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11) 오류귀장(五柳歸庄) 양류무지(楊柳無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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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11) 오류귀장(五柳歸庄) 양류무지(楊柳無枝)
  • 이형로
  • 승인 2024.04.1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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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연명 ‘귀거래사’, 혼탁한 시대 지혜의 지침
- 벌써 은퇴했어도 될 정치인들, 귀거래사 되새겨보길
단원 김홍도의 ‘오류귀장도(五柳歸庄圖)’. 왼쪽 상단에 ‘오류귀장 단구(五柳歸庄 丹邱)’ 화제와 낙관이 있다. 오류귀장도는 중국 동진의 문인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낙향해 다섯그루 버드나무가 있는 작은 초막 장(庄)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작품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간송미술관 소장품에는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의 '오류귀장도(五柳歸庄圖)'가 있다. 그림 어디에도 '귀거래'나 '도연명' 또는 '도잠' 이라는 글은 없고, 왼쪽에 '오류귀장 단구(五柳歸庄 丹邱)'라는 화제와 낙관만 있다.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거나 특히 어린 학생들은 김홍도의 이 그림이 바로 동진의 문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오류선생(五柳先生)'을 주제로 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작품 캡션에 한글을 병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나 할까.

오류선생(五柳先生)은 도연명이 스스로 지은 별호다. 그가 관직생활을 접고 다섯그루 버드나무가 있는 고향의 작은 초막인 장(庄)을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작품이다. 단구(丹邱)는 단원 김홍도의 또 다른 호다.

우리가 직장이나 관직 등 사회생활을 접고 낙향할 때 관용구처럼 쓰는 '귀거래사를 읊는다'라는 말은 도연명 작품에서 유래한다. 그는 41세에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를 읊으며 다섯그루 버드나무가 있는 고향의 초막으로 돌아가 스스로 오류선생이라 자처하며 자연을 벗삼아 여생을 즐겼다.

그는 40대 나이에 들자마자 벼슬살이를 접고 전원으로 돌아갔지만, 처음부터 은거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잡시5(雜詩五)'에서 ‘猛志逸四海 騫翮思遠䎝(맹지일사해 건핵사원저)’라고 읊었다. ‘힘차고 강한 의지 온세상에 뻗쳤으니/ (나도) 날개 활짝 펴고 날아오르려 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그도 한때는 이름을 떨쳐 보겠다는 웅심(雄心)이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살았던 남북조시대는 송나라와의 왕조교체기였다. 당시는 후한말 이래 위•촉•오의 전쟁과 위나라의 정권쟁탈전, 정치적 혼란과 이민족의 침공, 농민들의 봉기 그리고 자연재해까지 다양한 사건•사고들로 몹시 어지러운 시대였다. 조정과 지배층은 무능했을 뿐아니라 악귀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던 시대였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도연명이 아니었지만 그는 벼슬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유교에서 내세우는 출세해 공명을 떨치고 가문을 일으키기 위한 그런 원대한 꿈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오로지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집이 가난해서 열심히 농사지어도 먹고 살 수가 없었다. 집에는 어린 자식들이 많았지만, 뒤주에 저장해둔 곡식은 없었고 생활에 필요한 것이 있어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숙부께서 나의 곤궁함을 알고 천거해주셔서 마침내 작은 고을에 임용되었다. 시국이 불안해서 멀리까지 가기가 꺼려졌지만, 그래도 그 봉급이라면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할 수있어 관리가 되었다." (귀거래사 서문)

이렇게 도연명은 분명히 '나는 먹고 살려고 관리를 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당시 도연명은 능력보다는 문벌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몇 차례 출세할 기회가 있었지만, 곧은 성격 때문에 혼탁한 세상과 뒤섞일 수 없다며 전원으로 돌아가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고결하고 청렴한 삶을 살았던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등 작품에 담긴 정서와 정신은 혼란한 시대 후세에게 참된 삶의 이치를 가르쳐 준다. 벌써 은퇴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도 총선에 출마해 당선하거나 낙선한 정치인들은 귀거래사를 되새겨봄직 하다. (사진=인터넷 캡쳐) 

도연명은 중국의 문인중 시대와 국가를 벗어나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의 작품에 담긴 예술성도 뛰어나지만 그가 살아온 삶과 이상은 고상했고, 그가 추구했던 이상이 공맹과 노장에 버금가는 인생의 진리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연명은 한시 분야중 전원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돌아가자. 전원이 점차 황폐해져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로 시작하는 귀거래사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는 속세에서 유가의 영향을 받고 살았지만, 전원으로 돌아간 후에는 도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도를 추구하는 삶이 오롯이 전원시에 묻어나면서 그의 사상이 문학으로 승화된 것이다. 때문에 도연명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여전히 은은한 향기를 내고있는 것이다. 

그의 글에 담긴 고뇌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던 지식인들에게는 지혜의 지침이 되었고, 상처받은 민중들의 마음에는 단비 같은 위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처럼 실제로 고결하고 청렴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작품과 삶을 통해 후세에게 참된 삶의 이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의 지조를 본받은 문인들의 작품이 이어지고, 우리나라와 일본을 넘어 서양에까지 세속적이지 않은 그의 청렴함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런 그도 이태백 만큼이나 술을 무척 즐겼다. 그러나 이태백처럼 화려하게 마시지는 못했다. 그런 능력이 안됐으니 그에게 술은 더욱 귀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귀향할 때 책은 물론 술까지 싣고왔다.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마침내 저멀리 우리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네.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것들은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구나."(오류선생전)

친구들이 간혹 술자리를 마련해서 그를 부르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마시고 취했다. 그러나 취한 후에는 깨끗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찾아온 벗이 있으면 다음을 기약하며 기꺼이 보냈다. 

천년이나 흘렀지만 조선의 이수광(李晬光,1563~1628년)은 그런 그를 '송객(送客, 친구를 보내며)'이란 시에서 멋지게 그려냈다.

‘入馬溪橋夕 悤悤酒一扈 臨分欲有贈 楊柳已無枝(입마계교석 총총주일호 임분욕유증 양류이무지)’. ‘해질녘 시냇가 다리에 말을 세우고/ 바삐 서로 술 한잔 나누었네/ 이별의 증표로 주려했더니/ 버드나무엔 이미 남은 가지 하나 없네’.

헤어지기 싫은 친구와 작별하려 하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 모양이다. 저녁무렵 마을어귀 다리에 말을 잠시 매어놓고 이별이 아쉬워 또 다시 한잔의 술이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다. 떠나가는 친구에게 조만간 다시 만나자는 표시로 버들가지 꺾어주려 보니 이미 쓸만한 가지는 없다.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으면 다섯 그루나 되는 버드나무에 꺾어줄 가지가 없었을까. 도연명은 비록 낙향해 다섯 그루 버드나무와 지내고 있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4.10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당선자나 낙선자 가운데는 벌써 은퇴했어도 충분한 이들이 눈에 띈다. 스스로는 강변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노욕으로 비친다. 그들에게 권하고 싶다. 여태 쌓아온 업적을 노욕으로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으니 이제는 귀거래사를 멋지게 읊고 용퇴하라고. 설사 글솜씨가 서툴더라도 대필작가가 아닌 본인이 솔직담백하게 회고록이나 남겨서 후배들에게 귀감은 아닐지라도 참고라도 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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