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3) 여당내홍과 양두구육(羊頭狗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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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3) 여당내홍과 양두구육(羊頭狗肉)
  • 이형로
  • 승인 2022.08.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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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춘추시대 ‘안자춘추’서 유래된 사자성어
- 양머리 걸어놓고 개고기 팔아…겉과 속이 다른 속임수 꼬집는 말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중국 춘추시대에 편찬된 책 ‘안자춘추’에서 유래된 사자성어로 최근 자리에서 밀려난 여당 대표가 언급하며 다시 회자됐다.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것으로 겉과 속이 다른 속임수를 꼬집는 말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오랫만에 꽁치구이가 밥상에 올라왔다. 지난 겨울에 냉동시켜 놨던 꽁치로 그릴에 구어낸 소금구이다. 어릴 때 연탄불 석쇠에 꽁치 몇마리 올려 놓고 왕소금 툭툭 뿌려 지글지글 구어 낸 그 맛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작은 녀석이 윗부분을 다 발라 먹고 뒤집으려다 필자를 흘깃 쳐다보더니, 그대로 놓고 생선뼈를 발라내고 먹는다. 아마 어려서부터 아내나 필자가 해준 말 때문이리라.

어릴 적 반찬으로 오른 고등어•꽁치•갈치 자반 등을 어제 작은 녀석처럼 뒤집어 먹을라치면 할머니는 ‘복 나간다’며 손수 가시를 발라 주셨다.

그러다 좀 커서 섬이나 해안 지방으로 여행가서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고기잡이 배가 뒤집어 진다며 절대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뼈가 드러난 반쪽의 생선은 배와 비슷한 모양이긴 하다.

과연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복이 나가고 고기잡이 배가 전복될까. 이것 뿐이 아니었다. 밥 먹을 때 숟가락을 까불어도,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어도, 반찬을 이것저것 집었다 놔도, 쩝쩝 소리내며 먹어도, 그리고 식사 도중 말을 많이 해도 복이 나간다며 어른들은 말렸다.

이런 말들은 괜한 잔소리며 미신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모두 일리가 있는 극히 '과학적'인 잔소리다.

밥 먹을 때 숟가락을 가지고 장난치며 까불다가 자칫하면 숟가락을 상 위에 놓치는 수가 있다. 국이며 찌개 국물이 밥상에 튀면 식구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다리를 까딱거리며 먹다가는 집중이 안돼 실수할 수 있고, 침 묻은 젓가락으로 이 반찬 저 반찬 뒤적이면 위생상 좋지 않다. 그리고 음식을 입안 가득 물고 말을 하다보면 음식 파편이 밥상이나 상대방 얼굴에 튀어 위생상은 물론 미관상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옛어른들은 '복'을 핑계로 이른바 밥상머리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이 얼마나 '실용과학적'인가.

그렇다면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복이 나간다는 말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인가. 이 또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이다. 다만 '인문과학적'인 근거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여유가 있어 행복하다'라는 뜻의 중국어는 '有餘'(youyu)다. 여기서 여유롭다의 여(餘)자와 물고기 어(魚)자는 발음이 같은 '위'(yu)다. 그러므로 그 여유로움 즉 행복을 '뒤집는다'(覆)는 것은 있는 복을 차버린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안영(안자) 초상. 안자춘추는 안영의 언행을 모아 기록한 책으로 양두구육 외에도 귤화위지(橘化爲枳), 갈이천정(渴而穿井),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등 여러 고사성어가 담겨있다. (사진=인터넷 캡쳐) 

좀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안자춘추(晏子春秋•內篇雜上)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춘추시대에 제나라 경공이 기(紀)나라를 순시하던 중 그곳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한 금호로병을 바쳤다. 그 안에는 두 조각의 죽간(竹簡)이 있었는데, 붉은 글씨로 여덟 글자가 씌어 있었다. 소위 금호단서(金壺丹書)가 그것이다. ‘食魚無反 勿乘駑馬(식어무반 물승노마)’. 

이 글을 본 경공은 "옳은 말이로다! 생선을 뒤집어 먹지 않는다함은 그 비린내 때문이고, 멀리 가려면 게으른 말을 타지말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러자 안영(晏嬰,?~B.C.500)이 대답하기를, 그런 뜻이 아니고 후대의 군주에 남긴 교훈의 말이라며 다른 풀이를 한다. 食魚無反이란 백성의 힘이 부칠 때까지 부리지 마라(毋盡民力乎 무진민력호)는 충언이고, 勿乘駑馬는 불초한 자를 측근으로 등용하지 마라(無置不肖於側乎 무치불초어측호)는 경계의 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선을 뒤집어서까지 먹는다는 것은 백성의 고혈을 빠는 것과 같고, 능력없는 관료를 높은 자리에 앉히면 눈과 귀가 가려져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들은 경공은 그대의 말대로라면 기나라 군주들은 이러한 좋은 충언이 있었으니 당연히 부국강병한 나라가 되었어야지, 왜 우리에게 멸망당했는가라며 안영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안영은 현명한 군주는 자기의 주장을 크게 써서 사람들이 두루 볼 수있도록 성문에 붙여 전 백성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기나라의 군주는 비록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금호로병에 넣어 두었을 뿐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니 기나라가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충간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란 말을 덧붙였다.

안영을 역사책에서는 안자(晏子)라고 부른다. 제나라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 안약이 죽은 뒤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 경(卿)이 되어, 제나라 영공•장공•경공을 거치면서 관직이 상국(相國 재상)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관중이후 제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무려 57년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공자는 일찌기 제나라의 안영, 정나라의 자산, 진(晉)나라의 숙향, 위나라의 거백옥, 오나라의 계찰을 존경했다. 이 가운데 특히 안영을 높이 평가해 다른 사람과 화목하여 오래도록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안자춘추'는 안자의 언행을 모아 기록한 책으로 그의 일화를 모아 문답식으로 편찬했다. 딱딱한 언어로 이루어진 다른 유가의 경전들과 달리 이야기와 교훈이 내재되어 있으며, 주변 사건들에 대한 명쾌한 해결 방법이 제시돼 있다.

이 책에는 우리들의 귀에 익은 고사성어가 많이 나온다. 예를들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과 풍토에 따라 바뀐다라는 귤화위지(橘化爲枳),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갈이천정(渴而穿井), 복숭아 두개를 던져주고 마음에 안드는 장수 셋을 제거했다는 놀랍고도 교활한 계략인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가 있다. 

최근 자리에서 쫓겨난 여당 대표가 썼던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도 안자춘추에서 유래한 성어다.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겉과 속이 다른 속임수를 꼬집는 말이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의 볼썽사나운 내홍(內訌)에 국민들은 실망하고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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