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8) 들국화와 和光同塵(화광동진), 知者不言(지자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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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28) 들국화와 和光同塵(화광동진), 知者不言(지자불언)
  • 이형로
  • 승인 2020.10.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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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의 아름다움 즐기면 그만이지 구별•구분을 해야하는가?
- 깨달은 사람은 말이 없고(知者不言), 그냥 세상과 더불어 살 것인데(和光同塵)
- 시비이해 따지지말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야
(사진 위 왼쪽부터)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꽃과 이파리. 이들 식물은 꽃 모양이 비슷해 이파리를 봐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면 그만이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사진=이형로)

올여름은 반갑지 않은 태풍이 우리나라를 여러차례 찾아온 해였다. 이런 와중에도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하얗게 무리져 피던 구절초가 바람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피고, 긴 목을 자랑하는 벌개미취도 바람에 쓰러져도 아름다운 꽃은 떨구지 않았다. 카페 앞의 쑥부쟁이도 마찬가지다. 강풍을 이겨내고 굳굳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요즘이다.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요즘,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들국화는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이 녀석들이 지고 나면 겨울이 성큼 다가오리라. 그런데 사실 들국화란 이름은 식물도감에는 없는 말이다. 산과 들에 자기들이 알아서 피고지는 국화 무리들을 통틀어 우리는 들국화라 부른다. 대표적인 것으로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 산국, 감국, 참취 등이 그네들이다.

이들은 가을이면 우리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덕수궁에도 가을이면 주위 풍광과 어우러져 고궁의 정취를 더해준다. 요즘 대한문을 들어서면 오른쪽 돌담길카페 앞 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쑥부쟁이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7~10월에 꽃을 피우는 쑥부쟁이는 처음 연한 보라색을 띠다가 그 색깔이 점점 옅어져 만개할 즈음에는 하얗게 변하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줄기 끝마다 무리지어 꽃이 피는 점이 구절초와 다르다.

옛날에 동생들의 끼니로 쑥을 캐러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안타깝게 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고 한 전설에서 쑥부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쑥잎을 닮은 쑥부쟁이도 쑥과 같이 봄에 어린 순을 나물로 먹는다.

벌개미취는 들국화 무리 가운데 가장 먼저 6월부터 보라색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10월까지 피고 진다. 요즘은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는 야생화로 고궁뿐만 아니라 곳곳에 심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벌개미취의 학명인 'Aster koraiensis'로 알수 있듯이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다. 속명인 Aster는 그리스어로 별이란 말에서 비롯되었고, 종명인 koraiensis는 자랑스럽게도 한국 토종이란 뜻이다. 그래서 영어 속명도 Korean Daisy다.

구절초(九節草)는 9일간 한송이씩 핀다하여 구일초(九日草), 혹은 부인병에 좋은 약초라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한다. 구절초는 다달이 자라 음력 9월9일인 중양절에 아홉 마디가 된다하여, 혹은 양의 기운이 쇠하고 음의 기운이 강성해지기 시작한다는 중양절에 꺾어 약초로 써야 그 효과가 좋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늦가을까지 담홍색 또는 흰꽃이 피며 우리나라 산과 들에 흔히 군락을 형성하며 자란다. 구절초 또한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도 많이 키운다. 궁궐에도 곳곳에 심어 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요즘 덕수궁 연못가의 구절초는 주위의 풍광과 어우러져 초가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청곡(晴谷) 박일규의 和光同塵(화광동진) 작품.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화광동진은 덕과 재능을 숨기고 세상과 같이하며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으로 무위자연 사상의 요체이기도 하다.

이들 식물은 꽃의 생김새와 색깔 그리고 이파리의 생김새로 구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는 같은 국화과로 꽃모양은 비슷하다. 그래서 이들을 정확히 구별할 줄 알면 야생화 공부가 끝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꽃의 생김새로는 구별이 쉽지 않다.

