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9) 오백나한(五百羅漢)과 활연대오(豁然大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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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9) 오백나한(五百羅漢)과 활연대오(豁然大悟)
  • 이형로
  • 승인 2024.03.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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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 창령사지 나한들의 다양한 표정과 미소
- ‘큰 깨달음’ 보다 ‘희로애락애오욕’ 우리모습 빚어놓은 듯
현대중국 작가 치공(啓功)의 含英咀華(함영저화) 작품. '꽃을 입에 머금고 천천히 씹어 꿀샘 깊은 곳에 숨겨진 꿀까지 맛본다'는 말로, 불가에선 '깨달은 후 미소 속에 그 달콤함을 음미한다'는 의미로 쓰고있다. (사진=인터넷 캡쳐)

지난 2019년 4월말 국립중앙박물관이 '영월 창령사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이란 특별전시를 했다. 강원도 영월의 오래전에 폐사된 창령사지(蒼嶺寺址)에서 600년동안 묻혀있다 2001년에 발굴된 돌덩이 오백나한(五百羅漢)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진솔한 모습이라던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못가서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지난주 친구와 1박2일 짧은 겨울여행을 계획하다가 불현듯 오백나한이 떠올라 춘천국립박물관을 다녀오기로 했다. 꼭 가봐야지 벼르다 10여년이 훌쩍 지난 후였다. 

창령사 발굴은 땅주인인 김병호씨가 그곳에 집을 짓는 과정에서 큼직하고 두루뭉실한 돌덩어리들을 발견•신고하면서 발단이 되었다. 창령사는 15세기말 이전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이후 여러 문헌에 보이다가 18세기말 이후에는 창령사가 언제 왜 폐사됐는지 기록이 없다..

2001년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하기 시작해 여말선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00여기의 나한상이 출토됐으며, 창(蒼)’자와 ‘령(嶺)’자가 새겨진 기와가 같이 발견되면서 옛날 창령사에 봉안돼있던 오백나한상의 일부임이 확인됐다. 

발굴후 국립춘천박물관으로 귀속된 수량은 총317점, 이중 온전한 형태를 간직한 것은 64점이었고 이후 2017년 26점의 머리와 신체 등 파손된 유구를 접합해 12점의 나한상과 미래불인 미륵보살상과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을 복원했다.

나한(羅漢)은 산스크리트어 아라하트(Arahat)의 음역인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의역해 응공(應供), 무학(無學) 등 이라고도 한다. 응공은 공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즉 존경받을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무학은 더 배워야 할 것 또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는 유학(有學)의 성자에 대비해 성도(聖道)를 모두 성취했기에 더 배워야 할 것이나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강원도 영월 창령사지에서 발굴된 오백나한(五百羅漢)의 다양한 표정과 미소는 ‘큰 깨달음’ 후의 미소인 활연대오(豁然大悟)와는 거리가 있는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七情) 속에 살아가는 인간적 표정의 우리들 모습을 빚어놓은 듯하다. (사진=이형로) 

초기 불교에서는 아라한이 부처 또는 여래를 가리켰으나, 불멸 100년 이후의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에서는 고타마 싯타르타 즉 석가모니에 대한 존경이 커져서 부처와 아라한을 구분하게됐다. 그후 아라한은 수행자가 도달하는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게 됐다.

불교에서는 흔히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을 말한다. 보통 십육나한은 부처의 교화를 받고 그와 비슷한 경지인 아라한과를 증득한 제자들을 말하며, 오백나한은 부처의 경지에 오른 수행자를 말한다. 이들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으로 숭배되는 특별한 점이 있다. 이는 아마도 그들이 깨달음을 완성하고도 중생계에 머물며 중생을 제도한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입대승론, 법화경 등에 등장하는 이들은 실재했던 인물들이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며 도교와 습합(習合)되면서 나한신앙으로 굳어지게 된다. 십육나한상은 당나라 승려 현장(玄裝, 602~664)이 번역한 법주기(法住記)의 내용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당시 유행한 도기 제작법인 당삼채(唐三彩) 나한상이 주를 이루었다. 그후 십육나한이 십팔, 오백으로 늘어난 나한상은 석가의 직제자와 선종사에 뛰어난 선사를 함께 조성함으로써 중국의 주체성과 강한 토착성을 띠게 된다.

