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6) 민간경제계가 불씨 지핀 한·아세안 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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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6) 민간경제계가 불씨 지핀 한·아세안 경협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 승인 2019.12.0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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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아세안 경제계지도자협의회 발족…교류발판 마련
- 1989년 정부간 공식대화 창구개설, 30주년인 올해 부산서 특별정상회의
- 정부•경제계 서로 밀고 끌어주는 협력관계 순기능 보여주는 사례
민간경제계는 아세안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79년 한•아세안 경제클럽을 결성하고 이후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 등 대기업 회장들이 아세안 5개국을 순방하며 한•아세안 경제인지도자 협의회를 발족시켜 활동하는 등 한•아세안 교류협력및 공식대화창구 개설의 토대를 마련했다. 1981년 한•아세안 경제지도자 합동회의 리셉션에서 정 회장(오른쪽), 신병현 부총리(가운데), 시십(W.SyCip) 회장 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1981년 여름 민간경제계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남쪽나라 아세안 5개국에서 불어온 경제 협력 열풍이 우리 경제에 제2도약의 기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해 6월 대통령이 아세안 5개국을 순방했다. 한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인 아세안 순방에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정주영 회장을 사절단장으로 주요그룹 회장단 등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수행했다.

이후 대통령이 정상외교차 외국에 나가면 수행 경제인단이 파견되는 관례가 생겼는데 아세안순방 경제인단이 그 효시였다. 삼성은 이건희 부회장이 이병철 회장을 대신해 참가했다. 이는 삼성의 후계자로서 이 부회장이 재계에 공식으로 데뷔한 첫 무대이기 도 했다.

◆정주영 등 대기업 회장들, 아세안5개국 순회하며 경제계지도자협의회 발족

경제계 인사들은 아세안 5개국을 순회하면서 실질적 경협추진체로 한·아세안 경제계 지도자 협의회를 발족하고, 국가·사업별 분과위원회를 둬 협력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대우 이경훈 사장, 금성계전 윤욱현 사장, 삼성 이필곤 사장 등 기라성 같은 전문경영인들이 실무선에서의 책임을 맡아 임무를 수행했다. 그중 건설·플랜트위원회는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맡았다. 이 위원회는 그해 전체 국외건설 수주액(83억달러) 가운데 절반이상인 57건 48억 달러 규모를 개발했다. 그만큼 미지의 시장에서 벌인 기업인들의 활동은 눈부셨다.

한·아세안 경제계 지도자 합동회의에 참석한 신병현 부총리(中), 정주영 회장(右), W. SyCip회장(左) (1981.10.7.)

전경련은 한·아세안 민간경제협력의 추진 창구로써 한·아세안 경제계지도자 협의회를 출범시켰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몇가지의 애로사항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한상의와의 주도권 문제였다. 당시 재계의 대한상의에 대한 시각은 관변단체 정도였다.

그러나 관변단체라서 대한상의는 더 거칠게 나왔다. 심지어 아세안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경제 5단체장의 김포공항 기자회견 좌석 배치도 정가운데를 고집했다. 정주영 회장의 들러리가 되지는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공항 귀빈실 직원이 눈에 설은 대한상의 회장을 오른쪽으로 밀고 정주영 회장을 가운데로 안내함으로써 감정싸움이 일단락되기도 했다.

이런 감정상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아세안은 공식 경제단체로 상공회의소(CCI)만을 인정하고 있어서 전경련의 주도는 명분상 문제까지 노정됐다. 그러나 재계의 실세들이 포진하고 있는 전경련을 아세안측에서 선호했기 때문에 대한상의 회장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한·아세안 경제계지도자 협의회는 전경련 회장이 맡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후 정부와의 협조하에 한·아세안 경협은 빠르게 추진됐다.

◆경제단체 갈등으로 협의회 운영에 어려움 겪기도

재계의 노력은 그해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경제계지도자 합동회의에 무려 100명 가까운 아세안 경제계 중진들이 집결하면서 큰 결실을 봤다. 그러나 일부 참석자들이 ‘대외경협 차관도 없고, 기술도 선진국에 한참 뒤떨어진 한국과 같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라는 회의적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한국과 경협을 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아세안 경협지원 정·재계 간담회(1981.11.18.)

아세안 경협지원 정재계 간담회 모습. 한•아세안 관계는 최근의 부산 회의를 비롯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국내에서 3차례 개최할만큼 강화됐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정부와 경제계가 서로 밀고 끌어주는 협력관계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한국측 설득으로 우리가 희망했던 프로젝트들을 민간차원에서 추진한다는데 합의했고, 정주영회장 워싱턴 시십(W. SyCip) 등 양측 단장은 이를 공동성명에 담아 공식 발표했다. 개발경험 공유를 위해 각국 경제부처 공무원의 한국연수, 기능공 초청훈련 등이 시행됐다.

그 후 세계최장 사장교인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싱가포르 래플즈시티, 인도네시아 산림개발 프로젝트 등을 성공적으로 속속 수주하는 등 경협은 질과 양에서 크게 확대됐다.

한·아세안 경제계지도자 협의회는 아세안과 공식적인 대화파트너로 인정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대(對)아세안 경협창구로 활용됐다. 민간차원의 선제적 활동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아세안과 공식 대화 창구를 1989년 개설했고, 올해 30주년을 맞아 부산에서 특별정상회담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09년 제주도, 2014년 부산 개최에 이어 올해 부산 특별정상회의 개최 등 5년주기의 국내개최가 정착될 정도로 한·아세안 경제관계는 크게 진전됐다.

◆특별정상회의 5년주기로 3차례 국내 개최…올해 부산행사, 새시대 설계 시발점 기대

이번에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서밋은 한·아세안 경협 가능성을 내다보고 1970년대부터 경제계지도자 회의를 개최해온 한국 재계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본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전경련은 아세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했던 1979년에 한·아세안 경제인 클럽을 결성하는 등 향후 관계 강화를 위한 기반을 정부에 앞서 구축했다.
 
경제협력에 왕도는 없다. 정부가 앞서면 민간이 뒤따라가고, 정부가 어려우면 민간이 다리를 놓아 신뢰의 바탕에서 호혜적 관계를 형성하는 길뿐이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 여의도 옛 전경련회관내 조그만 회의실에서 경제계가 불씨를 지핀 한· 아세안 경협은 2017년 기준 교류인원 978만명(1위), 교역 1,490억달러(2위), 투자 62억달러(3위) 규모로 성장했다(한·아세안센터 자료). 지난 30년간 한국과 아세안의 인적 교류는 40배, 교역은 20배, 투자는 70배로 늘었다. 이는 정부와 민간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경제협력의 기본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당시 5개국이었던 아세안은 지금 10개의 회원국이 됐고, 개도국이었던 한국은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번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이 한국과 아세안 각국 정부, 경제계가 상호 신뢰와 호혜관계를 다져 경제위기를 함께 이겨내고,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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