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2) 한국의 '경제인'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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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2) 한국의 '경제인' 탄생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 승인 2019.09.0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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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비나=권요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언제 오셨습니까?” 1961년 6월27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부의장은 이병철 삼성 회장(당시 사장)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안부인사를 했다.

“부정축재자로 지칭되는 기업인들에게는 별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병철의 말에 박정희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그래도 이병철은 계속했다. 기업인은 사업을 일으켜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본분이니 그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경제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짧은 만남 후 당시 메트로호텔에 연금됐던 이병철은 이틀 후 풀려났다. 부정축재자로 구속됐던 기업인도 곧 석방됐다. 당시 구속됐던 기업인들 중에는 작고한 최태섭 한국유리 사장도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장로였던 최태섭 사장은 재계의 청지기라 불릴 정도로 당당한 기업활동을 했다. 그래서 구속 중에도 늘 여유 있고 겸손했다.

◆ 고(故) 이병철 회장, “기업인의 본분은 사업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것”

당시 한 취조관은 최태섭의 이런 인품에 매료돼 한국유리 경비책임자를 자원해 평생 복무했다고 한다. 최태섭 사장의 이런 올곧은 성품때문인지 석방될 때 군사정부 주요간부는 최사장에게 경제건설을 위한 경제단체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최씨의 이야기를 들은 기업인 13명은 석방 이튿날인 7월15일 하오 “경제재건촉진회”로 이름 지어진 기간산업을 건설하는 실천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고 이병철 회장(사진 가운데 안꼉쓴 사람)을 비롯한 경제인들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및 정부관계자들과 산업단지 건설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재건촉진회는 8월8일 이사회를 열었다. 그리고 설립의 취지대로 13명 회원이 하나씩의 기간산업을 책임지고 추진하기로 했다. 양회공장은 쌍용의 전신인 금성방직(홍재선), 비료공장은 삼성(이병철)과 삼호(정재호), 전기는 대한제분(이한원)이 추진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제철은 대한양회(이정림), 극동해운(남중련), 대한산업(설경동), 동양시멘트(이양구)등에서, 화섬은 화신(박흥식), 조선견직(김지태), 한국유리(최태섭)등이 합작으로 건설하기로 했다. 이들 기간산업에서의 성패가 60년대 고도성장기이후 한국재계의 지도를 바꾸게 된다.

경제촉진회의 회장은 최태섭, 이정림, 설경동, 이병철 등이 거론됐으나 서로가 사양하다가 이병철로 합의가 됐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꿔 1961년 8월16일 임시총회에서 이병철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했고 이것이 오늘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이 됐다.

돌이켜보면 전경련회장은 창립 때부터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자리를 탐하지 않는 겸양의 정신 속에서 기간산업 육성으로 나라를 재건하자는 책임감이 전경련을 재계의 본산으로 자리잡게 할 수 있었다.

기간산업의 육성에는 의지 못지않게 자금이 중요한 법, 경제인협회는 협회 설립 한달도 되지 않아 획기적인 ‘외자도입 수용체제와 촉진책’을 마련해 건의했다. 이들은 후손들에게 ‘부정축재자’란 오명은 남기고 싶지 않겠다며 공장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회장을 맡은 이병철은 필사의 심정으로 외자도입까지 성사시켜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래서 11월에 미국과 유럽에 외자유치교섭단을 잇달아 파견시켰는데 미주지역은 본인이 직접, 유럽지역은 협회 부회장이었던 이정림이 단장으로 갔다.

당시 사절단의 활동에 걸프 등의 기업이 관심을 가졌고 뒤에 걸프는 울산정유공장에 큰 투자를 했다. 유럽지역에서도 독일에서만 금성사, 한일시멘트 등에서 2,500만달러의 차관교섭에 성공했다. 1년새 두번이나 정변을 겪었던 나라에 누가 돈을 꿔 줄 것인가. 그러나 경제인들은 이를 해냈고 그 후 공업발전, 나아가 한강의 기적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의 초창기 회의 모습.

◆ 1960년대 ‘경제인’ 단어 등장…경세제민(經世濟民) 의미에서 빌어와

1961년 협회가 창립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인을 ‘실업인’으로 많이 불렀다. 그러나 한학에 조예가 깊은 이동준, 조홍제 회장의 선창으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빌어 ‘경제인’이라는 이름을 협회에 넣었다.

관치의 냄새가 나는 ‘재건’도 떼었다. 돈을 빌릴지언정 뜻은 나라를 위해 펼치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한국경제인협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그 후 전경련으로 이름을 바꾸고 울산공업단지 건설, 창원 구로수출산업공단, 사채동결 건의, 한국경영자총협회 창립, 민간금융기구 설립, 기업의료보험, 88서울올림픽 유치 등을 추진하면서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 성장했다.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 등 해외 경제계와의 제휴를 통해 OECD가입 등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선도하고 중동, 아세안 등 해외시장 개척의 디딤돌을 마련했다. 전경련의 회장은 재계의 총리로 불리며 한국경제의 발전을 선도했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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