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0) 백구과극(白駒過隙), 도법자연(道法自然)
상태바
[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0) 백구과극(白駒過隙), 도법자연(道法自然)
  • 이형로
  • 승인 2022.06.27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순식간에 흐르는 세월, 덧없는 인생
- 영생불사 존재는 없는 법…세월 붙잡으려 아둥바둥 말고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
청곡(靑谷) 박일규의 ‘白駒過隙(백구과극)’ 작품.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르 본다는 뜻으로 인생이나 세월이 덧없이 짧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붙잡으려 해도 잡혀지지 않는 세월이고, 영생불사의 존재는 없으니 아둥바둥말고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게 좋은 일이다.

봄인가 싶더니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봄 끝자락을 노랗게 장식하던 기린초마저 지고 여름꽃인 원추리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 나이 좀 드니 장자(莊子)가 말한 ‘백구과극(白駒過隙)’의 세월이 실감난다. ‘흰 망아지가 달려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보듯’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다.

옛사람들은 내 의지와 달리 미련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낙화유수(落花流水)’라고도 표현했다. 문자 그대로는 '지는 꽃과 흐르는 물'을 의미하지만, 가는 봄의 풍경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당나라 시인 이군옥(李群玉, 808~862)은 '봉화장사인송진련사귀잠공산(奉和張舍人送秦煉師歸岑公山)'이란 긴 제목의 칠언율시 말미에서 "蘭浦蒼蒼春欲暮 落花流水怨離襟(난포창창춘욕모 낙화유수원리금)‘이라고 읊었다. 난포의 물 푸르고 봄도 저무는데,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떠나가는게 원망스럽다는 것이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주며 종사했던 당나라 후기 명장이자 시인인 고변(高駢, 821~887)은 은거한 친구를 찾아갔다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落花流水認天台 半醉閑吟獨自來(낙화유수인천태, 반취한음독자래)‘. 꽃 떨어지고 물 흐르는데서 넓은 세상을 알았거니, 반쯤 취해 한가하게 시 읊으며 홀로 찾아왔네.

또한 조선중기 문신인 최립(崔岦, 1539~1612)은 1594년 사행길에 명나라 무령 땅을 지나며 ‘殘雪斷氷今日路 落花流水去年村 (잔설단빙금일로, 낙화유수거년촌)’이라고 노래했다. 오늘 길엔 잔설에 얼음이 떠다녀도, 지난해 마을에는 떨어진 꽃잎이 떠갔었네.

한 구절의 성어가 여러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낙화유수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위 시에서처럼 늦봄의 풍경을 묘사함은 물론 쇠잔영락(衰殘零落)하며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쇠락해져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뜻도 담고 있다.

또한 어떤 집단의 세력이 약화되고 생활여건이 전과 같지 않다는 비유, 그리고 전쟁이나 정쟁(政爭)에서 패배한 사람의 처지를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낙화유수란 말은 남녀간의 애정을 표현하는 말로도 쓰였다. 짝사랑, 즉 '떨어지는 꽃은 마음이 있지만 흐르는 물은 무정하네(落花有意 流水無情 낙화유의 유수무정)'란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며, 서로 사모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기도 했다.

오민준의 ‘道法自然(도법자연)’ 작품. 꽃은 피면 지고, 세월이 흐르는 것(落花流水)은 지극히 '자연스러운(自然而然)' 현상이다. 자연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를 따라 사는 것이 ‘道法自然(도법자연)’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하서집’에는 ‘자연가(自然歌)’가 실려있다.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청산자연자연 녹수자연자연)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自然 (산자연수자연 산수간아자연)
已矣哉  自然生來人生 (이의재 자연생래인생)
將自然自然老 (장자연자연로)

산수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여라
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이라 늙기도 절로 하여라.

이 작품은 중국 송나라때 유행하던 대표적인 운문인 사(詞)의 형식으로 쓴 시다. ‘已矣哉(이의재)'의 뜻은 '아서라•말어라•되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한탄이 섞인 말이다. 번역시에선 한탄을 대신해서 '아마도'라는 말로 젊잖게 넘어갔다. 

김인후는 생전에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겪은 인물이다. 1544년(중종 39) 11월 중종이 승하하고, 김인후가 가르치던 세자가 인종으로 등극했다. 인종은 그에게 경연의 보도 책임을 맡기고자 제술관에 제수했으나 부모님 병환을 핑계로 본래의 임소인 옥과 현감으로 돌아갔다.

1545년(인종 원년) 7월, 인종이 등극한지 8개월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을사사화가 발생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술과 시로 울분을 토로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후 조정의 부름에도 병을 핑계로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니, 마음은 오히려 평안하여 거리낌이라고는 없었다. 이때의 심정을 노래한 시가 바로 '자연가'다.

이 시에서 '자연'이란 단어가 무려 10번이나 등장한다. 여기서 '자연'이란 말은 산•강•초목•동물 등의 존재, 또는 그것들이 이루는 환경을 일컫는 명사(nature)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의도적인 노력이나 활동없이 '저절로', 혹은 사물이나 현상이 스스로의 질서나 법칙에 의해 '저절로'라는 의미의 부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바로 노자가 도덕경 25장에서 말한 '도는 스스로 그러함에 본받는다'라는 의미의 '도법자연(道法自然)'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김인후의 시에서 자연이란 '자연이연(自然而然)'이란 뜻으로 '스스로 그렇게 저절로'라는 의미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영생불사의 존재는 아직 없다. '꽃은 피면 지고, 세월이 흐르는 것(落花流水)'은 지극히 '자연스러운(自然而然)' 현상이다. 이제 나이먹을 만큼 먹었으니 가는 세월 붙잡으려 아둥바둥하지 말자. 그렇다고 붙잡힐 세월도 아니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93, 102동 437호(신천동,더샵스타리버)
  • 대표전화 : 02-3775-4017
  • 팩스 : -
  • 베트남 총국 : 701, F7, tòa nhà Beautiful Saigon số 2 Nguyễn Khắc Viện, Phường Tân Phú, quận 7, TP.Hồ Chí Minh.
  • 베트남총국 전화 : +84 28 6270 1761
  • 법인명 : (주)인사이드비나
  • 제호 : 인사이드비나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16
  • 등록일 : 2018-03-14
  • 발행일 : 2018-03-14
  • 발행인 : 이현우
  • 편집인 : 장연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진
  • 인사이드비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사이드비나.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sidevina@insidevina.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