중국의 나한상이 한반도에 전해질 초기에는 당삼채 나한상이 직접 한반도에 전해졌다기보다 주로 족자나 벽화로 전해진 듯하다. 본격적인 나한상은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임진왜란 이후에 가장 많이 제작됐다. 

고려때는 국왕이 참석한 ‘나한재(羅漢齋)’가 자주 열려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으며 외적의 침입을 막고 각종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기우제’의 목적으로 개설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나한의 신통력을 빌려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무병장수와 복받은 삶을 기원하는 성자로서 나한신앙이 이어졌다. 태조 이성계도 왕이 되게 해달라고 나한재를 드렸단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세조때 누군가 단종을 위해 나한재를 드리다가 발각돼 집권세력이 창령사를 훼손하면서 오백나한상의 목을 자르고 땅에 파묻은 것은 아닌지 추측도 가능하다. 만일 그렇다면 청령사 오백나한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정치적 음모에 공연히 백성의 신앙과 뛰어난 예술적 기품이 600여년 동안 잠든 것이라 할 수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려나 조선 초기의 나한상은 대오각성(大悟覺醒) 혹은 활연대오(豁然大悟)한 부처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얼굴상도 외국인 느낌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창령사지 오백나한은 중국이나 우리나라 여타의 나한상과는 달리 다양한 표정을 짓고있는 천진불(天眞佛)로 다가온다. 마치 순진무구한 동자승을 보듯 친근함이 느껴진다. 희노애락 그야말로 울고 웃으며 화내고 수줍어하는 표정, 눈을 지긋이 감고 참선하거나 바위 뒤에 숨어서 살짝 고개만 내민 재미있는 모습도 보인다.

여러 표정 가운데에서도 다양한 미소는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끈다. 마치 중생들의 다양한 삶을 그 깊은 곳까지 체험하고 득도한 후의 미소와 같다. 그러나 앞서말한 활연대오와는 거리가 있는 미소다. 웃는듯 마는듯 잔잔한 미소 속에 소박한 깨달음이 느껴진다.

이런 미소라면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 768~824)가 떠오른다. 그는 진학해(進學解)라는 글에서 ‘沈浸醲郁 含英咀華 作爲文章 其書滿家(심침농욱 함영저화 작위문장 기서만가)’라고 했다. ‘그윽하고 아름다운 옛글의 깊은 내용에 푹 젖어서 문장의 정수를 머금고 되씹어 글을 지으니 저서가 집안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 '함영저화(含英咀華)'란 아름다운 성어가 유래한다. '英'과 '華'는 모두 꽃을 의미하지만, 굳이 구별을 하자면 英은 꽃봉우리를, 華는 활짝 핀 꽃을 가리킨다. 영화(英華)는 문장 중의 정수 즉 정화(精華)를 뜻한다. 글자 그대로는 '꽃을 입에 머금고 천천히 씹는다'라는 말이지만, 그 속뜻은 '문장의 묘처(妙處)를 음미하여 가슴속에 새겨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숲속에서 꽃봉우리를 입에 물고, 꿀샘 그 깊은 곳에 숨겨진 꿀까지 맛본다'는 의미가 된다. 불가에선 이 성어를 '깨달은 후 미소 속에 그 달콤함을 음미한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그렇다, 이때는 미소를 띨 수밖에 없다.

도를 깨쳐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 나한들은 중생이 살고있는 사바세계에 살면서 세상의 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하면서 번뇌를 끊도록 돕는다. 그래서 오백나한의 얼굴들은 다른 불교 조상들과는 다르게 인간적인 표정을 하고 있고, 세상의 온갖 번뇌에서 해탈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창령사 오백나한은 화강석 거친 표면에 밴 미소와 다양한 표정이 보는 이에게 섬세하고 따뜻하게 다가가는 것이 큰 매력이다. 오백나한의 얼굴에 깃든 오백가지의 다른 미소와 표정들은 결국 희로애락을 뛰어넘은 우리 군상들의 표현이 아닐까? 심지어 화난 표정조차도 천진스러운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씻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七情)을 느끼는 가운데서 깨달아 우리들 범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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