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49) 레깅스 논란 …흥이항이(興伊恒伊), 호관한사(好管閑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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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 (49) 레깅스 논란 …흥이항이(興伊恒伊), 호관한사(好管閑事)
  • 이형로
  • 승인 2021.07.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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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편한데. 개성과 자유’ vs ‘보기 민망, 공공장소에서의 매너 필요’
- 호관한사(별것도 아닌 일에 참견) 삼가고 책이나 읽을까 하노라
레깅스 옷차림에 대한 찬반의견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서 '흥이항이', '왈리왈시(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를 삼가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2010년 후반부터 번화가에서나 간간히 눈에 띄던 레깅스가 이제는 공공장소나 버스•전철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대중 패션이 되었다. 레깅스가 몸의 곡선이 드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몸매 보정 효과가 있고 워낙 편하다는 이유로 금세 인기를 끌었다. 긴 상의를 입어서 엉덩이 부분을 가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짧은 티를 입고 하체 전부를 당당히 드러내고 개의치 않는 사람도 꽤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외출할 때 레깅스를 입는 딸의 패션에 대한 50대 주부의 고민글이 새삼 공유돼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딸이 외출할 때 레깅스를 입는데 상의라도 길게 입어서 엉덩이를 좀 가렸으면 하는데 상의마저 짧은 티셔츠를 입는다’는 내용이었다.

찬성 의견은 레깅스의 편안함과 개성과 자유를 강조했다. ‘외국에서는 레깅스를 입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한국이 너무 보수적이다’, ‘레깅스 한번 입어봐라 얼마나 편한데’. ‘보기 불편해도 개인이 입는 옷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권리는 없다’ 등등.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요약해보면 ‘같은 여자가 봐도 민망할 때가 있다. 심지어 속옷 자국 다 보이게 입는 사람도 있다. 본인 선택이고 자유라고는 하지만 옷은 시간과 장소에 맞게 적절하게 입는 것이 매너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을 보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내용이다.

북사(北史) 형란전(邢峦傳)에 ‘蕭深藻是裙屐少年 未拾政務(소심조시군극소년 미습정무, 소심조는 군극소년으로 정무에는 관심조차 없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군(裙)은 중국 남북조시대에 남성들이 입었던 치마와 같은 하의를 말한다. 한족은 본래 농업 위주의 생활을 한 민족으로 말을 타고 다니는 북방의 기마민족과는 달리 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래서 송나라의 주자는 남편이 아내의 치마를 입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다고까지 주의를 줄정도였다.

극(屐)은 물론 나막신을 지칭하지만 요즘으로 말하자면 멋진 명품 신발이라 할 수 있다. '군극소년(裙屐少年)'이란 제 할일은 등한시하며 옷과 신발 등 유행에 따른 겉치레에 치중하는 젊은이를 이르는 말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가수 윤복희가 1967년 귀국하면서 입고온 미니 스커트가 선풍을 일으키자 당국은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장발과 함께 단속했다. 사진은 단속반원이 자로 '무릎위 15㎝' 위반 여부를 재고있는 모습.  

조선 숙종때 민씨 가문의 민백흥(閔百興)과 민백항(閔百恒)이란 형제 문신을 두고 ‘兄弟相繼爲江原監司 有善政至今稱 興伊恒伊, 형제상계위강원감사 유선정지금칭 흥이항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형제가 나란히 강원 감사를 지냈는데 모두 선정을 베풀어 형인 흥이 낫다 동생인 항이 낫다며 오늘날까지 세론이 분분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런가하면 이들 형제와는 다른 내용으로 조선 후기 인조때 문신이자 차례로 영의정을 지낸 김수흥(金壽興)과 김수항(金壽恒) 형제 이야기가 있다. 김씨 형제는 재상이란 고위직에 있으며 독단이 심해 세간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 형제가 "우리들이 힘써 잡은 권세를 행하는데 누가 감히 흥이야 항이야 하겠는가"라고 했다. 민씨 형제와 상반된 의미에서의 '흥이항이'지만,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왈리왈시 曰梨曰枾)' 참견하지 말라는 뜻은 같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학자 송남(松南)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실린 내용이다. 송남잡지는 천문에서 동식물까지 33개 부문을 기술한 백과사전적인 저술로 이 책의 방언(方言)편에 속담을 한역한 부분에 기록돼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가수 윤복희가 김포공항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면서 미니스커트 바람을 일으켰다. 미니스커트가 젊은 여성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자 정부는 1973년 '미풍양속을 해친다'며 장발과 함께 단속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이 자를 가지고 다니며 무릎위 15cm가 '저속한 옷차림'의 커트라인이 되면서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때 유행으로 끝날것 같았던 미니스커트가 이제는 여학생들마저 초미니 학생복을 입는 시대가 되었다. 70년대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으로 도망다니던 세대가 이제는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에게 잔소리하는 노인이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 시인 장 콕토(Jean Maurice 
E.C. Cocteau, 1889~1963)는 "유행은 비난을 한몸에 받고 태어나기 마련"이라 했던가.

만일 레깅스 차림이 지금 한때 유행이 아니라면 미니스커트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다. 자기들이 편해서 또는 요즘 트렌드가 그래서 입는다는데, 그렇다고 레깅스 차림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는 무례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초미니 안에 짧은 속바지를 입듯이 레깅스를 입고 Y존과 엉덩이가 드러나서 정 보기 민망하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할 우리 젊은이들이다. 군극소년처럼 제 할 일을 팽개치고 옷차림에만 신경 쓸 우리 젊은이들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재확산과 무더위에 짜증나는 요즘, '별것도 아닌 일에 참견'하는 호관한사(好管閑事)는 삼가하자. 그럴 시간에 조용히 책이나 보는게 어떨지.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7권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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