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비나=호치민, 윤준호 기자] 베트남의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머이(Doi Moi 쇄신)의 설계자이자 강력한 지지자였던 응웬 반 린(Nguyễn Văn Linh) 전 총서기장과 함께 충실한 실행자로 평가되는 보 반 끼엣(Võ Văn Kiệt) 전 총리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23일 그의 고향인 남부 빈롱성(Vinh Long)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는 팜 민 찐(Phạm Minh Chính) 총리를 비롯한 주요 정부인사들이 참석해 초인플레이션으로 파탄에 빠진 베트남경제를 구해낸 그의 혁명적, 영웅적인 개혁 업적을 기렸다.
1975년 통일후 만성적인 식량부족과 부정부패, 비능률, 서방의 금수조치 등으로 암울하던 베트남경제는 80년대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86년 12월, 지난 30년동안 신봉해오던 스탈린-마오주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이탈해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 곧 도이머이 도입을 전격 결정했다.
그러나 도이머이 첫해인 1986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무려 775%라는 초인플레이션으로 베트남경제는 파탄 직전까지 갔다. 다음해부터 인플레가 조금 진정되어 갔지만 1991년까지 거의 세자릿수에 가까운 인플레와 높은 실업률을 겪었고, 경제는 여전히 보조금과 해외원조에 의존하며 질식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던 1991년 총리에 취임한(1992년 10월 국회 동의) 끼엣은 우선 중앙은행이 더 많은 돈을 찍어낼 수 없도록 막았고,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예금만으로 대출하도록 규제를 가했다. 또 금리(정책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예금금리를 월 13%(연 156%)까지 인상하는 초긴축 정책으로 돈줄을 옥죄었다.
그러자 1991년 67%에 달하던 인플레는 1992년 17.5%, 1993년 5.2%까지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라앉았고, 미국 달러당 동화(VND)환율은 2년새 25.8% 하락, 금값은 31.3% 하락하는 등 경제가 비로소 안정을 되찾아갔다.
이날 기념식에서 찐 총리는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집행해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 오늘날 우리 경제의 토대를 닦은 이가 끼엣 전 총리”라며 “그는 국영기업이 정부의 간섭없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했으며, 수요공급의 원칙으로 가격이 결정되도록 허용했고, 은행시스템을 개혁하는 등 많은 혁신적인 정책으로 경제를 살려냈다”고 찬양하며 그를 회고했다.
끼엣 전 총리의 강력한 도이 머이 정책 추진에 힘입어 재임기간인 1991~1997년 연평균 성장률은 8.5%로 이전 5년(4.7%)보다 두배 가까이 높아졌다.
끼엣 전 총리가 이룩한 업적의 토대 위에 오늘날 베트남 경제는 GDP(국내총생산) 4000억달러 초과, 1인당GDP 4400달러, 교역량 7500억달러를 바라보는 주요 20개 경제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