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2) 정치권 적반하장(賊反荷杖)과 조고각하(照顧脚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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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2) 정치권 적반하장(賊反荷杖)과 조고각하(照顧脚下)
  • 이형로
  • 승인 2023.01.2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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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이 큰 소리 치는 일’, 정치권에 비일비재
- 남 비판하기 전에 자기자신 돌아봐야
전남 영암 도갑사의 ‘照顧脚下(조고각하)’ 현판. 조고각하는 자기 발밑을 잘 보라는 말로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한 사람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비일비재한 요즘 우리사회, 특히 정치권에 들려주고 싶은 사자성어이다. (사진=도갑사)

엊그제 곧 출간할 책 원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뭔가 '쿵' 하더니 웅성거리는 소리에 이어 두 사람의 고성이 들려왔다. 궁금해서 나가보니 아랫집 담장 기둥을 누군가 자동차로 들이박으며 난 소리였다.

그 집은 최근 정원과 담장까지 멋지게 새로 지은 단독주택인데 포르쉐 타이칸인지 뭔지하는 스포츠카가 담장 기둥을 박은 것이다. 차는 오른쪽 전조등이 박살나 있었다.

사정을 듣자하니, 차를 몬 동네 청년이 담장 기둥을 돌출되게 만들어서 차를 박게 만들었지않냐고 큰소리 쳤고, 집주인 아저씨는 어이가 없어 내땅에 돌출되게 만들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하며 실랑이하다가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청년의 적반하장(賊反荷杖)격인 태도에 이웃사람들도 혀를 차며 언쟁의 추이를 살피고 있었다. 마침내 멱살까지 잡고 드잡이질을 하려 하자 이웃집 노인이 말리며 청년 자네가 잘못했으니 사과하고 가라한다. 

청년은 사과는 커녕 "에이, 이 차가 얼마짜린데..."라고 투덜대며 차를 빼서 가려했고, 집주인은 "야 XX야, 니 차가 비싸냐 우리집이 비싸냐!" 삿대질까지 하며 차를 막아섰다가 주변사람들이 참으라고 달래자 보내주며 담기둥을 돌아본다. 기둥의 붉은 벽돌이 깨져 있었다.

이런 경우가 옛날에도 비일비재했나 보다. 그러니까 ‘너의 담장이 내 소 뿔을 부러뜨렸다’라는 속담이 전해지는게 아닐까. 네 집에 돌담이 없었으면 우리 소의 뿔이 부러졌겠느냐는 뜻으로, 남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억지를 부릴 때 쓰는 말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는 속담과 비슷한 뜻으로,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나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여장절각(汝墻折角)'이란 사자성어로 싣고 있다.

汝墻折角(여장절각)과 賊反荷杖(적반하장). 여장절각은 네집 담장이 없었으면 내 소의 뿔이 부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겨대는 말이며, 적반하장은 도둑이 매를 든다는 말로,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놓고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거나 남 탓을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들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지난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다. 이는 논어 위령공편에 실려있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을 바로 잘못이라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공자는 이와 비슷한 말을 자한편에서도 했다. ‘잘못했거든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무지거나, 아니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애써 강변하며 남탓으로 돌리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사례는 요즘 세상에서도, 특히 정치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논어 위령공편의 ‘군자는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린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제기 소인구제인)'라는 또다른 공자 말씀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잘못했으면 반성하고 고쳐야 마땅하다. 이게 상식적인 삶의 방식이다. 내가 잘못해서 자동차의 전조등이 박살나고, 내 소의 뿔이 부러졌는데 오히려 이웃집 담장을 탓할 수는 없지않은가 말이다.

대학동기인 절집 친구에게 연하장을 보내며 올해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좋은 글귀를 추천해 달라니까, 고무신 사진과 함께 보내온 글귀가 '발 아래를 잘 살펴라'라는 뜻의 '照顧脚下(조고각하)'라는 말뿐이었다.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의미는 네가 알아보라는 것 같았다. 

조고각하는 선어록인 종문무고(宗門武庫)와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에서 유래한 공안(公案) 사자성어다. 오조산에 주석한 오조 법연 선사에게는 훗날 삼불(三佛)이라 불리는 뛰어난 제자 세 명이 있었다. 불감(佛鑑) 혜근, 불안(佛眼) 청원, 불과(佛果) 극근이 그들이다.

법연이 어느날 이 제자들과 외출해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 등불이 꺼지고 말았다. 칠흑같이 캄캄해지자 스승인 법연이 너희들은 이 순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물었다.

혜근은 "오색찬란한 봉황새가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에서 춤을 춥니다(彩鳳舞丹宵 채봉무단소)"라 대답했다. 청원은 "쇠 뱀이 옛길에 누웠습니다(鐵蛇橫古路 철사횡고로)", 극근은 "발 아래를 살피십시요(照顧脚下 조고각하)"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경지에서 답을 했고, 법연은 조고각하라고 답한 극근을 우리 종문을 크게 일으킬 인물이라고 특별히 칭찬하였다. 이 제자가 후에 종문제일서라 칭송받는 '벽암록(碧巖錄)'을 저술한 원오 극근(圓悟 克勤, 1063~1135) 선사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조고각하라는 글귀는 수행자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해야 하는지, 도(道)라는 것이 무엇인지, 쉬우면서도 그 요체를 잘 담고 있다. 그저 발 아래를 살펴서 신발을 잘 신고 벗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온갖 유혹이 난무하는 혼탁한 세상에 휩쓸리지 말고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의미도 내포된 말이다.

동네 청년과 교수들 그리고 스님 친구 덕분에 올해의 좌우명 한 구절을 건졌다. 좀 긴 듯하지만 '남탓 말고 반성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자'로 정했다. 이 말대로 열심히 따라서 살다보면 비슷하게는 되지 않을까.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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