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1) 무한불성(無汗不成), 음마투전(飮馬投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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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1) 무한불성(無汗不成), 음마투전(飮馬投錢)
  • 이형로
  • 승인 2023.11.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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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의 계절 보내며 뒤늦게 떠올린 ‘농부의 땀’ 의미
-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땀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도 이룰 수없어
주천(珠泉) 조중일의 작품 ‘無汗不成’(무한불성)‘. 땀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도 이룰 수없다는 뜻으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올가을도 계절의 변화 앞에 자리를 내주며 물러가고 있다. 일찍 단풍 들어 이미 다 떨어진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반짝 추위에 푸른 잎 그대로 떨구는 녀석들도 있다. 그동안 따뜻한 날씨에 느긋하게 방심하고 있던 탓이다.

여름내 농민의 땀을 먹고 자란 들판의 곡식도 추수가 끝난지 오래다. 비록 광화문 교보빌딩에는 지난 8월말부터 신달자 시인의 '삼천 번을 심고 추수한 후의 가을 들을 보라/ 이런 넉넉한 종이가 있나'라는 '가을들' 한 구절의 걸개그림이 여전히 걸려있지만, 계절은 바야흐로 겨울 들머리에 들어섰다.

늦더위가 조금 누그러지던 어느날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덕수궁 대로를 지나는데 발밑으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아직 익지않은 잣송이였다. 꽃밭 풀더미에 던져 놓으려고 집어드니 위에서 요란하게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설모가 짓나무 위에서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까지 하고 있었다.

청설모의 언어까진 체득하지 못한 필자인지라 번역기를 돌려보니, "여보쇼 인간, 왜 남이 땀 흘려 딴 걸 그냥 가져가려는 거요?"라는 말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의 다른 표현이었다. 머쓱해진 필자가 잣을 슬며시 내려놓자 청설모는 한번 째려보더니 잽싸게 물고 달아났다.

그날 오후 정관헌 꽃밭을 지나는데 초여름까지 조롱조롱 피었던 금낭화(錦囊花) 꽃은 지고 어느덧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며 움직일 수없는 식물들은 후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저마다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씨앗에 날개를 달고 훨훨 멀리 여행하거나, 사람의 옷이나 짐승의 털에 무임승차하는 녀석 등 다양한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는 곤충 특히 개미를 이용해서 번식하는 식물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대강 꼽아봐도 금낭화, 꽃며느리밥풀, 애기똥풀, 고깔제비꽃, 얼레지, 깽깽이풀, 느리밥풀, 왕원추리, 큰앵초, 환삼덩굴 등이 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식물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지구상에 개미를 이용해 번식하는 식물은 최소한 11만 종에 달한다고 한다.

덕수궁 정관헌의 금낭화 꽃. 금낭화는 열매에 개미들이 좋아하는 젤리상태의 물질을 만들어 씨를 가져가게 해 멀리까지도 번식한다. 금낭화와 개미 모두 서로의 노력으로 결과를 얻는 것으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사진=이형로) 

이들 삭과식물은 씨앗이 완전히 여물면, 벌어진 깍지의 오므리는 힘으로 씨앗을 튕겨 날린다. 딴에는 젖먹던 힘을 다해 날린다고 하지만 기껏 가봐야 3~4m 정도다. 물론 어떤 씨앗은 운이 좋아 빗물에 멀리까지 떠내려가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후손을 더 멀리 많이 퍼뜨리고 싶은 녀석들은 또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하는데, 그 기발한 생각이란 바로 개미를 이용하는 것이다. 종자 한쪽 끝 혹은 전체에 개미들이 좋아하는젤리상태의 지방 덩어리인 엘라이오솜(elaiosome)이라는 부속물을 만들어, 개미들이 씨를 가져가게 해 후손을 멀리까지 퍼뜨리는 방법이다. 엘라이오솜은 식물에 따라 그 모양과 크기가 매우 다양해 막대 모양이나 반타원형 또는 씨앗을 그물처럼 감싸고 있는 것도 있다.

이 맛있는 먹거리 때문에 개미는 씨앗을 가져가 모으게 되고, 식물은 이것을 제공한 대가로 씨앗을 멀리까지 보내는 수고를 덜게 된다. 개미는 씨앗을 개미집으로 물어가 엘라이오솜은 떼어서 애벌레의 먹이로 이용하고, 그들에게 필요없는 남은 씨앗은 개미집 안에 있는 쓰레기장이나 집 밖의 모래언덕 또는 그들 군집의 영역 경계에 내다버린다.

씨앗은 개미가 엘라이오솜을 먹은 뒤 버려지지만 발아 능력을 잃지않고 이듬해 개미집 주변에 싹이 돋고 꽃을 피우게 된다. 개미가 씨앗을 버리는 장소에는 각종 유기물이나 배설물들이 풍부해서, 식물의 종자 발아에 매우 적합한 비옥한 장소가 된다. 이런 방법으로 종자를 살포하는 식물을 우리는 '개미살포식물'이라 부른다.

개미는 영양이 풍부한 먹거리를 얻게 되고, 식물은 엘라이오솜을 만들어 준 댓가로 후손을 멀리까지 퍼뜨리는 댓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식물과 개미는 서로 윈윈의 공생관계인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종 모두 이익을 얻는 관계를 생물학에서는 '상리공생'(相利共生, Mutualism)이라 한다. 

한쪽만 이득을 얻고 다른 한쪽은 이득도 손해도 보지 않는 관계인 '편리공생'(片利共生, Commensalism), 한쪽만 이득을 얻고 다른 쪽은 피해를 보는 '기생(寄生)'과는 다르게 문자 그대로 '호혜공생(互惠共生)' 관계인 것이다.

금낭화나 개미가 나름 땀을 흘린 대가는 이렇게 서로 충분히 받은 셈이다. '무한불성'(無汗不成, 땀을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이란 말은 바로 이런 때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지만 여전히 공짜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들이다.

청남(靑南) 권영한의 작품. 밀턴 프리드먼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인터넷 캡쳐)

중국에는 이와 다른 관점의 유명한 일화가 한나라 응소(應劭, ?~204년?)의 풍속통의(風俗通義), 당나라 서견(徐堅, 659~729)의 초학기(初學記) 6권 '삼보결록(三輔決錄)' 등에 실려있다. 

옛날 안릉에 살고 있는 항중선(項仲仙)이란 청렴한 선비는 여행길에 말이 목말라 강물을 마시면 반드시 동전 세 푼을 강물에 던졌다. 이른바 '음마투전(飮馬投錢)'이란 고사다. 자연일망정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를 고리타분한 선비라 할는지 모르지만 그 정신은 본받을 만하다.

우리나라 절집에 가면 샘물 앞에 복전함(福田函)이 있다. 한 모금의 물일지라도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면 다만 몇 푼이라도 넣고 가라는 뜻이다. 그것을 모아 주위에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베풀 것이니, 그 복은 결국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스님들이 심심풀이 땅콩을 사먹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외수는 에세이 ‘바보바보’에서 "남다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남다른 보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훔쳐온 플라스틱 꽃나무에 나비가 날아오길 기다리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세상에 공짜 점심 같은 건 없다(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고 했다.

쥐덫에 걸려있는 치즈도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쥐는 덫에 걸리지 않고 먹을 수가 있는 법이다.

이형로는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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