쑥부쟁이 이파리는 작은 국화잎, 구절초는 쑥잎, 벌개미취 이파리는 여인의 목을 닮아 길쪽하다.

그러나 이들을 구별해서 무엇을 어찌하란 말인가. 우리는 가을 들판에 아름답게 핀 꽃들을 그저 즐기면 그뿐이다. 그들이 언제 우리 인간들에게 구별하고 구분해 달라고 했던가?

노자는 도덕경 4장과 56장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을 말했다. 이는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와 같이 하다'라는 의미다. 자신의 덕과 재능을 숨기고 세상과 같이하며 속세에 어울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노자는 56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터득한 사람은 말이 없고(知者不言 지자불언)
말이 많은 사람은 터득하지 못했다(言者不知 언자불지)
이목구비를 막고 욕심의 문을 닫아(塞其兌 閉其門 색기태 폐기문)
날카로움 무디게 하고, 마음에 얽힌 것 풀어헤치며(挫其銳 解其紛 좌기예 해기분)
눈부신 빛을 부드럽게 하고, 속세와 어울리니(和其光 同其塵 화기광 동기진)
이를 현동이라 한다(是謂玄同 시위현동)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한다(挫其銳)’는 자신이라는 주체와 사물이라는 객체 사이의 갭을 줄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남들 앞에서 나를 죽이라는 말이며 속된 말로 튀지 말라는 의미다.

그리고 ‘얽힌 것을 풀라(解其紛)’는 서로 구분•구별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래야 그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다'(和其光 同其塵), 이러한 세계를 일러 '현동'(玄同)이라 하였다.

이렇게 지혜의 빛을 누르고 세상의 티끌, 즉 속세와 어울린다는 뜻의 '화기광 동기진'에서 노자 무위사상의 요체라 할 수 있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이 유래한다.

이미 4장에서 언급했던 것을 56장에서도 강조하며 이러한 세계를 '현동'이라 했다. 현동은 시비이해의 판단이 없이 사물인 객체와 함께하는 세상이며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가을 산과 들을 장식하고 있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 그리고 구절초는 우리 인간들에게 자신들을 결코 구별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계절에 따라 피고질 뿐이다. 서로 네가 못낫느니 내가 잘낫느니 그런 '날카로움'이 없이 그저 다른 꽃들과 어울려 피고 질 뿐이다. 쓸데없이 우리 인간들이 꽃색깔이 어떠니 이파리 모양이 어떠니 떠들 뿐이다.

저들 자연세계는 태생 자체가 '화이동진'하여 훌륭한 이상적인 세계 '현동'을 이루고 있다. 주위에서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말이다.

시인 안도현은 이를 깨달아, 우리에게 '무식한 놈'이란 시를 선사했다. 쑥부쟁이꽃과 구절초꽃의 유사함을 소재로 한 일종의 오도시(悟道詩)라 할 수 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이 시의 제목인 '무식한 놈'이란 작가 자신인 동시에 우리들이다. 세상을 이 만큼 살며 여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니, 참으로 멍청한 놈이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 보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이 '찐' 무식한 놈이다.

쑥부쟁이면 어떻고 구절초면 어떻고 벌개미취면 또 어떠랴. 그들이 언제 우리에게 구별해 달라고 했던가. 그들은 우리 인간들이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菽麥不辨 숙맥불변), 그야말로 '쑥맥'이라 할지라도 그런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은 니가 못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분별하고 타박하지만 자연계 특히 식물세계에는 그런건 전혀 없다. 그들은 모두 노자가 설파한 화광동진의 세계 속에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현동의 세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런 '무식한 놈'과는 영원히 결별하겠다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이제 나도 그정도의 이치는 알겠노라 한다. 꽃과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내가 꽃과 나무가 되어야 한다. 시인 나태주는 이 세상의 꽃을 자세히 보면 모두 아름답다고 했다. 그렇다, 인간이든 꽃*나무든 조화로운 세계가 가장 아름답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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