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6) 난득호도(難得糊塗), 끽휴시복(喫虧是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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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6) 난득호도(難得糊塗), 끽휴시복(喫虧是福)
  • 이형로
  • 승인 2024.01.2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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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명하기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 어리숙해지기는 더 어려워
- 당장은 손해보는 듯 하지만 결국은 복으로 돌아오는 법
‘양주팔괴’중 한명인 청나라 정섭의 ‘難得糊塗(난득호도)’와 ‘喫虧是福(끽휴시복)’. 총명하기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이 어리숙해지기는 더욱 어렵다는 뜻과 당장은 손해보는 듯 하지만 결국 복으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이들 성어는 서로 숨은 뜻이 같아 댓구로 많이 쓰인다. (사진=인터넷 캡쳐) 

연초에 친구들과 화천 산천어축제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백암산 케이블카 전망대도 들리기로하고 사전 신원조회까지 마쳤지만, 며칠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출발 당일 감기몸살이 심해 아쉽게도 함께하질 못했다. 며칠 후 축제에 다녀온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축제도 축제지만 백암산 주위의 설경과 50여km나 떨어져 있는 금강산 비로봉의 장관이 더 멋졌다고 자랑하더니 홍콩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가져와 반주로 마셨다던 술을 꺼내 놓았다. 함께하지 못해 서운했다며 필자에게 전해주라는 52도짜리 백주(白酒) '백년호도(百年糊塗)'였다. 마오타이주로 유명한 귀주의 모태진(茅台鎭)에서 양조하는 술로 향기기 짙은 것이 특색이다.

글머리부터 술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그 이름 때문이다. '호도(糊塗)'는 '풀칠'이란 말로 눈에 풀을 한꺼풀 뒤집어써서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잘 쓰는 '후리후투(糊裡糊塗 호리호도)'란 말은 우리말로 어리석다, 흐리멍덩하다, 멍청하다 정도가 된다. '얼빵하다', '띨빵하다, '띨띨하다'라는 시쳇말과도 통한다.

청나라의 판교(板橋) 정섭(鄭燮, 1693~1766)은 원추리 그림으로 유명한 김농(金農) 등과 더불어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유명했다. 

특히 그의 독특한 서체는 세간에서 '길바닥에 어지럽게 깔린 돌과 같다'하여 '난석포가체(難石鋪街體)'란 별명을 붙였지만, 후대 서예가에선 그의 독창적인 서체를 '판교체(板橋體)'라 칭했다. 현대의 캘리그래피(Calligraphy)를 연상케 하는 그의 글씨는 조선의 추사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청천(靑泉) 정운재의 '大巧若拙 大辯若訥(대교약졸 대변약눌)' 작품.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로 '뛰어난 솜씨는 오히려 서툰 듯이 보이고, 뛰어난 말솜씨는 오히려 어눌한 듯이 보인다'는 뜻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정섭의 일화에서 유래한 '어리숙하기는 어렵다‘라는 뜻의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그가 이 말을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이 가운데 전설처럼 전해지는 드라마틱한 일화가 있다. 정섭이 산동에 지현(知縣)으로 부임해서 액현(掖縣) 운봉산(雲峰山)에 있는 북위(北魏) 시대의 정희비(鄭羲碑)를 감상하고자 길을 떠났다. 날이 저물어 어느 산골의 작은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다. 주인은 스스로를 '호도노인(糊塗老人)'이라 하는 유학자풍의 늙은이였다.

거실에는 석질이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조각까지 뛰어난 큰 벼루가 있었다. 정섭이 벼루를 어루만지며 감탄을 금치 못하자, 노인은 귀한 휘호를 남겨주면 벼루의 받침대에 새겨두겠다며 부탁해왔다. 

정섭은 호도노인이란 자호(自號)에 분명 내력이 있으리라 여기고, 바로 난득호도란 글을 쓰고 '康熙秀才 雍正擧人 乾隆進士(강희수재 옹정거인 건륭진사)‘라 새겨진 도장으로 낙관했다. 이는 판교가 세대를 바꿔가며 세 단계의 과거에 모두 합격했다는 자부심으로 새긴 도장이었다.

받침대가 커서 나머지 부분에 노인에게 발어(跋語)를 부탁하자, 노인도 일필휘지 써내려갔다. ‘得美石難 得頑石尤難 由美石轉入頑石更難 美於中 頑於外 藏野人之廬 不入富貴門也 (득미석난 득완석우난 유미석전입완석갱난 미어중 완어외 장야인지려 불입부귀문야)’

‘아름다운 돌은 얻기 어렵고, 그중에 무딘 돌은 더욱 얻기 어려워라, 아름다운 돌이 무딘 돌로 바뀌기는 더욱 어렵구나, 아름다움은 안에 있고 무딘 것은 밖에 있으니, 은거인의 오두막에 숨어있을지언정 부귀한 집 안에는 얼씬도 않으리라‘ 

글을 다 쓴 노인도 낙관을 했는데 '院試第一 鄕試第二 殿試第三 (원시제일 향시제이 전시제삼)'이란 도장이었다. 노인은 세 과거를 1,2,3등으로 붙었다는 말이 아닌가! 이를 본 정섭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즉시 붓을 들어 난득호도 글 아래 다음과 같이 써내려갔다.

‘聰明難 糊塗難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非圖後來福報也 (총명난 호도난 유총명이전입호도갱난 방일착 퇴일보 당하심안 비도후래복보야’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어리석기는 더욱 어렵고,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구나, 하나를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건 마음이 편안해지려는 것이지, 나중에 복을 받으려는 것은 아니다’.

정섭은 미석(美石)을 총명(聰明)으로, 완석(頑石)을 호도(糊塗)로 사람에 빗대어 구체화시킨 것이다.

한편 정섭이 유현에 있을 때 고향의 사촌동생에게 편지가 왔다. 집 담장 때문에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형님이 이곳 지현에게 청탁해서 승소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정섭은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로 답장을 대신했다.

‘千里告狀只爲墻 讓他一墻又何妨 萬里長城今猶在 不見當年秦始皇 (천리고장지위장 양타일장우하방 만리장성금유재 불견당년진시황)’ 

‘천리길에 보낸 편지가 고작 담장 하나 때문이니, 그 담장 하나 양보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만리장성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때 진시황은 보이지도 않는다네’

이때 정섭은 '끽휴시복(喫虧是福)'이란 글자도 함께 써 보냈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듯하지만 결국엔 복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 글을 본 동생은 부끄러워 송사를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난득호도와 그 숨은 뜻은 같아서 대구(對句)로 많이 쓰는 말이다.

자기 장점을 기꺼이 드러내도 시원찮을 요즘, 어리석게 살아가라는 말은 얼토당토 않겠지만 가끔은 새겨봄직한 말이다. 아울러 노자의 '大巧若拙 大辯若訥(대교약졸 대변약눌)'이란 말도 곁들이면 더욱 좋다. 도덕경 제45장에 나오는 구절로 '뛰어난 솜씨는 오히려 서툰 듯이 보이고, 뛰어난 말솜씨는 오히려 어눌한 듯이 보인다'는 뜻이다.

중국인 특히 홍콩인은 백년호도를 100년이상 영국에게 홍콩을 빼앗겨 '백년동안 멍청이'란 뜻으로 지었다는 자조적인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실제로는 정섭의 난득호도의 속뜻과 같은 '평생 어리숙하게 살아가리라'는 의미다.

친구 덕분에 이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마지막 잔을 기울이고 입안 가득 향기가 남아있을 때 글을 마친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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