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4) 대선캠프와 일훈일유(一薰一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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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4) 대선캠프와 일훈일유(一薰一蕕)
  • 이형로
  • 승인 2021.10.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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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와 악취나는 풀 섞어놓으면 향기는 악취에 가려지는 법
- 세확장 절실하겠지만 사람 가려 써야
- ‘난초밭’이냐 ‘어물전’이냐…후보의 자질 보여주는 잣대
일훈일유(一薰一蕕, 사진 위)와 훈유동기(薰蕕同器). 훈은 향기나는 풀, 유는  악취가 나는 풀을 이르며  두 풀을 한곳에 같이 높으면 향기가 악취에 가려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대선경선 후보 캠프에 줄을 서는 사람이 많은데 후보들은 세확장의 급한 마음에 옥석구분없이 들이지 말고 사람을 가려서 써야한다. (사진=인터넷 캡처)
일훈일유(一薰一蕕, 사진 위)와 훈유동기(薰蕕同器). 훈은 향기나는 풀, 유는 악취가 나는 풀을 이르며 두 풀을 한곳에 같이 놓으면 향기가 악취에 가려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대선경선 후보 캠프에 줄을 서는 사람이 많은데 후보들은 세확장의 급한 마음에 옥석구분없이 들이지 말고 사람을 가려서 써야한다. (사진=인터넷 캡처)

하루에 10cm씩 자라 높이가 3m를 넘게 자라는 희귀한 꽃이 있다. 꽃봉오리가 올라오더라도 언제 필지는 예측이 안되는 꽃이다. 활짝 펴도 2~3일이면 시들어 떨어지는 타이탄아룸(Titan arum)이다. 또한 꽃의 지름이 1m이상, 무게도 10kg에 육박하는 단일꽃 중 가장 큰 라플레시아(Rafflesia arnoldii)가 있다.

이들 꽃의 번식도 크기나 성장방식만큼 독특하다. 꽃이 피면 지독한 냄새를 풍겨 쉬파리나 딱정벌레를 유혹한다. 그 냄새가 동물의 사체 썩는 냄새와 비슷해 '시체꽃(송장꽃)' 또는 '고기꽃'이라 불리고 있다. 악취는 암모니아 향취를 좋아하는 벌레들을 유혹해 꽃가루를 암꽃에서 수꽃으로 이동시킨다.

이들의 악취는 벌레들만 유혹하는게 아니다. 세계 각지의 온실에서 재배하는 이들 표본이 개화할 때마다 화제가 되곤 한다. 독특하게 생긴 꽃은 물론 그 악취가 궁금해 수만명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꽃이 있다. 한여름 지나 초가을에 야트막한 산을 다니다 보면 벽자색의 독특한 모양의 꽃을 만난다. 꽃이 예뻐 풀을 헤쳐 볼라치면 고약한 냄새는 더욱 심하다. 이 녀석은 바로 누린내풀이다.

누린내풀은 마편초과에 속하는 다년생풀로 1m이상 자라며 줄기와 가지 끝에 여러 송이의 꽃이 핀다. 푸른색을 띤 자주색 꽃이 8~9월에 피는데 우리가 보통 보는 꽃들과는 모양 자체가 특이하다. 수술대 2개가 꽃부리 밖으로 길게 뻗어 나와 활처럼 휘어진 모습이 마치 어사화(御賜花)를 닮았다.

타이탄 아룸은 하루에 10cm씩 자라 높이가 3m를 넘게 자라는 희귀한 꽃으로 꽃이 피면 지독한 냄새를 풍겨 쉬파리나 딱정벌레를 유혹해 꽃가루를 이동시킴으로써 번식한다. (사진=인터넷 캡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역겨운 냄새를 풍겨서 누린내풀인데 우리들에게는 역겨울지 모르지만 곤충들에게는 오히려 향수 냄새로 느껴질 수 있다. 꽃가루받이에 반드시 필요한 곤충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냄새다. 

누린내풀도 그렇지만 빈대풀, 노루오줌, 계요등, 송장풀, 흰독말풀, 어성초, 누리장나무 등도 꽃의 아름다움은 제쳐놓고 이름에서부터 썩 좋지않은 느낌이 드는 야생화다. 실제로 빈대풀은 빈대 냄새가 나고 노루오줌은 지린내를 풍기고, 송장풀은 송장썩는 냄새, 흰독말풀과 어성초는 심한 비린내, 누리장나무는 노린내가 난다.

