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태문 박사의 VINA프리즘] (10) 천년의 쌀국수, 세계로 나가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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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태문 박사의 VINA프리즘] (10) 천년의 쌀국수, 세계로 나가다(상)
  •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농업경제학박사)
  • 승인 2019.08.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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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국수는 다이어트 음식…'박항서 감독, 선수들에게 금지 이해돼'
- 보트피플, ‘도이머이’개방정책으로 인적교류 늘어나며 세계각국 확산
퍼보(쇠고기 쌀국수)(사진=인터넷 갭쳐)
퍼가(닭고기 쌀국수)(사진=인터넷 캡쳐)

[인사이드비나=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농업경제학박사)] 베트남 음식은 담백하다. 쌀국수는 담백한 베트남 음식을 대표한다. 다이어트를 원한다면 쌀국수를 먹어라. 세 끼를 여유있게 먹어도 살이 빠진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선수들에게 쌀국수를 못 먹게 했다. 근기가 적어 체력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필자는 베트남 생활 3개월만에 체중 5kg이 가볍게 빠졌다. 감량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쌀국수를 좀 많이 먹은 것뿐이다. 박항서 감독의 말이 이해되었다.

국수를 만드는 곡물은 밀, 메밀, 쌀 등인데 약간의 찰기가 있으면 가능하다. 우리도 옛날에 메밀이 흔했다. 메밀을 가루내어 메밀국수를 만들었다.

중국은 밀이 많아 밀국수인 면(麵, noodle)이 되었다. 쌀이 많은 베트남은 쌀가루를 내어 쌀국수가 되었다.

◆ 압면(押麵)방식 분(bun)과 하분(河紛)방식 퍼(Pho)·미꽝(Mi Quang)

쌀국수 제조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압면(押麵) 방식이다. 반죽을 구멍이 뚫린 틀에 넣고 밀어서 끓는 물에 삶아 만든 국수이다. 분(bun) 제조방식이다.

하분(河紛) 방식도 있다. 쌀가루 국물을 가열판 위에 얕고 넓게 펴서, 익힌 후 자른 국수이다. 오늘날의 퍼(Pho), 미꽝(Mi Quang) 제조방식이다.

분은 한국의 국수와 같은 전형적인 둥근 형태의 쌀국수이다. 퍼와 미꽝은 칼국수처럼 넓적한 형태이다.

둥글고(분), 넓적한(퍼, 미꽝) 베트남 쌀국수는 동북아 지역에서 오랫동안 발전해온 국수(둥근), 칼국수(넓적한)와 거의 같다. 동북아 지역에서 발원한 국수가 베트남 쌀국수의 역사속에 면면히 계승된 것이다.

1975년 통일베트남 수립을 전후하여 보트피플(Boat people)이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월남 패망 직전 다낭에도 수많은 보트피플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배가 침몰돼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다낭시는 슬픈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2003년 미케 해변의 끝자락 손짜반도에 링잉사(靈應寺)를 건립했다.

링잉사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세계 각지에 둥지를 튼 보트피플이 쌀국수를 세계음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쌀국수 세계화는 정책영향도 컸다. 1986년 베트남은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으로 세계시장에 빗장을 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세계로 나갔고, 지구촌 사람들도 베트남을 찾았다. 빈번한 사람 교류는 쌀국수가 빠르게 지구촌에 자리 잡도록 하였다.

쌀국수는 만들기 쉽다.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별도 반찬이나 세련된 요리법도 필요하지 않다. 보트피플의 허기를 면하고, 생계도 이어주며, 개방정책도 가세하면서 쌀국수는 빠르게 지구촌 음식으로 편입되었다.

분보후에(사진=인터넷 갭쳐)
후띠우(후띠에우)(사진=인터넷 갭쳐)
미꽝(사진=인터넷 캡쳐)

◆ 전통의 쌀국수 면(麵)에 프랑스 포토피 쇠고기 국물 가미

베트남 사람들은 언제부터 쌀국수를 먹었을까.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1884년)를 기점으로 삼는다. 프랑스의 가정식 요리 포토푀(pot-au-feu)가 발단이다. 프랑스 냄비인 토푀(au-feu)에 쇠고기, 각종 채소, 허브 등을 넣고 끓인 요리가 포토푀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쇠고기, 채소 등 건더기만 건져먹고 국물은 버렸다. 국물 문화가 없었던 프랑스 사람들이 국물을 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보기에 포토푀 국물은 쇠고기를 넣고 두 시간 이상을 끓인 육수였다. 포토푀 육수는 자연스럽게 베트남의 쌀국수 문화에 포함되었다.

쇠고기 육수에 삶은 쇠고기 수육까지 들어간 쌀국수는 기존의 쌀국수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새로 발명된 쌀국수 브랜드로 포토푀 요리명을 변형하여 퍼(pho) 쌀국수가 탄생된 배경일 것이다. 그러므로 퍼를 ‘쌀국수의 시작이다’, ‘쌀국수 역사는 백년에 불과하다’란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포토푀 육수에 넣었던 쌀국수 면(麵)은 이미 존재했다. 베트남 쌀국수의 기원은 천년에 이른다. 서기 1000년경에 중국의 농작물과 식품이 대거 베트남에 전래되었다. 여기에 쌀국수로 짐작되는 분(bun)도 함께 들어왔다. 전래된 분은 중국의 밀가루 면(noodle)이었다.

밀이 생산되지 않았던 베트남은 분의 원료를 쌀가루로 대체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이 분(bun)이란 이름으로 쌀국수를 먹은 역사가 천년이 되는 이유이다.

분으로 전해온 쌀국수의 형태는 찾기 힘들다. 국수 제조방식에서 확인된 것처럼 둥근 모양(분)과 칼국수 모양(퍼)의 쌀국수가 같이 들어왔을 것이다.

쌀국수 백년 설의 허구는 또 있다. 응웬 왕조는 1802년 베트남 최초로 현재의 국경과 거의 유사한 통일왕조를 수립하였다. 왕조의 수도 후에(Hue)는 기존의 왕조 수도를 독점했던 하노이와는 달랐다.

자체 궁중요리가 없어서 서민음식이 궁중음식이 되었다. 응웬 왕조의 궁중음식이 소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후에에는 왕조수립 이전부터 서민음식으로 사랑받아왔던 쌀국수, 분(bun)이 있었다. 후에가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쌀국수 면(분)에 쇠고기(보)가 들어가고, 수도의 명칭까지 포함되어 쌀국수 브랜드 ‘분보후에’(bun bo hue)가 완성된 것이다.

분보후에는 ‘분(bun) 면에 쇠고기(bo)를 넣어서 먹었던 후에 지방의 쌀국수’란 뜻이다.

석태문 박사의 칼럼은 본지와 '뉴스퀘스트'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석태문 박사는

경북대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경상북도 능금산업 발달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경북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대구경북 지역 사회 및 경제발전 관련 연구활동을 활발히 하고있으며 지난 3월부터 베트남 다낭사회경제연구원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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