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6) 갑질논란과 작위작복(作威作福) 안자지어(晏子之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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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6) 갑질논란과 작위작복(作威作福) 안자지어(晏子之御)
  • 이현우
  • 승인 2021.11.22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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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입주민 대표의 ‘놀이터 초등학생 신고’사건 씁쓸
- 인간은 사회적 동물…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자세 가져야
작위작복(作威作福) 안자지어(晏子之御). 작위작복은 통치자가 권세를 부리며 전횡을 일삼는다는 의미이며, 안자지어는 작은 지위를 믿고 뻐긴다는 말로 ‘갑질’을 뜻한다. (사진=인터넷 캡처)

지난 토요일 미세먼지의 기승 속에서도 덕수궁은 마지막 단풍을 즐기려는 관람객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대한문 입구 쪽에서 큰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한 관람객이 수표원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경로우대자인 그는 긴 줄을 서서 무료입장권을 발급받기 싫어 주민등록증만 보여주고 입장하려 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칠 수 있는데 동반여성은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았다. 그러면 당연히 입장료를 내야한다. 그럼에도 척보면 모르겠냐며 오히려 큰소리다. 오십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웃으면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좋았던 듯 싶다.

무난히 해결돼 다행이지만 이런 경우 제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다. 일종의 ‘갑질’이다.

재벌 총수들의 직원들에 대한 폭언, 폭행 등 갑질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등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즈(NYT)가 '갑질(Gapjil)'이란 표기를 사용하면서 세계적 용어가 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다.

갑질이란 계약권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에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부정적인 어감이 강조된 신조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우월한 신분, 지위, 직급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에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말한다. 

서경 주서(周書) 제6장 홍범구주(洪範九疇)에 ‘惟辟作福 惟辟作威 惟辟玉食 臣無有作福作威玉食(유벽작복 유벽작위 유벽옥식 신무유작복작위옥식)이라는 구절이 있다.

‘오직 임금만이 사치와 향락을 누릴 수 있으며, 오직 임금만이 위세를 부릴 수 있으며, 오직 임금만이 진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신하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작위작복(作威作福)'이란 말이 유래됐다. 원래 전제국가의 통치자가 권세를 부리며 전횡을 일삼는다는 뜻인데 요즘은 갑질을 한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 최근 한 아파트 입주민대표가 놀이터에서 놀던 다른 아파트 초등학생 들을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한 사건은 어른의 아이에 대한 갑질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씁쓸하다. (사진=인사이드비나 자료)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신인 안영(晏嬰)은 재능이 뛰어났지만 겸손해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만큼 치세의 능력이 있었다. 그의 언행은 공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여서 안자(晏子)라는 존칭이 붙여졌다. 안자춘추(晏子春秋)와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있다. 

어느날 안영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였다. 이때 마부는 마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길을 비키거나 엎드리곤 해서 마치 자기가 위대해진듯 착각하여 우쭐거리며 마차를 몰았다.

마침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마차를 몰고 있는 남편을 본 아내는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자 느닷없이 이혼하자고 했다. 마부가 그 이유를 묻자, 안자께서는 키가 6척도 안되지만 재상이 되었으며 그 명성도 자자하다. 그런데도 의연하고 겸허하다. 그러나 당신은 8척의 거구로 남의 마부가 되어서 겨우 우쭐대기나 하니 그런 당신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일침에 크게 깨달은 마부는 그후부터 사람이 달라져 마침내 안영이 대부(大夫)라는 벼슬까지 천거하는데 이른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가 '안자지어(晏子之御)' 또는 '안자복어(晏子僕御)'이다. 남의 위세 또는 작은 직위를 믿고 잘난 체를 하며 갑질을 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와도 통하는 말이다.

얼마전 서울대 기숙사 환경미화원이 휴게실에서 숨진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평소 업무와 무관한 영어시험을 본 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등 팀장의 갑질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제기된 사건이었다. 만일 사실이라면, 팀장이란 인물은 안자의 마부처럼 학교측에서 위임받은 알량한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경우라 할 것이다.

대기업 임원을 마지막으로 퇴직한 지인이 있다. 그는 말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평소 취미로 갈고닦은 요리 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켜 동네에 작은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몇년 하다보니 근동에선 제법 알아주는 식당이 되어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 그도 짜증나는 일이 종종 있다며 농담조로 '삼인행 필유진상(三人行 必有進上)'이란 말을 한다. 그의 말뜻은 '서너 사람의 손님 중에는 진상이 있게 마련이다'라는 의미다.

그가 말한 '진상'은 물론 임금에게 올리던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토산품은 아니다. 요즘은 그 뜻이 부정적인 의미로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정도의 행위나 또는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상을 부리다', '진상을 떨다', '진상이다', '진상손님', 아니면 아예 '진상'으로 쓰이고 있는 말이다. 지인이 거론한 진상은 '갑질하는 손님'이란 의미다.

최근 아파트 입주민 대표란 사람이 놀이터에서 놀던 다른 아파트 초등학생 5명이 입주민의 사유재산인 놀이터를 무단으로 침입하고, 놀이기구를 파손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들을 관리실로 데려가 경찰과 부모들이 올 때까지 잡아둔 사건이 있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걸까. 나이많은 어른의 아이에 대한 갑질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어 마음이 씁쓸하다.

인간은 나홀로 살아가기는 힘든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 '인(人)'자도 좌우의 사람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다. 갑과 을은 대립관계 또는 상하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다. 등라계갑(藤蘿繫甲, 필자 칼럼 51회 참고)이란 말이 있다. 큰 나무인 갑목과 작은 나무인 을목이 상생한다는 의지가 있어야 봄 가을 없이 서로 잘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8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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