'일훈일유(一薰一蕕)'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훈(薰)은 향기나는 풀로 혜초(蕙草)라고도 하며, 유(蕕)는 넓은 의미로 위에서 말한 빈대풀, 노루오줌, 누린내풀 등 악취가 나는 풀을 이른다. 그리고 '누린내풀'을 특정해서 지칭하기도 한다.

일훈일유는 향기나는 풀과 누린내 나는 풀을 같이 놓으면 향기는 악취에 가려진다는 뜻으로, 선은 쉽게 잊히고 악은 오래도록 전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4년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에게는 6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은 가나라 출신으로 자식이 없었으며, 원래 아버지 첩이었던 제강이라는 여인에게는 신생이란 아들이 있다. 그녀는 신생을 낳고 얼마후 죽었는데, 헌공은 여러 부인 가운데 여희를 가장 총애하였다.

헌공은 여희를 정실부인으로 삼으려고 거북점(卜)을 쳤는데 불길하다고 나왔다. 헌공은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하여 서초(筮)로 점을 쳤더니 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헌공이 서초점을 따르겠다고 말하자 거북점을 치는 점쟁이가 말했다.

"서초점은 영험하지 않고 거북점이 영험합니다. 더 영험한 점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거북점에 '과분하게 총애하면 반란이 일어나 군주가 기르는 숫양을 빼앗는다. 향초와 악취 나는 풀을 같이 놔두면 10년이 지나도 악취가 난다(一薰一蕕 十年尙猶有臭 일훈일유 십년상유유취)'고 나왔으니, 이를 따르십시요."

헌공은 말을 듣지않고 여희를 정실부인으로 삼았다. 그후 여희는 아들 해제를 낳았다. 여희는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제강이 낳은 신생을 제거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신생은 생모인 제강의 제사를 지낸 후 고기와 술을 헌공에게 바치고자 하였다. 여희는 마침 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타 술과 고기에 독을 넣었다. 헌공은 술과 고기의 색깔이 이상하다고 여겨 고기는 개에게 먹여보고, 술은 환관에게 마셔보도록 하였다. 개와 환관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여희는 통곡을 하면서 이 모든 음식은 신생이 가져온 것으로 자기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며 신생을 모함하였다. 헌공은 여희의 말만 듣고 사람을 보내 태자 신생을 죽이려 했다. 신생은 하는 수 없이 도망하였으나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 발생후 여희는 더욱 총애를 받았지만 헌공 사후 해제는 군주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대신들에게 살해되고, 여희는 자살한다. 거북점의 점괘대로 진나라는 10여년동안 조용할 날이 없는 불길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이처럼 훈•유의 두 가지 풀을 한군데 섞어 놓으면 좋은 냄새는 가려지고 악취만 난다. 선행은 스러지기 쉽고, 악행은 좀체로 제거되지 않음의 비유이다. 또한 착한 사람의 세력은 악인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유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경제학적으로는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그레샴의 법칙과도 통한다 하겠다.

일훈일유에서 훈유동기(薰蕕同器)라는 말이 파생됐으며, 훈•유를 구별하라는 훈유유별(薰蕕有別), 훈유경별(薰蕕竟別)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경우는 훈과 유를 같은 그릇에 담지 않는 '훈유이기(薰蕕異器)', '훈유부동기(薰蕕不同器)'일 것이다.

지원(志原) 박양준늬 ‘지란지실(芝蘭之室)’ 작품. 대선 캠프를 향기나는 난초밭으로 만드느냐, 악취나는 지초밭으로 만드느냐는 후보 자신의 안목과 의지에 달려있으며 이는 후보의 자질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지원(志原) 박양준의 ‘지란지실(芝蘭之室)’ 작품. 대선 캠프를 향기나는 난초밭으로 만드느냐, 악취나는 지초밭으로 만드느냐는 후보 자신의 안목과 의지에 달려있으며 이는 후보의 자질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요즘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의 관심이 대선후보 경선에 쏠리고 있다. 유력한 후보에 줄을 서려는 사람들도 많다. 냄새나는 곳에는 쉬파리도 많이 꼬일 것이다. 

후보들은 우선 세 확장의 필요 때문에 급한 마음에 옥석구분없이 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때일수록 인사나 요직 기용에 있어 선과 불선을 선별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대선 후보들이 새겨듣고 참고해야 할 구절이 있다.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여선인거 여입지란지실 구이불문기향 즉여지화의) 
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여불선인거 여입포어지사 구이불문기취 역여지화의)‘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이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와바리(繩張り)'를 비린내가 진동하는 어물전(鮑魚之肆)으로 만들 것인가, 그윽한 향기가 나는 곳(芝蘭之室)으로 만들 것인가는 자신의 안목과 의지에 달려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8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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