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47) 피해망상(被害妄想), 망상장애(妄想障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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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47) 피해망상(被害妄想), 망상장애(妄想障碍)
  • 이형로
  • 승인 2021.06.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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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칠만큼 엄격한 이분법적 사고가 가장 큰 특징
- 전문가 치료와 함께 주변의 이해와 배려 지속적 관심 필요

망상장애는 자신이 밑는 거짓된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려는 시도조차 않는다. 전문가의 치료와 함께 가족, 주변의 이해와 배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사진=인터넷 캡처)

지난 IMF 외환위기도 무사히 넘겼던 친지 한분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튼실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그는 사업을 하다가 몇번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활기찬 사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과거 자신과 안좋은 일이 있거나 다툼이 있었던 사람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하고 오히려 주위 사람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수차례 그를 타이르기도 하고 언쟁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늘 주위의 괴롭힘과 감시당하고 있고, 과거의 인물과 심지어 국가기관이 자신을 망하게 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돌이켜보니 전형적인 피해망상(被害妄想 Persecutory Delusion))이었는데 조현병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가족을 포함한 주위사람들이 눈치를 채지못해 안타까웠다. 

늘 주변 사람에 의하여 피해를 받고 있고 감시와 괴롭힘을 당한다는 피해망상은 편집증(paranoia)으로 불리는 망상장애(妄想障碍 Delusional disorder)의 일종이다. 망상장애는 전체 인구의 0.03% 정도에서 발생하는 드문 질환이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 치료를 잘 받지 않지만 경우가 많아 실제로 일상에서는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대개 어린 시절 지나치게 엄격한 교육과 환자 스스로 과민한 면이 처벌적인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사회적인 고립, 주변환경에 대한 불신, 자존감 저하를 유발하는 부정적인 환경적 요인이 지속되면 망상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영조 어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恨中錄)에 따르면 영조는 죽을 사(死)자나 돌아갈 귀(歸)자 쓰기를 꺼려하고,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할 때 출입하는 문을  달리하는 등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것으로 묘사돼있다. 

중국에서는 치심망상(痴心妄想)이라 하는 망상장애에는 이같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한다는 피해망상과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 관계망상(關係妄想), 배우자나 애인이 타인과 간통하고 있다고 믿는 일반적으로 의처증이나 의부증이라고 하는 부정망상(不貞忘想)이 있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색정망상(色情忘想), 자신에게 거대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誇大忘想), 끝으로 자신에게 신체적인 문제가 생겼다고 믿는 신체형망상이 있다. 이들은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외에도 수많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恨中錄)에는 영조의 성격을 묘사한 대목이 자세히 실려있다. 죽을 사(死)자나 돌아갈 귀(歸)자 쓰기를 꺼려했다든지, 정무를 마치고는 입던 옷을 갈아입은 후에 안으로 들어왔다거나, 불길한 말을 나누거나 들었을 때 귀를 씻고 양치질을 하거나,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할 때 출입하는 문이 다르고, 아끼는 사람과 아끼지 않는 사람을 함께 있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이 다니는 길을 미운 사람은 다니지 못하게까지 했다.

이와 관련해 정병설 교수는 '권력과 인간'(문학동네, 2012)에서 생사, 내외(內外), 호오(好惡), 애증을 엄격하게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는 그 자체가 병적인 사고방식으로 편집증 즉 망상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 망상장애 환자는 자신의 정서적 생존을 위해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엄격히 나누는데, 나쁜 것은 모두 외부로 돌린다고 한다. 영조의 행태와 기막히게 일치하는 서술이다.

망상장애는 어린 시절의 상처, 굴욕, 학대 등 부정적 경험과 연관이 있다. 왕위 등극 과정에서 겪은 극한의 시련이 영조의 정신세계를 허물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의심과 무수리의 자식이라는 출신 콤플렉스가 평생 영조를 괴롭혔다.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리던 조현병(調絃病 Schizophrenia)에는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며, 증상의 종류에 따라서 세분화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피해망상과 함께 흔히 나타나는 것이 바로 관계망상이다.

관계망상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다른 사람들의 언행을 자기 자신과 연관시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판단해 그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중에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관계망상은 아무것도 아닌 타인의 말이나 태도, 또는 주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과 관련짓는 일종의 망상적 증상을 말한다. 비교적 가벼운 증상부터 심각한 문제를 낳는 경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 증세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조현병 환자에게도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예를들면, 신문 표제나 기사가 자신을 위해서 특별히 작성되었다고 믿거나,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거나 대놓고 이야기하는 느낌, SNS에 올라온 글들이 자신과 관련된 감추어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사물이나 사건들이 자신에게 특별하거나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설정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을 험담하는 것 같이 느끼거나, 심지어는 옆 사람이 기침을 해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이 느낀다. 

피해망상이 생기면 상대방이 나에게 일부러 특정한 말이나 행동으로 해코지를 하려고 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관계망상, 결국 어릴 때부터 올바른 관계형성이 되지 않으면 생긴다.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소통이 되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심리적 증상은 다양한 주변 환경과 개인의 성격, 성장 과정 속의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물론 관계망상, 망상장애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초기증상의 경우 본인이 스스로 극복할 수도 있지만,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하기 힘들다. 환자가 자신이 믿는 거짓된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주위에선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아울러가족과 주변의 이해와 배려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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