕수궁 돌담길과 어우러진 새꽃을 둘레둘레 구경했다.

그때 맞은 편에서 유모차를 타고오던 두어살되는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것이었다. 마침 옆을 지나던 나는 앗! 소리와 함께 아이를 안으려 뛰어갔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오던 한 아주머니도 뛰어와서 아이를 안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서로 가볍게 이마를 부딪쳤지만 아이는 무사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무의식중에 구하려는 마음가짐, 이를 우리는 넓은 의미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며, 이를 유가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있는 ‘불인지심((不忍之心, 차마 하지못하는 마음)'이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로 앙금앙금 기어가 빠지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아이를 구할 것이다. 누구에게 칭찬을 듣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달려가 위험에서 구하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했다. 남의 불행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하는 마음이다.

맹자는 우리 인간이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가지 마음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했다. 이는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 등 4단(四端)으로, 각각 인•의•예•지의 착한 본성에서 발로되어 나오는 감정이라 한다.

그래서 '실마리(端緖)'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선(善)이 발생할 가능성을 지닌 시초를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맹자가 공손추(公孫丑)편에서 역설하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은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이 중에서 측은지심은 나머지 삼단의 근원이 된다. 마치 사계절이 있지만 봄이 없으면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측은지심은 이 세상 만물을 사랑하고 길러주는 마음이다.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으면 남에게 잔인하게 굴지 못하며, 정치지도자는 독재를 할 수가 없으며, 기업가는 노동자를 착취할 수가 없으며, 이른바 갑질도 할 수없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와 이태원 참사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을 외면한 ‘시체팔이’ 등의 막말도 할 수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이익, 명예, 안락만 좇다보니 본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을 버리며 살고있다. 측은지심은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잊고있다.

맹자에 의하면, 이 네가지 실마리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일종의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이다. 맹자는 이를 확충함으로써 인•의•예•지의 덕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사단설은 맹자 성선설의 근본으로 인간의 도덕적 주체 내지 도덕적 규범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

논어 팔일편(八佾篇)에는 자하가 시경 위풍 석인(衛風 碩人)의 한 구절인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위위현혜)’의 뜻을 공자에게 묻는 대목이 나온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가 무슨 뜻이냐는 물음이다. 공자는 ’그림은 바탕을 깨끗이 한 후에 그리는 법이다.(繪事後素 회사후소)’라고 대답한다.

이 대화의 요체는 아름다움의 겉모습과 그 알맹이에 대한 담론이다. 미소와 보조개와 검은 눈동자는 외적인 아름다움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적인 바탕이 순수해야 아름답다는 것이다. 소(素)의 의미는 인간이 타고난 본래의 선한 인간적 품성을 뜻한다. 공자의 말씀은 우리 내면의 아름다움이 받쳐주지 못하는 외모는 허상이란 뜻이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물론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도 인성교육, 즉 인간 됨됨이의 바탕을 중요시하고 있다. 순자는 우리가 비록 악한 마음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지우기 위해, 맹자는 그 선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참구(參究)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은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한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며, 이런 이들을 신조어로 '오지라퍼(오지랖+er)‘라 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 또한 주변사람에 관심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 관심이 쓸데없는 참견을 넘어 상대방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가 된다면 진지하게 숙고해야하겠지만. 그러나 착한 오지랖은 넓은 의미의 인지상정 또는 측은지심이라 여기는 아량도 필요할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