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16) 기업‘을’ 내버려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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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 (16) 기업‘을’ 내버려두오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전 SK그룹 사장)
  • 승인 2020.08.10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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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 보수 정권색채 가리지 않고 계속된 정경유착
-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으로 절정…‘더이상은 안돼’ 공감대는 이뤄졌지만
지난 2016년 12월7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대기업 총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인들은 정권에 밉보일까 두려워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강제출연당했지만 혜택을 받으려 국정농단에 협조했다는 정경유착 의혹을 추궁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정경유착은 더이상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얼마나 실현되느냐는 정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전경련)

머리가 희끗한 대기업 회장 9명이 국회에 나왔다. 이들이 이끄는 기업들의 총자산은 1000조원이 넘는다. 연간 매출 910조원, 거느리는 임직원수는 100만명에 육박한다.

국회의원들은 호통을 쳤다. 회장들에게 ‘손을 들라’고도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원수급으로 대접받는 재계 수장들에게 이날은 치욕의 순간이었다.

2016년 12월7일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으로 채택했다. 엄밀히 말하면 기업들은 피해자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 정체불명의 공익법인에 자신들의 자산을 강제적으로 출연당했다.

그러나 청문회장의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기업들이 정부의 혜택을 받으려 국정농단에 협조했다는 추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했다.

청문회가 끝난 후 삼성은 그룹의 중추기관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현대차, 삼성, LG, SK 등 주요그룹이 모두 전경련을 탈퇴해 재계의 본산으로 불리며 경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전경련은 해체위기에 몰렸다. 국회의원들은 “정치도 쇄신할테니 재계가 쇄신해달라”고 야단을 쳤지만 국회쇄신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재계만 풍비박산이 났다.

전경련은 1961년 출범 때부터 정치자금과 정경유착 해소라는 과제 해결에 매달려왔다. 정치자금을 내고 반대급부로 혜택을 받겠다는 정경유착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경유착의 해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협의회는 4.19혁명이후 탄생한 민주당 정부가 무려 5만명이 넘는 기업인을 부정축재자로 규정한 ‘부정축재처리법’의 시행을 막기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72개 기업, 공무원 및 정당인 600여명으로 부정축재법 대상을 축소시켰다.

964년 2월14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제인간담회(사진 위), 1981년 2월27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축하연. 정경유착의 뿌리는 부패한 권력이며 이는 보수나 진보 등 정권의 색채를 가리지 않고 계속 이어져왔다. (사진=전경련)

5.16쿠데타 이후 구금됐던 기업인들이 소수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은 경제협의회가 민주당 정부 하에서 기울였던 노력의 성과였다. 경제협의회를 계승한 전국경제인협회의 증진들은 정치자금을 양성화, 제도화해 이 나라의 정경유착 논쟁을 없앨 구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이정림 회장은 전경련 사무국장에 갓 취임한 김입삼 국장에게 “정치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우리 경제인은 돈을 낼 생각이 있다”며 “다만 제발 뺨 맞고 형무소에 가게는 하지않게 해 주시오.”라고 당부했다는 증언도 있다.

김입삼 국장은 이승만 정부에서 산업개발위원회 보좌위원을 맡아 경제개발계획을 세운 인물이다. 12년간 전경련 부회장을 맡으며 의료보험제도 도입의 산파 역할도 했다.

1965년 2월 경제인협회주도로 ‘정치자금양성화’가 입법화됐다. 그러나 법 제정 1년이나 지나도록 기탁된 것은 단 한건, 1만20원에 불과했다. 이것도 경기도 화성군 농민의 모임에서 15명이 품삯을 모아 기탁한 것이었다.

정치자금을 양성화해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를 씻어 내자는 재계의 의지는 권력에 의해 사정없이 유린됐다. 때로는 강제로, 때로는 자발적으로 재계는 정치자금과 관련해 ‘을’의 위치에서 정치자금을 냈고, 그 대가로 권력을 쥔 다른 갑에 의해 처벌받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재계와 정치권의 암묵적인 거래는 1985년 국제그룹이 권력에 밉보여 해체되면서 갑을관계에서 주종관계로까지 급락했다. 당시 재계순위 7위의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분해되면서 기업들은 공포에 시달렸다. 기업들은 권력의 입맛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초 1983년 아웅산 순국사절을 위해 설립된 일해재단(세종재단의 전신)에는 1987년까지 600억이나 모금됐으나 순국사절 유가족 성금은 정치자금으로 낙인찍혔다. 모금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정주영 현대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 외에 2205억 원의 뇌물수수가 밝혀져 무기징역이 선고되기도 했다.

전두환의 뒤를 이은 노태우 대통령도 정치자금을 강제로 모았다. 재임시 기업으로부터 무려 5000억원 가량을 모았다고 해 2628억 원의 추징금이 선고됐다. 노태우에게 정치자금을 준 이건희 회장 등 기업인 35인도 기소됐다.

노태우 다음의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자신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무위로 그쳤다. 노무현 정권도 정치자금으로 곤욕을 치뤘다. 진보건 보수건 집권과정에서 또는 집권 후에도 기업을 자기들의 호주머니로 여기고 강제로 털어갔다. 그런 행태가  절정에 달한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과정에서의 미르, K스포츠재단 출연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이제 권력과 기업의 관계는 돈을 매개로 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손뼉은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전경련 설립 당시부터 재계의 염원이었던 불법 정치자금으로부터의 해방과 전전한 정경관계의 정립은 분수령을 맞았다. 2016년 12월7일은 역사에 어떤 의미를 남길까.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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