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에 500억원 기부…“AI인재 양성에 써달라” 당부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지하자원도 없기 때문에 바다를 개척하는 길 밖에 없다. 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寶庫)이고 우리나라가 가난과 후진국이라는 멍에로부터 벗어나려면 우수한 젊은이들이 바다 개척에 나서야 한다.”
강진농고 졸업반 시절 담임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꿈 많던 소년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배 한척으로 참치왕국으로 거듭난 동원그룹의 모태 동원산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서울대 농과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됐던 김 회장은 담임 선생님의 바다개척론에 큰 감명을 받아 부산수산대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1958년 부산수산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김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指南號)’에 항해사로 승선했다. 김 회장은 지남호 승선 3년만에 선장이 됐는데 당시 나이 26세였다.
행위는 있으나 기록은 없던 시절, 뱃사람 김재철은 모든 걸 선상일기로 기록했다. 출어날짜부터 어장상황, 집채만 한 파도, 선장으로서의 역할과 고민들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이 기록은 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기업가정신의 표상이 됐다.
1964년 김 회장은 참치연승선 10여척으로 원양어업에 뛰어든 고려원양어업에 스카우트됐다. 수산부장에서 선단장, 스카우트 4년만인 1968년에는 이사로 승진했다. 당시 나이 34세로, 김재철이란 이름이 알려지자 일본의 여러 상사들이 ‘그만한 능력이 있는데 왜 독립해서 사업을 하지 않느냐’며 독자적인 회사를 운영해 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사업권유의 숨은 저의를 의심했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김 회장은 1969년 4월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동원이라는 사명(社名)은 동쪽, 즉 한국에 있는 회사가 원양어업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뛰면서 세계 최대, 최고의 회사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원산업의 창업 밑천은 자본금 1,000만원과 김 회장의 10년 바다 경험뿐이었다. 김 회장이 10년간 바다에서 쌓아 온 경험과 평판은 그 어느 것보다 큰 자산이 됐다.
동원산업은 1969년 7월 김 회장에게 창업을 권했던 일본 도쇼쿠(東食)사의 미국 현지법인 올림피아 트래딩사로부터 지불보증 조건이 없는 37만달러에 달하는 원양어선 2척의 현물차관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그만한 액수의 차관을 지불보증 없이 도입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1969년 신용(信用)을 밑천으로 처음 도입한 어선은 ‘제31동원호’.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탑재모선식(搭載母船式) 연승어업용 배다. 인도양으로 출항한 제31동원호는 첫 조업부터 다른 어선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어획량을 기록했다.
이어 제35동원호, 제33동원호, 제38동원호를 잇따라 도입한 동원산업은 설립 2년만에 선단을 형성했다. 이 중 제35동원호는 차관자금이 아닌 자체자금으로 도입한 300톤급 어선으로써 자체자금에 의한 어선도입은 당시 수산업계에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새로운 어법(漁法)의 과감한 도입과 적극적인 신 어장 개척으로 현재 세계 최대 수산회사로 발전했다. 1982년에는 국내 최초로 참치캔을 출시해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1982년에는 한신증권을 인수해 국내 유수의 건실한 증권사로 발전시켰다.
1996년 공식적으로 동원그룹으로 출범했으며 2004년에는 금융계열(동원금융지주)을 분리해 현재와 같은 글로벌 생활산업 기업으로 거듭났다. 2008년에는 세계 최대 참치브랜드 ‘스타키스트’를 인수해 자타 공인 참치 왕국을 구축했다.
태평양, 대서양과 인도양을 누비던 김재철 명예회장의 눈은 늘 미래를 향해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인공지능(AI)혁신에 써 달라며 현금 500억원을 KAIST에 내놨다.
김 명예회장은 기부 약정식에서 "세계 각국이 AI 선진국이 되기위해 치열한 선두경쟁을 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AI특허 신청 건수는 각각 15만, 14만건에 달하지만 우리는 4만건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KAIST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교수들을 많이 모셔오고 석박사 과정 학생 수를 대폭 늘려 AI의 세계적인 메카로 발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김 명예회장은 ‘앎의 가장 큰 적은 무지(無知)가 아니라 안다는 착각’이라는 스티븐 호킹의 명언을 그의 자서전에 인용할 정도로 공부했다. ‘문사철(文史哲)’ 600권은 그의 학구열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바다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봤던 김재철 회장은 이제 인공지능을 통해 다시 나라의 미래를 개척할 준비를 하고 있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코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