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34) ‘럭키’(樂喜)가이 구인회, 글로벌 LG 역사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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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34) ‘럭키’(樂喜)가이 구인회, 글로벌 LG 역사의 출발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전 SK그룹 사장)
  • 승인 2022.05.1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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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전재산 팔아 마련한 300만원으로 화장품사업…K-뷰티의 초석
- 1959년 금성사 설립…LG전자 가전제품 세계1위로 이어져
LG그룹 모태인 럭키화학(樂喜)의 화장품 럭키크림과 1959년 설립된 금성사(LG전자의 전신). 구인회(아래 사진 가운데) LG그룹 창업회장이 1946년 전재산을 팔아 마련한 300만원으로 세운 럭키화학은 오늘날 K-뷰티의 초석이 됐으며, LG전자의 가전제품을 세계1위를 달리고 있다. (사진=LG)

1947년 정월 어느날 아침, 부산 서대신동에 있던 연암(蓮庵) 구인회(具仁會) LG그룹 창업회장의 자택 앞마당은 크림 생산 준비로 분주했다. 70평 정도의 단독주택에 모여든 연암과 가족들은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으로 크림을 만드는 김준환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바라봤다. 그는 흥아화학공업사라는 화장품제조 공장의 기술자였다. 

김준환은 여러가지 원료를 배합해서 반죽을 하고 다시 감화조에 넣어 끓였다. 복잡한 공정을 거쳐 마침내 향긋한 냄새의 화장크림이 대량으로 생산돼 나오자 모두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연암이 평소답지 않게 다소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우리 손으로 구리무(크림)를 만드는기라.” 연암이 제조업 기업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이하던 시절 우리나라 화장품산업은 그야말로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한 단계였다. 시중에 도는 화장품이라고는 미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값비싼 수입품이거나 일본인이 남기고 간 설비와 기술력으로 만든 질낮은 제품 밖에 없었다. 

해방즈음 부산에서 ‘조선흥업사’를 운영하고 있던 연암은 1946년 동생 구정회가 제안한 화장품 판매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흥아화학공업사의 기술자 김준환과 어울리던 구정회는 그를 통해 화장품 판매사업 기회를 포착했다. 

화장품 판매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조선흥업사는 단순히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김준환의 투자 요청이 계기였다. 김준환이 스스로 공장을 운영하겠다는 포부로 다니던 회사를 나온 후 연암에게 자금투자를 요청했다. 연암은 화장품 제조업에 사업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구인상회를 비롯한 전재산을 처분해 마련한 300만원으로 원료 확보에 나섰다. 

처음 만든 화장품 모델로는 당시 유명한 미국 여배우 사진을 사용했다. 구정회의 제안이었다. 제품의 상표는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의 영어 단어 ‘럭키(Lucky)’로 정했다. 연암은 모든 사업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크림이 되라는 의미에서 제품명을 ‘럭키크림(Lucky Cream)’으로 결정하고 우리말로 쓸 때는 한자로 즐거울 ‘樂’, 기쁠 ‘喜’, 락희로 쓰기로 했다. 

연암은 ‘락희(樂喜)화학공업사’를 설립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화장품의 제조와 판매에 나서게 된다. 국내 화장품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동시에 LG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락희화학은 화장품의 주원료인 향료를 일본에서 직접 수입하는 루트를 개척함으로써 수입품에 못지않은 훌륭한 품질의 크림을 만들 수 있었다. 고가의 수입품 외에는 제대로 된 크림 하나 없던 시절, 럭키크림은 좋은 품질과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LG그룹 R&D허브 역할을 하고있는 LG사이언스파크. 축구장 152개 크기의 시설에 LG그룹 8개 계열사와 협력사, 스타트업 등 2만여명의 연구인력이 모인 LG사이언스파크는 국내 최대 규모의 R&D단지로 자리 잡아가며 기술개발을 이끌고 있다. (사진=LG) 

LG의 화장품 사업은 럭키크림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며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후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소재에 눈을 돌린 구회장은 빗과 비누갑, 치약을 잇달아 국내에 선보이며 시장을 석권해갔다. 

구인회는 1959년 한국 최초의 전자공업회사인 금성사를 설립해 그 해 11월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출시했다. 이례적으로 높은 60%의 부품국산화율은 전자사업을 하려는 연암의 준비가 그만큼 탄탄했음을 보여준다. 

구인회 회장이 씨를 뿌린 국산 화장품은 K-뷰티라는 세계적 성가로 이어졌고 LG의 가전제품은 선진국을 단기간에 따라잡고 후발국가를 여유있게 앞지르며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사이 LG그룹은 연간 15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연암은 남이 하지 않는 일,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다. 오늘날 글로벌 제조기업으로 우뚝 선 LG그룹의 역사는 연암의 이런 철학에서 시작됐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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